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3-28 10:44 (목)

본문영역

  • 인물
  • 입력 2021.06.07 11:25
  • 호수 1359

30년 태권도 인생 김은미 관장 (송악읍 가학리)
“태권도만 하면 눈빛이 변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은 체구에 내성적인 성격…태권도 통해 인생 바뀌어
10살에 태권도 시작, 19살부터 사범으로 활동

▲ >> 김은미 관장은-1982년생 -기지초, 송악중, 송악고 졸업-송악태권스쿨 관장

송악태권스쿨을 운영하는 김은미 관장(송악읍 가학리·40)은 어린 시절 체구가 작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낯을 많이 가린 탓에 누구도 그가 운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학생 때 태권대 대회에 출전하면 아무 말 없이 대기 장소에 앉아 있어 대회 경험이 많았어도 다른 선수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단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면 그의 눈빛은 매섭게 변했다. 그 누구보다 빠르고 강하게 상대방을 가격했다. 김은미 관장은 “외형적으로는 키도 작고 운동할 체격이 아니었다”면서 “하지만 운동할 때는 눈빛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네가 운동한다고?”

몸집이 작고 약했던 그는 호흡기 쪽이 안 좋아 몇 발자국만 걸어도 숨이 찰 정도였다. 허약한 몸에 건강을 위해 처음 배운 것이 태권도였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1991년 9월, 처음 관원증을 만들었던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김 관장은 송악읍 기지시리의 유일한 체육관이었던 송악체육관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여성이 태권도를 배우는 일이 드물던 시절이었다. 그는 남자아이들과 함께 태권도를 훈련하고 경쟁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에는 첫 대회에 출전, 6학년 남자선수와 대결해 지고 말았다. 그가 중·고등생이 될 무렵에야 대회에서 여자부와 남자부가 나뉘었던 터라 이전까지는 남자선수와 겨루곤 했다. 하지만 남자선수와 체격 차이가 있었던 데다 그보다 나이 많은 선수들과 운동하면서 부상을 많이 입었다. 다리에 멍이 가실 날이 없었지만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남자들과 동등하고 싶다는 오기와 끈기로 운동했단다. 

승부욕은 그를 한층 성장시켰다. 중·고등학생이 되자 충남에서 1·2등을 다투는 태권도 선수가 됐다. 당진지역 시합에는 그를 내보내지 않을 정도였다. 당시 키 158kg, 체중 52~54kg이었던 그는 겨루기 선수로 주로 핀, 플라이, 팬탐 체급으로 대회에 출전했다. 김 관장은 “키는 작았지만 체격이 통통했다”면서 “대회 출전을 위해서 체중 감량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서른 살 전에 대학 졸업 결심

때론 슬럼프도 찾아왔다. 충남체고를 다니는 한 선수에게 계속 지면서 고등학교 3년 내내 만년 2등에 머물렀다. 당시 그 선수를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죽을 힘을 다 해 운동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안 사정도 안 좋아졌다.

그가 19살 무렵 양돈업에 종사하던 아버지가 다른 일을 찾으면서 경제적 위기를 맞았고 대학 진학까지 어려워졌다. 김 관장은 “지금 상황에 대학 가기는 어려우니 아버지가 함께 일하면서 ‘1년만 쉬자’고 말씀했다”면서 “어린 나이에 오기가 생겨 ‘그럼 내가 벌어서 가겠다’고 말씀드리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 생각하면 그때 부모님도 딸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지원하지 못해 속상했을 텐데 어린 나이에 부모님께 상처주는 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스무 살이 되기 전 인천에서 사범 활동을 시작한 그는 대학 진학에 대한 목마름이 컸다. 여느 또래들처럼 대학에 가지 못한 게 한이 됐다. 이에 김 관장은 30살이 되기 전에 대학에 진학해 졸업하리라 마음먹었다. 사범으로 일하며 차근차근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7년 만에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 인천전문대 무도학과에 진학한 그는 낮에는 체육관에서 관원들을 지도하고 야간에는 대학에서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시간을 2년간 보냈다.

김 관장은 “보통 오전 10시에 체육관에 출근해 밤 10~11시까지 근무했다”면서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는 야간수업을 들었는데 이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제자 덕분에 힘 얻어”

인천에서 10년간 사범 생활을 하다 김 관장은 11년 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결혼해 당진에서 가정을 꾸렸는데 도복을 입고 길을 지나가는 아이들만 봐도 기분이 좋았다. 당진을 떠나있었던 10년의 시간 동안 송악체육관이 송악태권스쿨로 변했다.

당시 송악태권스쿨에서 보조사범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김 관장은 송악태권스쿨의 문을 두드렸다. 보조사범으로 근무하던 중 전 관장이 도장 운영을 그만두면서 김 관장이 송악태권스쿨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김 관장은 “이미 송악체육관이 송악태권스쿨로 변했지만 옛날 송악읍 기지시리에 자리했던 유일한 체육관이 없어진다는 게 속상했다”면서 “어릴 때 운동을 시작했던 곳이기에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 김은미 관장과 유치부 관원들

20년 동안 사범으로 생활하고, 30년간 무도인으로 살아오면서 병도 얻었다. 체내에 갑상선 호르몬이 부족한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10년째 앓고 있어 환절기 등 온도와 몸 상태가 변하면 두드러기가 나곤 한다. 피로가 쌓이고 몸이 붓는 등 힘겹지만 제자들을 보면서 힘을 얻는단다. 힘든 상황에서도 그가 다시 도복을 입는 이유이기도 하다.

“몸 상태를 회복해 제자들에게 좋은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또한 품새를 다시 배워 제자들에게 보다 더 멋지게 품새를 교육하고 싶습니다. 먼 훗날 기회가 된다면 제자에게 체육관을 물려주고 싶어요.”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