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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
  • 입력 2021.08.27 23:28
  • 호수 1370

“소들섬에 철탑…역사에 남을 부끄러운 짓”
[월요일에 만난 사람] 우강면 송전선로 반대대책위원회 유이계·이봉기 씨 부부(우강면 부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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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농부였는데…철탑 반대 투쟁 8년째
“보상 때문에 반대? 억장 무너지는 소리”
“소들섬 철새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세월이 멈춘 것 같아요.” 

이봉기·유이계 부부에게 지난 8년은 악몽의 시간이자 희망의 씨앗이었다. 집 앞으로 펼쳐진 소들평야, 그리고 그 너머에 자리한 소들섬을 생각하면 웃었다 울었다 한다. 풍진세상 어떻게 돌아가든지, 그 모습 그대로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에 미소를 지었다가도, 어쩌면 곧 들어설지도 모르는 골리앗 같은 송전탑을 생각하면 왈칵 눈물이 난다. 한전이라는 거대권력 앞에서 한낱 촌부의 모습이 무력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끝까지 싸울 거란다. 세상은 때때로 평범한 우리의 이웃을 투사로 만들고, 혁명가로 만든다. 

“자식들이 걱정해 마음 아파” 

남편 이봉기 씨는 우강면 송전선로 반대대책위원회에서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아내 유이계 씨는 부장리 공동대책위원장이다. 주민이 많지 않은 마을에서 부부가 함께 송전선로 반대 투쟁에 뛰어든 지 8년째다. 부부의 50대가 그렇게 지나 60대를 맞았다.

“한 해 한 해 버텨왔는데, 어느새 환갑이 되었네요.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자식들이 우리를 보면서 마음 아파해서 그게 참 속상해요. 자식들은 우리가 이 일로 더이상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데, 그 마음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죠.” (유이계) 

북당진변전소에서 신탕정변전소까지 이어지는 송전선로가 소들섬을 지난다는 얘기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아주 평범한 농부였다. 신평면 상오리가 고향인 유이계 씨는 우강면 부장리에서 나고 자란 이봉기 씨와 결혼해 남편과 함께 이곳에서 농사만 짓고 살았다. 농사를 짓느라 이봉기 씨는 마을 이장은 물론이고 단체장 한 번 맡아본 적이 없었다. 아내 유이계 씨 또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서울과 당진을 오가면서 지내야 했기에 더더욱 지역일에 관심 갖지 못했다. 

트라우마로 남은 강제연행 

그러다 지난 2014년 송전선로 노선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관심 갖지 못하는 사이에 한전이 동네를 오갔고 마을에 철탑이 꽂힌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최상훈 위원장 부부와 함께 송전선로 반대에 나섰단다. 

우강면 체육대회가 열릴 때 송전선로 반대 현수막을 만들어 운동장을 돌았고, 이름조차 없었을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소들섬(소들섬이란 이름은 송전선로 반대 운동 과정에서 지난 2016년에 붙여졌다)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송전선로 건설 추진 관련 각종 자료를 모으고, 당진시청, 충남도청, 국토관리청, 금강유역환경청, 한국전력 등을 쫓아 다녔다.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항의하는 게 지난 8년간 이들의 삶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그래요. 보상 더 받으려고 반대하는 거 아니냐고. 이런 소릴 들으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돈이 문제였으면 적당히 타협하고 말지 이 힘든 걸 견디면서 여기까지 왔겠어요?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우리는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떳떳합니다.” (이봉기) 

지난 7월에는 송전선로 건설 현장을 막아서면서 부부가 함께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본지 제1365호 ‘한전 철탑 건설 막은 농민 6명 강제 연행’ 기사 참조> 논두렁에서 몸부림치면서 만신창이가 됐던 그날, 여러 명의 경찰에게 사지가 붙들린 채 논에서 끌려 나오던 그 장면,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고 범죄자처럼 경찰에 잡혀갔던 기억만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턱 막히고 눈물부터 흐른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그날의 일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일” 

내 재산도 아니고 지역과 환경을 위해 삶을 걸고 싸우는데 ‘쌈닭’이냐고 비아냥대던 어느 공무원의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히기도 했고, 찬반을 두고 이웃 주민들과 얼굴 붉히며 싸워야 할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내리곤 하지만 이대로 질 수 없단다. 

유이계 씨는 “그 어린 우강초등학교 학생들도 소들섬과 이곳을 찾는 철새들을 지키자면서 발벗고 나서고 있다”며 “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인데 지금 어른들이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환경을 소중히 가꾸고 보존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생태환경이 살아 있는 소들섬에 철탑을 꽂는다니, 어른들로서 이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며 한탄했다. 

“송전선로 반대 투쟁을 하면서 너무나 불합리한 것들을 많이 겪어 왔고, 잘못된 것들을 발견하게 됐어요. 당진시가 매년 9200만 원을 들여 이곳에 철새 먹이를 주는 만큼 이제 소들섬도 바로 위에 있는 솟벌섬처럼 철새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합니다. 제발 소들섬에 철탑만큼은 막아주세요. 소들섬을 지켜주세요.” (이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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