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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21.09.07 16:13
  • 호수 1371

[기고] 홍양선 프리스트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출향인 (송산면 상거리 출신)
가짜뉴스와 언론중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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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이 일단 후퇴했다. 여야 합의를 통해 법적 지위를 확보하게 될지 아니면 또다시 거친 샅바싸움으로 아예 없었던 것으로 끝날지 불투명하다.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약칭 언론중재법)은 지난 2009년에 제정됐다. 언론의 자유와 독립, 언론의 사회적 책임, 피해구제의 원칙, 사망자의 인격권보호, 고충처리 등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침해에 대한 피해구제로 정정보도권, 반론보도권 등을 내세우고 있다. 

반론권과 언론중재제도는 외국의 경우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 프랑스는 무려 1822년에 도입됐고, 이후 1970년대에 적용 범위가 확대됐다. 독일 역시 19세기말에 도입됐고 1960년대 전후로 반론권의 형사적 색채를 배제하고 민사적 방법으로 행사하도록 했다. 미국은 1969년에 전파의 유한성, 공익성 등을 근거로 한정적으로 반론권을 행사했지만 현재는 언론의 자유가 우월적 지위에 있는 편이다. 

우리나라는 1981년에 언론중재위원회의 설립과 함께 독일의 모델을 따라 반론권 제도를 도입, 개인의 피해 구제 차원에서 언론의 사실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반론권을 도입, 언론과 피해 당사자 간의 빠른 합의를 조정(중재)하고자 했다.  

각국의 언론은 기사 작성 스타일이 다르다. 한국은 스트레이트성 단문 기사가 많다. 일본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서두에 결론을 내고 이를 설명하는 형식이 많다. 외국의 기사는 주로 산문체로, 단문보다는 중문 형식이다. 그래서 외국기업 보도자료를 그대로 번역하면 한국 기자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휴지통에 버린다. 이를 다시 한국식 보도자료로 바꾸면 여러 매체에서 기사를 반영한다. 

그만큼 각국의 보도형태는 매우 다르다. 가짜뉴스도 충분히 상황을 설명하고 이야기하는 스타일과 그렇지 않은 경우, 영향을 받는다. 이런 상황속에서 한국의 가짜뉴스는 크게 두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하나는 권력에 대한 반대논리를 강하게 내세우는 가짜뉴스 프레임이다. 하나는 경제적 이득을 위해 가짜뉴스를 적절히 섞어서 기업으로 하여금 광고 등으로 대응을 유도하는 경우다.

전자는 기존 레거시미디어에서 주로 써온 경향이 있고, 후자는 인터넷매체가 많아지면서 기업을 겨냥한 매체를 통해 나타났다. 또한 포털을 통해 뉴스의 최신성으로 노출되는 알고리즘으로 인해 가짜뉴스의 남발을 부추기고 있다.

가짜뉴스의 피해는 생각보다 크다. 가짜뉴스 유형도 다양하다. △첫째, 팩트의 일부만 보도하는 유형 △둘째, 잘못된 설문이나 조사 데이터 일부만 보도하는 유형 △셋째, 데이터 오류 유형 △넷째, 기업 등 과거의 약점과 사건을 반복적으로 쓰는 유형 △다섯째, 기자 이름이 없는 유형 등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가짜뉴스의 최대 피해자였다. 일명 ‘논두렁 시계’ 사건은 가짜뉴스의 전형으로 일종의 망신주기였다. 몇해 전 생활용품 업체 다이소는 문구협회와 갈등을 빚었다. 소상공인 문구업체들이 다이소 때문에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것을 내세워 다이소의 문구 영업 제한을 펴기 위해 문구협회에서 설문 보도자료를 냈다.

“다이소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나요?”라는 질문을 통한 보도자료였다. 당연히 ‘그렇다’는 대답이 많았다. 이를 모 국회의원실에 줘서 의원실 명의로 내는 영악함도 보였다. 보도는 대서특필이었다. 내로라하는 매체는 모두 받아썼다. 
그럼 이게 사실일까? 흔히 소상공인의 어려움은 △인터넷주문 증가 △학령인구 감소 △대형마트 이용증가 △초등학교의 문구 단체주문 △다이소 등 문구 유통점 구매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질문을 제대로 하려면 ‘위 요소 중 어떤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어야 했다. 이후 잘못된 설문을 지적하면서 반박 보도자료를 냈다. 다수 매체에서 실었지만 이미 가짜뉴스가 먼저 나가다 보니 반론의 임팩트는 약했다. 그래서 가짜뉴스 소스를 교묘하게 주는 곳도 같이 관리돼야 한다.

언론은 진보나 보수 매체 할 것 없이 징벌적 손해배상법에 대해 반대한다. 언론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법이라고 한다. 진보 매체, 진보 정당 모두 반대한다. 물론 문구나 좀 더 명확한 법 논리가 필요한 것도 일부 보인다. 그렇지만 가짜뉴스가 버젓이 독버섯처럼 자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 중심의 법 필요성이 우선이다. 가짜뉴스가 존재한다면 그걸 낸 쪽은 가해자편이다. 그래서 언론에 설문을 하면 당연히 직업논리로 인해 반대가 많다. 대중의 입장과 생각이 제대로 언론에 나오지 않는 것도 문제다. 

철학자 칸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사적 이성과 공적 이성에 대해 말했다. 그러면서 이성의 공적 사용에 대한 중요성을 말했다. 언론계 종사자는 당연히 자신의 직업에 뭔가 제한을 두는 것에 반가워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성적 관점에서 보면 그건 사적 이성에 해당한다. 흔히 가짜뉴스는 평기자 선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 편집국 내부의 취재 지시에 의해 일어난다.

따라서 이미 가짜뉴스는 사적 이성이 아닌 공적 이성으로 바라봐야 할 영역이다. 앞으로 여야가 다시 협의 테이블에 앉는다. 피상적인 언론의 자유와 책임 논쟁이 아니라 현상에 대해 조목조목 토론하고 확인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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