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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02 14:56
  • 수정 2021.10.02 15:57
  • 호수 1374

제철소에서 불태운 38년 ‘강철인생’
[대한민국 명장을 만나다] 현대제철 철근압연부 이광택 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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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철근압연 분야 전문가
한보철강 부도…힘겨운 시간 함께 버틴 가족들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철근압연 분야 전문가
한보철강 부도…힘겨운 시간 함께 버틴 가족들 

기술 개발로 생산성 25% 향상에 기여 
“한 우물만 파온 인생 인정받은 기분” 

 

오로지 한 길만을 걸었다. 인생을 온통 바쳤다. 38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쉬이 지나간 세월이 아니다. 크고 작은 풍파와 부침이 오죽했으랴 마는, 모진 시간을 꿋꿋하게 견뎌냈다. 인내와 노력의 결실로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기술자로서 최고의 영예를 얻었다. 묵묵히 걸어왔던 지난 삶이 빛나는 명패에 오롯이 담겼다. 

▲ 지난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1 직업능력의 달 기념식에서 이광택 계장(오)이 대한민국 명장 증서와 휘장을 수여받았다.

영광의 ‘명장 3관왕’ 

현대제철 철근압연부에서 근무하는 이광택 계장이 대한민국 명장의 대열에 올랐다. 2008년 국가품질명장, 2020년 충청남도 명장에 이은 ‘명장 3관왕’이다. 1만여 명이 근무하는 전국 현대제철 사원 중 유일한 기록이다. 

대한민국 명장은 숙련기술장려법에 따라 산업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보유한 기술자로, 기술자들이 오르고 싶어하는 최고의 자리다. 1986년부터 시작돼 산업, 공예, 패션, 식품, 이·미용 등 37개 분야 97개 직종에서 현재까지 단 660여 명만이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됐다. 그만큼 매년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쳐 선발하는데 올해에는 전국에서 11명의 대한민국 명장이 탄생했고, 이 가운데 이광택 계장이 포함됐다. 

“지원서를 내기는 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더라고요.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드디어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로지 한 우물만 파왔던 제 인생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기분이랄까요.”

▲ 2021년 대한민국 명장패

패스스케줄 기술로 생상성 향상 

이광택 계장은 철근압연 분야 전문가다. 제철소에서는 다양한 공정이 이뤄지는데 △철광석을 녹여 용선(선철)을 만드는 제선 공정 △용선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제강 공정 △제강을 통해 만들어진 용강을 일정한 크기의 반제품으로 만드는 연주 공정 △반제품을 다양한 완제품으로 생산하는 압연 공정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 그는 철근압연 분야에서만 38년을 일했다. 

특히 이 계장이 가진 핵심기술은 압연 패스스케줄이다. 압연 소재가 압연롤을 통과(패스)해 원하는 형상을 얻을 때까지 스케줄에 따라 기록하는 압연 분야 최고 기술 중 하나다. 1~18번까지 있는 각 압연기를 통과할 때마다 달라지는 소재의 모양과 치수 등을 현장에 맞춰 개선함으로써 압연사고 감소 및 생산성 향상에 기여했다. 실제로 이 계장의 기술을 현장에 접목하면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의 생산능력인 100만 톤 대비 25% 이상 생산력이 증가했다. 이러한 그의 기술은 특허 및 실용신안 등록을 통해 이미 인정받은 바 있다. 

이러한 성과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늘 작은 수첩을 갖고 다니며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해둔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아이디어를 어떻게 현실화 할 것인지 고민하고 연구해왔다. 지난 38년 동안 아이디어를 기록해온 수십 권의 수첩은 그에게 가장 큰 보물이기도 하다. 

▲ 2020년 충청남도 명장패

월급 못 받을 정도로 힘들었던 시절 

하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경남 합천 작은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엔 유복했지만 마을에 오랜 가뭄이 지속되고 흉작이 이어지면서 농사가 생업이었던 가정형편이 점차 기울었다. 때문에 군 제대를 한 뒤 선택의 여지 없이 가족들을 위해 생계에 뛰어들었다. 개발이 한창이던 1980년대 당시 철강산업은 임금 수준이 높았고, 전망도 좋다는 이야기에 부산에 있는 금호산업에 입사했다. 그러다 한보철강으로 자리를 옮겨 1994년도에 처음 당진으로 오게 됐다. 당시 당진에 한보철강을 막 짓기 시작한 터라 눈코 뜰 새 없이 일했다. 새벽 5시에 출근해 밤 12시에 귀가하는 일이 3년 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회사에 열정을 바친 그 결과는 참담했다. 

1997년에 한보철강이 결국 부도를 맞은 것이다. 3600여 명이 근무하던 회사는 구조조정을 통해 600명으로 인원을 줄였다. 수많은 동료들이 자의반 타의반 회사를 떠났다. 이광택 계장을 비롯해 남아 있는 직원들도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이 삶을 무겁게 짓눌렀다. 각종 공과금이나 자녀들의 학비조차 제때에 내지 못할 만큼 힘든 시기였다. 그 시절 그의 아내는 안 해본 부업이 없을 정도란다. 

▲ 2008년 국가품질명장패

“가족들과 직장 동료들 고마워”

하지만 이광택 계장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 고민이 많았지만 당시 가장 최신식으로, 가장 큰 규모로 지어진 공장이 이대로 문을 닫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의 생각처럼 한보철강은 지금의 현대제철이 됐다. 돌이켜보면 수년 동안 힘겨운 시간을 버텨온 그의 판단은 운명적인 선택이었다. 당시에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았더라면, 오늘날 그는 대한민국 명장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이름이 그에겐 더욱 값지다. 시련을 이겨낸 그의 삶과 고통의 시간을 함께 견뎌온 가족들의 헌신이 명패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가 대한민국 명장이 되었다는 소식에 가장 크게 기뻐한 것도 아내였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이광택 계장은 그의 길을 뒤따르는 후배들에게 등대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그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곳에 기술을 전수하고, 청소년들의 진로 선택에도 도움을 주고 싶단다. 

“그동안 많은 선후배 동료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묵묵히 함께해온 동료들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는 다치지 않는 것, 안전제일을 가장 강조하고 싶어요. 특히 현장의 불편사항에 대해 개선방안을 찾고자 노력했으면 해요. 회사에 제안도 하고, 분임토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리고 자신만의 기술을 개발해 특허도 내고…. 회사의 발전과 자기 자신의 성장을 함께 이뤄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이광택 계장은… 
-1961년 경남 합천 출생 
-2008년 국가품질명장 
-2018년 우수숙련기술자 
-2020년 충청남도 명장
-2021년 대한민국 명장 
-산업통사자원부 장관상, 국회의원상, 
  충남도교육감상 등 다수의 표창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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