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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을 버텼는데 천막 농성 1년 못 버티겠나”
[르포] 무기한 천막 농성 돌입한 ‘소들섬을 사랑하는 사람들’

비바람 치던 날 천막 설치해 농성 시작
전기 없어 핫팩으로 밤새 추위와 싸우기도
밤에는 선별진료소 간이화장실까지 가야 해
“춥고 불편하지만 소들섬 지킬 수만 있다면…”
한수미l승인2021.11.20 12:22l(13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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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유이계 씨와 김영란 대표

‘소들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대표 김영란·유이계 씨가 겨울을 앞두고 거리에 나와 천막에서 버틴 지 오늘로 14일째다. 두 사람은 온종일 이곳에서 먹고 잔다. 천막 사이로 매서운 추위가 새어 들어오고, 시멘트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온다. 옷을 서너 겹씩 껴입고 이불을 꽁꽁 싸매도 잠시 내놓은 손과 발이 단숨에 식는다. 곧 영하의 추위가 올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더 이상의 송전철탑은 안된다”고 외치며 오늘도 찬 바닥에서 의지를 다진다. 


추위·습기와 싸웠던 첫날

지난 9일, 기온이 뚝 떨어지고 비바람이 몰아쳤던 날 당진시청 민원실 앞에 천막이 설치됐다. 전기도 없어 이틀 동안은 차 시동을 켜고 배터리를 연결해 사용했다. 추위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까 싶어 집에서 핫팩을 챙겨왔지만 오래된 탓인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투둑투둑 천막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바람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게다가 천막 사이로 빗물이 새어 들어와 바닥이 금세 축축해졌다. 군대 간 아들의 내복까지 꺼내 입을 정도로 오들오들 떨면서 보낸 첫날 밤이었다. 

“생전 처음 집을 나와 천막에서 잠을 청하면서 참 서러웠죠. 하지만 지난 8년 동안 철탑 문제로 싸워왔는데 천막에서 1년 못 버티겠나 싶더라고요. 어둠과 추위가 와도 겁나지 않아요.”(유이계)

전기·화장실·식사 모든 것이 불편

낮에는 당진시청 화장실을 이용하면 되지만 밤에는 의회 주차장까지 가야 한다. 코로나19 선별진료소 덕에 설치된 간이화장실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참을 가야 하는 번거로움과, 추위로 밥이 넘어가지 않아 두 사람은 며칠 동안 하루 한 끼로 식사를 때웠다. 그나마 당진시가 전기를 이용할 수 있게 해줘서 전자레인지를 사용해 즉석밥을 데워 끼니를 해결하다, 사람들이 밥솥과 인덕션을 가져다주면서 간단하게 음식을 해먹을 수 있게 됐다. 

김영란 대표는 “집을 나와 거리에서 생활을 해야 하니 긴장한 탓인지 입맛도 없고 하루 두 시간 남짓 겨우 눈만 붙였다”며 “하지만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새벽 1시에 확인하러 찾아오는 사람도”

간절한 마음에 사서 고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쇼’인 것처럼 천막농성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날 한 신문 기자가 김영란 대표에게 연락해 “천막이 아니라 집에 있는 거 아니냐”며 “현장 사진을 찍어 보내봐라”고 비아냥댔다. 그는 심지어 새벽 1시에 막무가내로 천막을 젖히고 들어와 자고 있던 두 사람이 깜짝 놀라는 일이 있었다. 그는 이들이 정말로 천막에서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김 대표는 “벼랑 끝에서 절박함을 호소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에 너무나 화가 났다”고 말했다. 

여성 두 명이 천막에서 밤을 보내고 있기에 가족들의 걱정도 크다. 유 대표는 “아들 둘이 번갈아 가며 전화를 한다”며 “어느 날 아들이 ‘지난 8년 동안 엄마의 말 중 70%가 소들섬 얘기였다’더라”고 말했다. 엄마 걱정에 자녀들이 이제는 그만하시라고 말리기도 하지만 유 씨는 물러설 마음이 없다. 

한편 중학교 2학년인 딸이 얼마 전 태권도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 때도 김 대표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천막을 지켜야 했다. 김 대표는 “그날은 괜히 서글퍼서 술을 조금 마셨다”며 “딸에게 전화해 ‘너도 금메달을 따겠다는 약속을 지켰으니, 엄마도 소들섬을 꼭 지켜내겠다는 약속을 이루고 말겠다’고 말하며 다시 마음을 다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반드시 철탑 건설 막아야 한다”

천막농성이 계속되면서 응원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우강면 주민들은 조를 나눠 천막농성 현장을 찾아 이들과 함께 하고 있으며, 지역 내 여러 시민사회단체의 위문도 이어졌다. 사람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관심에 곧 다가올 영하의 추위도 두렵지 않다고. 이들은 오히려 “우리가 걱정된다면 소들섬을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하루 빨리 지정해주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이계 대표는 “당진지역 주민들은 이미 발전소만으로도 큰 희생을 하고 있다”며 “게다가 고압 송전철탑 526기가 꽂히는 동안 많은 피해를 받았다”고 호소했다. 이어 “더 이상의 철탑은 안 된다”면서 “이번 무기한 천막 농성이 당진시와 한국전력, 그리고 시민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영란 대표는 “최악의 환경도시 당진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면서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의 화려함은 당진시민의 피눈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도시의 시민만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며 “한국전력과 끝까지 싸우다 죽는 것이 미래세대에게 아름다운 환경을 물려 줄 수 있는 마지막 길이라는 각오로 반드시 철탑 설치를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소들섬은?
1973년 삽교천지구 대단위 사업 후 강 중간에 모래톱이 쌓이면서 자연적으로 조성된 약 17만㎡(약 5만1400평)의 하중도다. 당초엔 이름도 없이 무명섬으로 불렸으나 2019년 우강 주민 15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우강면민 화합 한마당 행사를 통해 ‘소들섬’이라고 공식적으로 명명됐다. 

소들섬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소들섬 일대는 당진지역의 급격한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개발되지 않은 천혜의 환경을 유지해 오고 있다. 이곳은 겨울철 철새도래지로 해마다 가창오리, 왜가리, 큰기러기 등 수백만 마리의 철새가 찾아오고 있다. 당진시에서도 8년 전부터 9000여 만 원의 예산을 들여 이 일대 제방둑 1km 지점까지 볏짚을 썰어 철새 먹이주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일종의 철새 보호구역이다. 

주민들의 요구 사항은?
우강평야와 삽교호, 소들섬 구간에 고압 송전탑 및 송전선로 건설 추진을 중단하고, 지중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철새도래지인 소들섬을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수미  d9111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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