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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2.18 12:51
  • 수정 2021.12.18 13:29
  • 호수 1376

“봉사는 마음 먹기에 달렸어요”
세상 사는 이야기 이영희 원로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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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촌2리 마을 일부터 시작해 새마을·여성단체협의회 등에서 활동
봉사 수익금 마련코자 미역 팔기도
여든 나이에도 봉사 계속

 

 

1978년부터 시작한 봉사가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영희 소소회 전 회장은 43년 동안 5000시간을 봉사했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위한 세월보다 남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마을 곳곳에서 열리는 경로잔치를 당진지역에서 이 회장이 처음 시작했다. 사라지는 전통이 아쉬워 한복 바르게 입기 대회를 10여 년 이상 열기도 했다. 함께 잘 살고 싶어, 어려운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싶어 시작한 일들이었다. 

지난 3일 2021년 자원봉사자의 날을 기념해 당진시자원봉사센터가 기념식을 개최한 가운데 이날 이영희 회장이 특별공로패를 받고 11명의 원로 자원봉사자로 선정돼 그의 생애가 담긴 자서전이 출간됐다. 

마을 일과 함께 봉사 

이영희 회장은 고대면 대촌2리 새마을 부녀회장부터 시작해 고대면 새마을부녀회장, 당진군 새마을부녀회장, 당진시여성단체협의회장, 소소봉사회장까지 지난 세월을 숨 가쁘게 달려왔다.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이영희 회장은 지난 1958년 결혼과 함께 당진을 찾았다. 고대면 대촌2리에 정착한 그는 1978년 대촌2리 새마을 부녀회장에 선임되며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바깥 활동을 하기 쉽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그때부터 봉사의 삶을 일구기 시작했다. 

무의탁 노인 및 소년소녀 가장 도와

10년 동안 마을 부녀회장을 맡아 동네에 사는 무의탁노인과 소년·소녀 가장을 살폈다. 당시 당진군여성단체협의회에서 팔던 미역을 동네에서 팔기 시작했다. 완도에서 자라 맛 좋다고 입소문이 나며 잘 팔렸고, 덕분에 봉사 수익금을 모을 수가 있었다. 

이영희 회장을 포함한 부녀회원들은 지난 1976년과 1977년 두 차례에 걸쳐 경로잔치를 개최했다. 이밖에도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수업료를 비롯해 도서 구입비와 의료비, 생활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당시 신장병과 백혈병을 앓는 두 학생을 위해 미역 수익금을 기부키도 했다. 안타깝게도 백혈병을 앓던 학생은 세상을 떠났지만, 신장병을 앓던 학생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씩씩하게 일어설 수 있었다. 

“운동장 풀 메고 인정 받았죠”

마을 부녀회장에 이어 1988년에는 고대면 새마을 부녀회장으로 선출됐다. 이때도 미역 장사로 얻은 수익금으로 무의탁노인에게 동·하절기 의류를 전달했다. 
1994년 당진군 새마을부녀회장이 됐을 무렵엔 어려움도 있었단다. 이 회장은 “당시 정권이 바뀌면서 새마을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했다”며 “새마을기도 내리고 사무실을 빼라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원금도 없고 모아 놓은 돈도 없어 봉사는커녕 단체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때 힘들었죠. 일단 돈이 없으니 일을 하기가 힘들잖아요. 당시에 ‘크리나’라는 주방세제를 팔았어요. 이걸로 돈을 충당해서 시각장애인들이 도왔죠. 또 하루는 체육대회를 한다며 고대면에 있는 종합운동장 풀을 다 베야 한다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때 새마을 회원들과 ‘본때를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각자 낫과 호미를 가져와 풀을 메기 시작했어요. 운동장이 엄청 넓었는데 풀을 다 벴어요. 그때부터 당진군과 당진군의회에서 새마을의 활동력을 인정하면서 다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세탁 봉사의 시작

새마을 활동을 마친 후에는 당진군여성단체협의회장으로 취임하게 됐다. 중고품 알뜰매장을 열어 헌 옷을 모아 깨끗한 것은 저렴하게 팔고, 그 외에는 업체에 넘겨 수익을 내기도 했다. 여성단체협의회장 임기를 마칠 무렵 단체의 도움으로 충남도로부터 폐기물 수거 사업 성과를 인정받으며 당진시가 성과급을 받았다. 

이영희 회장은 당시 당진에 없었던 빨래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세탁기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세탁기와 다리미판까지 받았지만 이영희 회장이 이임한 후 한동안 방치 상태에 놓였다. 마음 한편에 아쉬움으로 자리했던 가운데 지역 후배들을 모아 ‘깔끔이 봉사단’을 꾸리면서 세탁봉사를 이어갔다. 이 회장은 “스스로 빨래하기 어려운 집에서 옷감을 가져와 발로 밟아가며 빨래했다”며 “긴 줄에 옷감을 널고, 마르면 걷어서 다리미로 다려 집집마다 전달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건조기까지 갖춰진 당진시자원봉사센터 작업장에서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세탁 봉사를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이 이영희 회장의 현 과제기도 하다. 

작은 미소를 주는 ‘소소회’

여성단체협의희장을 마친 후 이영희 회장은 지금의 소소봉사회인 소소회를 조직했다. 22명의 전직 새마을부녀회장 출신 회원들이 봉사심으로 뭉쳐 만든 단체다. 작은 소(小)에 미소 소(笑)를 더해 만들어진 소소회는 지난 2002년부터 지금까지 밑반찬 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맨손으로 봉사했죠. 각자 집에서 난 고춧가루며 파, 마늘을 가져와서 반찬을 만들었어요. 일부 후원도 받고요. 다 여성 회원인지라 그때는 개인 소유 차가 없었어요. 딱 한 명 자가용이 있던 회원이 하루종일 밑반찬 배달한 게 기억나요.”

또 이와 함께 시각장애인을 도와주자며 회원들이 사비를 모아 연말에 겨울을 날 수 있는 잠바를 후원키도 했다. 하루는 면천지역에 거주하는 시각장애인 가정에 잠바 하나 들고 찾아갔다. 이 회장은 “정신 장애가 있는 아내가 있었다”며 “잠바는 하나밖에 없는데 눈이 보이는 아내는 남편 잠바가 부러운지 말도 못 하고 내내 남편 잠바만 뜯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순간이 얼마나 난처하고 미안했는지, 회원들에게 이것만큼은 꼭 해주자며 사비를 모아 또 잠바를 구매해 다음 날 전달해 준 기억도 있다”고 말했다. 

“진실한 봉사자 많아졌으면”

오랜 세월 봉사로 삶을 채워온 이 회장이 오로지 바라는 것은 지역에 진실한 봉사자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는 “봉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우러나오는 봉사가 지역에서 많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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