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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교천 통해 조세미 경창에 실어나르던 곳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합덕의 포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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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말에 제작된 지도. 삽교천방조제 건설 이전의 아산만일대 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 해안가에 짙게 표시된 부분이 당시의 갯벌지대로 대부분이 현재는 육지로 개발되었다. (※1969년 12월 발행, 국립건설연구소)

합덕은 오래 전부터 감조하천(感潮河川)인 삽교천 연변에 위치한데다 넓은 평야를 기반으로 쌀 생산량이 많아 수상교통이 발달한 지역이다. 우강과 더불어 곳곳에 조창이 설치되어 삽교천의 조운로를 통해 조세미를 경창(조선시대에 설치한 중앙의 세곡 저장창고)에 실어 나르던 곳이기도 했다. 

조석의 영향은 삽교천의 합덕읍 구양도 다리를 지나서 예산군 고덕면 구만리와 무한천의 예산읍 창소리까지 미쳤다. 남원천의 담넘이 부락과 우강면 창말은 과거 선박의 출입이 가능했다. 이러한 곳은 간석지성 충적지의 외곽으로 믿어진다. 해안의 간석지성 충적지는 주민들이 인식하는 소들강문들의 범위를 넘지 않는다. 

우강면과 합덕읍 일대의 소들강문들은 ‘갯땅’으로, 염분이 전혀 없는 ‘질땅’에 비해 하답으로 여긴다. 합덕의 이런 지형변화는 예부터 전해지는 자연마을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합덕리의 개안(浦內), 시거리(강개·뱃터), 아랫개안, 웃개안, 신흥리의 독개 등이다.

그러나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삽교천변에 토사가 퇴적되고 간석지를 농경지로 개발하면서 조금씩 선박의 출입이 어려워질 만큼 삽교천의 폭이 줄어들었다. 1970년대에 삽교천 방조제의 건설로 완전히 바닷물이 차단되었다. 

1970년대 이전 합덕읍 구양도(옥금리)까지 인천행 여객선과 새우젓 등을 실은 어선이 오갔으나, 어업 중심의 포구를 이룰 만큼 어선과 어민들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마저도 1970년대 삽교천방조제의 건설과 교통의 발달로 바다와 합덕의 나루터를 오가는 배들은 사라졌다. 합덕읍 소재의 대표적인 나루터는 독개나루와 구양도나루가 있다. 

우현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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