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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읍면소식
  • 입력 2021.12.21 10:13
  • 수정 2021.12.23 09:06
  • 호수 1385

[그때, 이곳 – 도시재생의 길을 묻다 4] 당진상고(현 당진정보고)
1946년 개교한 당진 최초의 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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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농고 → 당진상고 → 당진정보고
넓은 운동장 군민체육대회 등 진행돼
“크고 멋있었던 플라타너스 나무 사라져”

 

<편집자주>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옛 당진지역 주민들의 삶의 배경이 됐던 원도심이 주민들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주민들의 삶과 지역의 문화가 묻어 있던 오래된 건물들이 철거되고, 그곳에 새로운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 지역의 이야기를 역사로 기록하는 것은 변화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현재 세대들에게 맡겨진 책임이자, 이 지역에서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의무이다. 더불어 도시재생이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주민들의 목소리도 담아내야 한다. 

당진시대에서는 ‘그때, 이곳 – 도시재생의 길을 묻다’라는 기획을 통해 도시재생 사업이 이뤄지는 주요 지점을 중심으로 사진과 영상, 그리고 글로 기록하고자 한다. 또한 도시재생사업의 추진 과정을 점검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살펴보며 디지털 스토리텔링 보도를 통해 주민들의 목소리도 함께 담을 예정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됩니다. 해당 내용은 유튜브 ‘당진방송’ 채널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글 싣는 순서>
1. 당진시네마(당진극장)
2. 구 군청사 
3. 구 당진읍사무소·당진군민회관 
4. 당진정보고등학교
5. 옛 우물터 
6. 승리봉공원

 

당진정보고등학교는 지역의 역사와 함께 하며 주민들의 학창시절을 담고 있다. 1946년 개교한 이후 2021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거쳐가며 어른으로 자라난 것처럼 학교의 모습 또한 변화해 다양한 풍경을 담고 있다. 

“정보고등학교 일대가 원래는 다 논이었어요. 9988병원 뒤 전부 다 논이었죠. 현재 정보고등학교 자리는 원래 당진중학교 건물이었어요. 목조건물. 이후에 당진농업고등학교가 설립됐지. 그러다 당진상고로 변했고, 어느 시점에 당진중학교 자리로 당진상고가 이사 와서 당진정보고등학교가 됐어요.” (이덕하) 

“지금 정보고 자리는 원래 당진중학교 자리야. 우리가 중학교를 지금 정보고 자리에서 졸업했다니까요. 처음 우리가 중학교 들어가니까 남녀공학이었어요.” (고영석) 

“우리 세대만 해도 대학을 가기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마는 친구들도 많았고…. 그러다 보니 어디로 유학을 간다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들이었죠. 그래도 당진에 당진농고가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을 거예요. 이 학교가 당진에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죠.” (김충완) 

 

42년 동안 당진상고로 존재 

1946년 당진공립초급중학교로 시작한 학교는 1951년에 당진농업고등학교로 바뀌었다가, 1956년 당진상업고등학교로 변경됐다. 그렇게 42년 동안 이어져온 당진상고는 1998년 당진정보고등학교로 개명했다. 가장 오랫동안 당진상고로 운영돼 온 학교는 상고였을  당시 경쟁률도 치열했을 정도로 지역에 중요한 교육기관 중 하나였다.   

“상업고등학교 다니는 학생들의 목표는 은행 취직이에요. 은행 취직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다 당진상고를 가려고 경쟁했어요.” (홍윤표)

“당진상고하면 그전에는 주판을 잘했거든. 여기 나온 사람들이 취직이 잘됐지. 원래는 중학교도 같이 있다가 중학교가 산 위로 나갔어. 원래는 중고등학교가 같이 있었지.” (맹광호) 
당진상고는 당시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군민체육대회 등이 이뤄지는 지역주민들의 장소이기도 했다. 지역 행사가 있을 때면 운동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금은 고대면에 종합운동장과 같은 시설이 있지만 옛날에 우리나라 실정에 그런 게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죠. 당진시내에 버스가 하루에 몇 번 다닐 정도고, 대부분 다 걸어다녔지. 서울 가려면 10시간씩 걸리고 이런 시대에 살 때였으니까요. 그래서 군민체육대회 같은 행사를 하면 전부 당진정보고 운동장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어떻게 보면 지금 종합운동장의 역할을 당진정보고 운동장이 했다, 그렇게 볼 수 있죠.” (김충완) 

“당진군민 체육대회는 다 거기서 했어요. 다른 덴 갈 데가 없으니까. 지금도 생각나는 게, 동네 선수들이 나와서 모래 가마니 이고 육상 달리던 장면이 생각나요. 당시엔 그렇게 넓은 공간이 당진에 없었죠.” (고영석)

 

생생하게 기억 나는 플라타너스 나무 

특히 옛 당진정보고에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길게 이어진 길이 유명했다. 한때 나무를 베느냐, 두느냐를 두고 한참 논란이 있었단다. 

“플라타너스 나무, 지금은 없어졌지. 운동장을 넓히고 테니스장 만들고 하느라 없앴지. 운동장 가운데 있었는데, 원래 거기가 논이었거든. 논이라서 나무가 있었던 거야. 논을 메꿔 운동장을 만들었으니….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 교문에 들어가는데, 9988병원 밑까지 플라타너스 나무가 있었어. 나무도 크고 멋있었는데….” (김연환) 

현재 학교 앞 모습은 너무나도 많이 변했다. 온통 논이었던 곳에 크고 작은 건물들이 들어섰고, 도로가 났다. 최근에는 교통량이 많은데다 복잡한 통학로, 불법주차 등으로 학생들의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또한 학교 일대가 낙후돼 우범지역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그 자리에 그대로 66년의 세월을 버티며 머물러 있다. 

“지역이 가장 변하지 않는 것은 학교가 이동하지 않는 거예요. 당진정보고, 당진고등학교, 탑동초등학교, 당진초등학교, 호서중·고등학교 등 학교는 쉽게 옮겨가지 않잖아요. 원도심과는 달리 그게 아주 중요한 부분이에요. 원도심은 각종 기관과 시설이 다 나가버렸잖아요. 그나마 학생들이 등하교를 하면서 원도심을 많이 오가기 때문에 동아리 활동 등 학생들이 많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김충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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