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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흥! 호랑이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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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호랑이의 해’
당진 지명·전설 속 호랑이 이야기

 

<편집자 주>
‘검은 호랑이의 해’ 임인년(壬寅年)의 해가 떠올랐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당진에도 호랑이가 살았을까? 합덕읍 운곡리에는 눈이 내리면 호랑이 발자국이 보였다고 전해지는 봉호산이 자리해 있고, 순성면 성북리 아미산 아래 신선바위 밑에도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전설 속 호랑이는 인간의 효행을 돕거나 인간의 도움을 받으면 은혜를 갚고, 성묘하는 효자를 등에 실어 나르거나 시묘살이 하는 효자를 지켰다. 은혜를 갚기 위해 좋은 묏자리를 찾아주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보은의 동물로 남아 있는 호랑이, 이번 호에서는 2022년 검은 호랑이의 해를 맞아 호랑이와 관련된 당진 지명과 전설을 소개한다. 

한편 호랑이와 관련한 전설은 ‘당진군지’ 및 ‘디지털당진문화대전’에서 발췌했다. 

[신평면 망객산]
아가씨, 알고보니 호랑이?

착하고 성실해 재산도 꽤 모았지만 서른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했던 성씨 성을 가진 총각은 단란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소원이었다. 우연히 만난 탁발승은 그에게 “절에 가서 소원을 빌며 200일 동안 탑돌이를 하라”고 말해줬다. 탑돌이를 한 지 200일이 돼 가던 무렵, 그의 앞에 아름다운 아가씨가 나타났다. 성 총각은 깊은 산골에 있는 아가씨 집까지 따라갔다. 집에서 그를 맞이한 한 노파는 성 총각에게 “곧 아가씨의 오라비가 올테니 골방에 숨어있으라”고 했다. 곧 오라비가 왔고 오라비들은 “어디선가 사람 냄새가 난다”며 집을 뒤졌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두 형제가 (호랑이로) 살생하면서도 반성하는 기색이 없어 큰 벌을 내릴 것”이라고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는 오라비 대신 자신에게 벌을 내려 달라고 호소했고, 며칠의 말미를 얻어, 그제서야 성 총각에게 자신이 호랑이라고 고백했다. 덧붙여 며칠 후 마을에 호랑이가 나타나면 성 총각이 나서 ‘호랑이를 잡겠다’고 말하라고 시켰다. 며칠 뒤 마을에는 진짜 호랑이가 나타났다. 호랑이가 있는 곳으로 가니 아가씨가 있었고, 아가씨는 자신이 죽으면 이곳에 절을 지어 달라며 스스로 배를 찔렀다. 그러나 쓰러진 것은 아가씨가 아닌 호랑이었다. 그 이후 성 총각은 호랑이를 잡아 상과 벼슬을 얻어 행복하게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 당시 지어진 절이 망객산에 있다고 알려졌지만 현재는 사라졌다. 

[우강면 서낭댕이]
소금장수 잡아 먹으려던 호랑이

우강면 주민들은 합덕읍을 가기 위해서는 언덕을 넘어야 했다. 창1리와 합덕읍의 경계인 고갯마루에는 ‘서낭댕이’라고 부르던 서낭당이 있었다. 이곳은 마을 주민들의 평안을 기원하며 서낭제를 지내던 곳이었다. 이곳에는 한 전설이 남겨져 있다. 소금장수가 쉬어갈 곳을 찾다 이곳을 발견하곤 절을 올린 후 하룻밤을 묵게 됐다. 밤중에 호랑이가 내려와 소금장수를 잡아먹으려 했고, 서낭이 “이놈! 그는 우리 집에 온 손님이다!”라며 호통을 쳤다. 호랑이가 배고파 못 견디겠다고 하자, 서낭은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새끼 밴 개 한 마리가 있으니 그것을 먹으라고 했다. 산모퉁이 뒤에는 임신한 여자가 오줌통을 이고 보리밭에 나오고 있어 호랑이는 그 여자를 냉큼 잡아먹고 서낭에 돌아와 “잘 먹고 간다”며 인사를 했단다. 사람들은 이 여자가 서낭에게 밉보여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것이라고 믿고 서낭에 더욱 깍듯이 예를 다했다는 이야기다.

[순성면 함박산]
할머니로 둔갑한 호랑이가 살던 ‘범당골’

송악읍 가교리와 순성면 갈산리, 성북리에 걸친 함박산은 낮은 산이지만 제법 경사가 있다. 이 함박산 바로 아랫마을은 예로부터 범당골이라 불렀다. 이 범당골에는 할머니로 둔갑한 호랑이의 이야기가 얽혀 있다. 옛날 옛적 함박산 아래 초가집 한 채가 있었고, 길을 잃은 한 나그네가 이곳에서 묵게 됐다. 단칸방에서 할머니와 앉아 있던 나그네는 옷감을 짜는 할머니 치맛자락 사이에서 호랑이 꼬리를 발견했다. 놀란 나그네는 잠시 나갔다오겠다며 방을 나와 마을로 도망쳤고 사람들에게 알렸다. 마을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할머니가 있는 초가집을 향했다. 방문을 여니 호랑이 한 마리가 함박산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이 때문에 호랑이가 살았다고 해 함박산 아래는 ‘범당골’로 불리게 됐다. 

[석문면 초락도리]
느티나무 안, 호랑이? 살쾡이?

초락도리는 과거 초락도라고 불리는 섬이었다. 1980년대 대호방조제 건설이 시작되고 논으로 간척되면서 육지로 변했다. 초락도리에는 수령 700여 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초락도리 홍 씨 종중에서 관리하는 보호수로, 고려 말에는 ‘해운암’이라는 절터였다고 전해진다. 해운암은 스님의 실수로 절에 불이 나 사라진 절이라고 주민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절이 없어진 후 절터 뒤에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과거 느티나무 동공 안에 호랑이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어느 날 호랑이 울음소리에 놀란 마을 사람들이 나무 안을 살펴보니 호랑이가 아닌 커다란 살쾡이였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대호지면 해미골]
호랑이에게 죽기 전 나팔수의 나팔 소리
대호지면 해미골에는 ‘나팔수와 호랑이 전설’이 남아 있다. 어느 고을의 군대에 나팔수가 있었다. 술을 몹시 좋아했던 나팔수는 여느 때처럼 술을 잔뜩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쓰려져 산길에서 잠이 들었다. 그때 마침 배가 고파 사냥을 나온 호랑이가 나팔수를 발견하고 신이 났다. 가까이 가보니 술 냄새가 진동해 도저히 잡아 먹을 수 없어 기다렸지만 도통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술을 깨게 하려고 꼬리에 물을 젹셔다 나팔수 얼굴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잠이 깬 나팔수가 실눈을 뜨고 보니 호랑이가 보였고, 나팔수는 ‘영락없이 죽었구나! 죽거나 말거나 생전에 불던 나팔이나 불고 죽자’는 생각에 호랑이가 다가 와 꼬리에 물을 축이려는 찰나 ‘삑!’하고 나팔을 불었다. 그때 호랑이가 깜짝 놀라 똥을 나팔수 얼굴에 싸고 도망을 갔더란다. 나팔수는 호랑이 똥에 화상을 입어 살가죽이 벗겨졌지만 다행히 목숨은 구할 수 있었다. 

[정미면 천의리]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한 효자”

범난골 전설은 정미면 천의리 냉전골에 살던 효자 황팔두가 둔갑술 책을 얻어 호랑이가 되면서 갖게 된 전설이다. 황팔두는 어머니의 병을 고치려고 치성을 드리다가 얻은 둔갑술 책을 읽고 호랑이로 변신한다. 개의 생 쓸개 3000개를 먹어야 낫는 병에 걸린 어머니를 위해 황팔두는 매일 밤 호랑이로 변신해 개를 잡아 왔다. 하지만 사연을 모르는 아내가 둔갑술 책을 태워 버리는 바람에 황팔두는 다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결국 책을 태워 버린 아내를 물어 죽였고, 그 후  뒷산으로 도망가 살았는데 나무가 베어지자 호랑이가 살 수 없게 되어 죽었다고 전해진다. 

[합덕읍 운곡리] 
“봉호산의 삼형제 바위, 호랑이 신으로 모셔”

합덕읍 운곡리에는 봉호산이 있다. 힘이 장사인 농부 박 씨와 아내는 아들 셋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왜구와 싸우던 중 목숨을 잃게 됐다. 그 기세로 왜적들은 박 씨의 아내를 납치했다. 세 형제는 졸지에 부모를 잃어 고아가 됐고 봉호산에 올라 어머니가 돌아오길 산신령에게 매일 빌었다. 눈이 많이 오던 날, 결국 삼형제는 추위에 얼어 죽고 말았다. 그때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눈보라 속에서 삼형제 형상을 한 바위가 생겨났다.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봉호산에서 산신제를 지내왔다. 현재는 산신제를 지내진 않지만 호랑이를 마을의 신으로 모셨던 이곳  주민들은 산신제를 지낸 후 마을 근처에 범 발자국이 찍혀 있는 것을 종종 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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