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3-28 10:44 (목)

본문영역

  • 문화
  • 입력 2022.01.06 19:56
  • 호수 1388

평범한 사람들이 쓴 특별한 자서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0대 노인이 컴퓨터로 쓰고 할머니와 손녀가 함께 제작
당진시립도서관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수강생 4명 자서전 발간

▲ 당진시립중앙도서관에서 주관한 <사진으로 쓰는 내 인생의 자서전>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재문, 김초이, 표정기, 이상자(지도강사), 전순희, 이원구, 추경숙 씨.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만 자서전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책은 아무나 내는 게 아닌 줄 알았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 특별함을 찾아낸 네 사람의 자서전 쓰기는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는 여정이었다.

당진시립중앙도서관 주관으로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사진으로 쓰는 내 인생의 자서전’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이상자 지도강사는 12회기 동안 그림책, 시, 영화, 드라마 등을 활용해 수강생들에게 글감을 던졌다. 이상자 지도강사가 수업 때마다 주제를 정해 던진 질문을 통해 7명의 수강생들은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수강생들은 사춘기를 떠올려 보기도 하고 어머니·아버지와의 추억을 반추하기도 했다. 이들은 내가 이룬 것과 앞으로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도 작성했다. 이렇게 모은 기억과 사진을 엮어 7명 중 4명의 수강생들이 각각 한 권의 책을 펴냈다. 네 사람 모두 표지 디자인과 내지 편집까지 손수 작업했다. 세상에서 유일한 자서전이다. 

표정기 씨의 '교직자의 인생길'
“고운 내 반쪽”

자서전을 낸 수강생 중 82세 나이로 가장 고령자인 표정기 씨는 젊은 사람 못지않게 컴퓨터를 잘 다룬다. 이 실력으로 직접 타이핑하고 편집한 자서전 <교직자의 인생길>에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담겼다.

합덕읍 성동리에서 태어난 사내가 부모님의 중매로 23살에 아내(한영자)를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한 지 2개월 만에 군대 입대 영장이 나와 군대로 떠났단다. 표 씨는 “남편 없이 아내 혼자 시댁에서 살면서 손에 익숙하지 않은 농사일을 하며 고생했다”며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아 어렵게 살게 한 것이 남편으로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결혼 생활 59년 동안 아내는 그의 반쪽이 되고, 그는 아내의 반쪽이 돼 살아왔다. 2005년을 마지막으로 43년간 몸담았던 교직을 떠난 그는 이제 아내와 여생을 즐길 일만 남았다 생각했지만 아내 건강이 좋지 않아 걱정이다.

아내는 신장이 좋지 않아 수술을 거듭했고, 기력이 쇠해 방 안에 누워 있을 때가 많다. 현재 아내는 주3회 주기적으로 병원에서 투석하고 있다. 표 씨는 “잠든 아내를 볼 때면 그동안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앞으로도 아프지 않고 아내 뒷바라지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안식구가 건강을 회복해 편안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란다.

추경숙 씨의 ‘50대 아름다운 도전’
아버지의 교훈

추경숙 씨는 언젠가 자서전을 쓸 날이 오면 도움이 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는 5세 때부터 기억을 더듬었다. 과거 여행을 떠나면서 그가 가장 보고 싶은 이는 아버지였다. 어린 시절 최고의 선물은 온갖 종류의 과자를 가득 담은 종합선물세트였다. 아직도 그의 눈에는 월급날이면 종합선물세트를 사들고 오던 아버지의 모습이 선하다. 그는 “아버지가 스무 살이 될 나를 축하하며 목걸이를 선물했는데 아직도 가지고 있다”며 “다정한 아버지였다”고 추억했다.

아버지에 대해 수업할 때면 먼저 세상을 뜬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아버지가 보고 싶은 그는 자서전에 아버지의 20대, 30대, 40대, 50대 얼굴 사진을 함께 실었다. 아버지는 다정하면서도 자녀들에게 엄격하게 가르쳤다. 11살 난 그에게 아버지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것, 항상 웃는 얼굴로 살 것,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것, 자녀 앞에서 부모가 다투지 않을 것 등의 가르침을 전했다. 아버지의 교훈 중 ‘도전’은 특히 그의 삶의 모토가 됐다.

직장을 다니다 어깨 수술로 경력이 단절된 후 일자리를 찾기 쉽지 않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애니맘 현장지원단, 당진시 귀농귀촌 서포터즈, 통기타 동아리 ‘통기타 두드림’, 여성 일자리 창출 공모사업으로 영상미디어 콘텐츠 교육사업을 펼치는 핑크썬 활동까지 추 씨는 다방면으로 도전했다.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도전하는 삶을 살아온 추 씨는 그간의 도전을 정리해 자서전 <50대 아름다운 도전>을 집필했다.

전순희 씨의 ‘청춘은 져도 행복은 파란 하늘 아래 남아’
손녀와 할머니가 함께 한 자서전

전순희 씨의 자서전 <청춘은 져도 행복은 파란 하늘 아래 남아>는 손녀(임서진)와 함께 만들어 더욱 특별했다. 컴퓨터를 잘 사용하지 못해 걱정하던 그에게 막 수능을 치른 손녀가 할머니를 돕겠다며 다가왔다. 

전 씨는 새벽 1~2시에 일어나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글을 써 내려갔다. 200자 원고지에 잔뜩 써 내려간 글을 손녀(임서진)가 컴퓨터로 옮겼다. 손녀는 자서전에 함께 수록할 사진을 찾아 넣었고 때로는 전 씨가 원고지에 사진을 붙여 넘겨주기도 했다.

이 작업을 반복하면서 손녀는 할머니도 누군가의 딸이었고 아내였고 며느리였고 엄마였음을 깨달았다. 손녀 임서진 씨는 감사의 글을 통해 “내가 태어나기 전 젊은 시절의 할머니를 이 책으로 만나게 돼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어릴 적 할머니가 나를 돌봐줬기 때문에 할머니와 함께한 기억이 많다”며 “할머니와 함께 한 추억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시간이었는지 다시금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의 공동 작업물은 전 씨가 70평생 살아오며 느낀 삶의 지혜가 담겼다. 자서전에 가족과의 일상 이야기, 손주들과의 추억을 실은 전 씨는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다. 전 씨는 “인생에 해가 뜬 날도, 비가 온 날도, 진눈깨비가 내린 날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행복한 일이 70%, 힘들었던 일이 30%였다”면서 “행복한 70%의 나날들은 현재에도 이어진다”고 전했다.

김초이 씨의 ‘36.5℃ 온기 한 스푼’
“온기가 나를 만들어”

김초이 씨는 올 한 해 책 한 권을 써보는 것이 목표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1시간 정도 일기 쓰는 시간을 가져왔던지라 글쓰기에 대해서 비교적 부담이 적었다. 평소 에세이를 즐겨 쓰기도 해서 글을 통해 나를 보여주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김 씨는 32년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사람들에게 받은 온기를 떠올렸다. 김 씨 곁에는 기도로 그를 응원하는 목사님, 같이 울고 웃었던 친구들, 묵묵히 자신을 믿어주는 부모님과 시부모님, 항상 따듯한 위로를 전하는 남편이 있었다.

이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 도움, 사랑을 받았던 경험을 엮어내어 따듯함이 묻은 자서전 <36.5℃ 온기 한 스푼>을 엮었다. 김 씨가 손글씨로 제목을 쓰고 온도계 그림을 직접 그려 넣었다. 그는 “제목 속 ‘온기’를 표현하고자 온도계를 그렸고 따듯한 느낌을 주고자 자서전 겉표지를 노란색으로 디자인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에 결혼한 그는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란 남편은 그 사랑을 다시 내게 전해준다”며 “남편에 대한 글을 쓸 때 가장 따듯한 분위기의 글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이 온기로 성장했어요. 살가운 성격이 아니라 그동안 고맙다는 표현을 잘 못 했어요. 이 책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