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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합덕의 포구
인천행 배가 오가던 번화했던 구양도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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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양도리와 삽교천 일대의 모습

마을주민 원종성 씨의 기억에 따르면 삽교천 가운데 솟아 있던 구양섬은 일제 강점기 당시 구양도다리가 건설되면서 사라졌다. 

“지금은 구양도라고 하지만 원래는 구양섬이라고 불렀어요. 이쪽에 다리 놓는 바람에 다 없어져서 그런데 그때 이 마을회관만한 섬이 하나 있었죠. 쌀장사들이 방아 찧은 쌀을 싣고 엔진 단 통통배에 실어서 인천에 가서 팔고, 그 돈으로 물건도 사 오고 그렇게 했어요. 그때만 해도 여기에 술집도 있고 식당도 있고 그럴 정도로 번창했습니다. 삽교천을 막은 뒤로 차츰차츰 그런 게 없어졌죠.” (원종성)

인천행 여객선과 화물선, 어선들이 드나들던 구양도포구에는 자연히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다. 예당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도정하는 방앗간은 물론, 술집도 여러 곳이었다. 구양도포구에 이름난 술집으로는 ‘양촌집’이라는 곳이 있었다고 한다. 고덕 양촌마을에 사는 사람이 운영해 양촌집이라 불렸단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주막들이 더 있었다. 

원종성 씨의 부친(故 원문희)이 운영하는 ‘구양도방앗간’도 포구 근처에 위치했다. 인근에서 생산된 쌀을 도정해 인천으로 올려보냈던 구양도방앗간은 3년간 운영되다 원문희 씨의 병환으로 폐업했다. 그 후 옥금리에 새 방앗간이 들어섰는데 서야중학교 초대교장인 류재하 씨의 작은아버지인 故 류진열 씨가 운영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옥금리에 두리방앗간이 들어섰다. 또한 1973년 옥금리농업협동조합과 버그내협동조합이 합병해 합덕단위농업협동조합으로 발족, 1991년 합덕농협 미곡종합처리장이 전국1호로 옥금리에 준공됐다. 

우현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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