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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면 신당리 ‘찬미의 정원’ 서기숙 대표
“당진에 뿌리 내리고 싶은 예술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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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고 도자기 빚으며 시 쓰고 동화 창작까지
2년 전 이천에서 당진으로…공방·숙소도 운영 예정

 

신평면 신당리 ‘찬미의 정원’ 서기숙 대표(52)가 지은 창작동화 <꽃똥 이야기>의 아기 민들레는 정착할 곳을 찾아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하지만 닭장에선 닭에 먹힐 뻔하기도 하고, 아스팔트 위에서는 쌩쌩 다니는 자동차를 피해 다른 곳을 찾아야만 했다. 지친 아기 민들레 씨앗은 “제가 어느 곳으로 가든지 좋은 분을 만나게 해 달라”며 기도한다.

다시 정처 없이 떠돌던 민들레 씨앗은 큰 똥을 만난다. 먼저 똥에 붙어 있던 씨앗들은 더럽다며 떠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민들레 씨앗은 똥과 함께 비와 바람을 맞으며 예쁜 꽃을 피운다. 그때 지나가던 한 사람이 말한다. “어머, 여기 꽃똥이 피었네”

 

찬미의 정원 문 열어

신평면 신당리 강가 옆에 있는 도자기 공방 카페 ‘찬미의 정원’ 서기숙 대표는 유년시절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꿈을 포기하고 또 자본주의에 밀려 일을 접어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서 대표는 항상 꿈을 마음에 담고 기도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찾아갔다.

2년 전 경기도 이천에서 당진을 찾은 서 대표가 최근 신평면 신당리에 ‘찬미의 정원’을 문 열었다. 그리고 똥을 만난 아기 민들레 씨앗처럼, 서기숙 대표도 당진을 만나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꽃을 피울 준비에 나서고 있다. 

 

“재능을 펼칠 기회를 주세요”

현재 서 대표는 도자기를 빚는 도예가지만,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림을 그렸다. 중학교 때 그의 손재주를 알아봤던 선생님이 그를 미술의 세계로 이끌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재료 살 돈도 없었던 그에게 재료비를 지원해 줄 테니 그림만 그리라던 선생님이었다. 그때 처음 접한 것이 동양화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꿈을 접어야 했다. 형편이 어려우니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업하라는 부모님 뜻에 따라 상고에 진학해야 만 했다. 졸업 후 그는 한 회사에 취업했으나, 마음 속으로 “재능을 펼칠 기회를 달라”며 되뇌이곤 했다. 

 

“한 번 원 없이 공부해보자”

갑작스럽게 아버지의 병간호를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 이천에 온 그는 병간호를 마친 뒤 이참에 원 없이 공부해보자고 결심했다. 입시 학원을 찾았으나 그에겐 돈이 없었다. 그때 학원장이 월 20여만 원의 학원비 대신 취미생처럼 5만 원만 내고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왔다. 동양화를 전공하는 것은 서 대표뿐이었는데도 외부강사를 채용해 강의를 열어주기도 했다.

그는 “당시 학원도 환경이 열악한데다가 원생들이 학원비를 밀리기 일쑤여서 운영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돈이 없어 라면만 먹는 나에게 학원비도 낮춰주고 원장 사모님이 도시락을 싸서 주기도 할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 덕에 그는 3개월 만에 성신여자대학교 동양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성과주의식 미술교육에 회의감 느껴

그는 학교에 다니면서 학비를 벌기 위해 아이들을 가르쳤다. 졸업 후에는 이천에서 미술 교습소를 운영했다. 도자기의 도시인 이천인지라 미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예를 접했다.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면서 도자기를 굽기도 하고, 지역에서 도자기 축제가 열릴 때는 직접 빚은 도자기를 가지고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취미 수준에 불과했다.

도예로 완전히 전향한 것은 대형화된 프랜차이즈 학원 때문이었단다. 그는 “학원이 대형화되면서 아이들이 입시를 위해 창의성 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며 “차량 운행까지 하는 학원 사이에서 작은 미술 교습소는 살아남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40세에 들어서며 나이를 먹어도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 도예가로 전향키로 했다”고 말했다. 

 

도자기에 아름다운 그림 그려

그는 도자기에도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번지고, 겹치는 그림 기법을 사용하기엔 흙은 종이와 달랐다. 도자기를 알면 알수록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도자기기술학과를 찾아 공부하며 지식의 깊이를 더해갔다.

그는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입혀 구우면 색이 달라지거나 날아가는 경우가 많다”며 “여러 실험 끝에 먼저 유약을 바르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법 연구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 기술을 활용해 그는 도자기에도 마치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낸다. 작고 생명력이 강한 야생화는 그의 주요 그림 소재가 되곤 한다. 이와 더불어 실생활에도 사용할 수 있는 공예품도 만들고 있다. 

 

지난 2년 전 당진 찾아

서 대표가 당진을 찾은 건 지난 2년 전이다. 그는 이천도자예술마을에 입주해 작업실과 공방을 운영했다. 하지만 규제로 수익사업을 할 수 없어 생계를 위해 다른 곳을 찾아야만 했다. 그때 알게 된 곳이 당진이었다. 남편과 함께 낚시하기 위해 찾은 당진에 이끌려 농막을 두고 한 계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리고 카페를 만들고 그의 작품을 들여놓았다.

오는 3월이면 공방과 작업실이 문을 열어 더 많은 사람들과 도자기로 소통해 나갈 예정이다. 그는 “당진에 정착하고 싶다”며 “앞으로 이곳에 뿌리내리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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