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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
  • 입력 2022.01.28 20:25
  • 호수 1391

천막농성 81일만에 쟁취한 당진 소들섬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
■소들섬을 사랑하는 사람들 김영란·유이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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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넘게 걸린다던 행정절차…5개월만에 지정받아
“한겨울 추위보다 힘들었던 건 인격모독과 무시”
첫번째 사진은 소들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유이계·김영란 공동대표.
(두번째 사진부터) 소들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당진시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천막농성을 다녀갔다.
 
▲ 첫번째 사진은 소들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유이계·김영란 공동대표.(두번째 사진부터) 소들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당진시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천막농성을 다녀갔다.

드디어 소들섬이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당진시청 앞 무기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81일만에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빨리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당진시에서도 지난해 12월 본지 취재 당시 “환경부를 비롯해 5개의 협의기관이 얽혀 있는데다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 절차가 복잡하다”며 “최대한 서둘러 2022년 5월을 목표로 보호구역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2년 이상 소요되는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이 지난해 8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돼 온 것을 감안하면 불과 5개월만에 이뤄졌다. 

송전탑 지중화 전략 ‘보호구역’ 지정

소들섬을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논의는 북당진-신탕정 345kV 송전선로가 우강면 부장리·신촌리를 지나 소들섬을 통과해 아산시로 넘어가는 문제가 가시화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우강면 송전선로반대 대책위원회(위원장 최상훈, 이하 우강대책위)가 철탑 건설이 아닌 지중화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소들섬 일대를 철새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자는 제안이 제기됐다. 이후 우강대책위 뿐만 아니라 소들섬을 사랑하는 사람들(공동대표 김영란·유이계)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을 촉구하며 제출한 청원이 지난해 9월 충남도의회를 통과됐다. 이후 당진시의회 김명진 의원의 발의로 지난해 9월 당진시 야생생물 보호구역 관리 조례가 제정됐고, 소들섬을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주민설명회가 개최됐다. 

그 사이 “소들섬을 지키자”며 시민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삽교호 일대를 돌아보는 자전거 캠페인이 한여름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폭염과 폭우 속에서 진행되기도 했다. 또한 우강초등학교 환경동아리 ‘환경의사회’ 학생들은 소들섬을 주제로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주관한 ‘이곳만은 꼭 지키자’ 공모사업에 참여해 환경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읍소하며 울부짖었던 시간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당진시 환경정책과에서 소들섬을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추진함과 동시에, 당진시 허가과에서는 송전철탑 건설이 가능하도록 한국전력공사에 개발행위 허가를 내 논란이 일었다. 어딘지 석연치 않은 지지부진한 과정들이 계속되자 결국 소들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김영란·유이계 대표가 지난해 11월 당진시청 민원실 앞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그리고 매주 2회 최석동 비서실장과 이상인 당진시정책특별보좌관을 비롯해 환경정책과·기후에너지과·허가과 등 관계부서 과장 및 담당 팀장이 참여하는 소들섬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을 위한 TF 회의를 진행하고 각종 자료와 추진 상황을 공유했다. 때로는 고성이 오가기도 했고, 공무원들에게 “(소들섬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을 앞당겨) 제발 집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읍소도 했다. 하지만 순탄치 않은 여정 속에 김영란 대표는 한겨울 추위를 견디며 크리스마스와 새해까지 천막에서 보내야 했다. 

김 대표는 천막 안에서 온종일 관련 자료를 분석했다. 행정적 절차와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어떤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환경부 국장에게 ‘각서’ 받고 돌아와

가장 큰 고비였던 환경부 협의가 설 명절을 넘길 것이라는 소식에 김영란·유이계 대표는 지난 24일 곧장 세종시에 위치한 환경부를 쫒아갔다. 환경부 주무관과 지속적으로 소통해 오면서 소들섬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이 얼마나 절실한지 수차례 전달했지만, 막상 전결권을 가진 담당 과장을 만나자 이 사안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소들섬이 어디에 있는지, 왜 주민들이 빠른 지정을 요구하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지난 80일 동안 집 떠나 길바닥에서 생활하며 무엇을 한 것이었나 허탈감과 자괴감이 몰려왔다. 김영란·유이계 대표는 환경부 공무원들을 앞에 두고 대성통곡 했다. 

김영란 대표는 “환경부의 동의 의견을 받을 때까지 몇 날 며칠 환경부 앞을 지키겠다는 심정으로, 죽을 각오를 하고 올라갔다”며 “밤 10시가 돼서야 비로소 담당 국장으로부터 ‘1월 25일 중에는 당진시청에 문서로 회신하겠다. 우리를 믿고 돌아가 달라’는 친필 각서를 받고 당진에 내려왔다”고 말했다. 

환경부 국장의 약속대로 25일 저녁 7시 무렵 환경부로부터 야생생물 보호구역 신규 지정 검토의견(동의)을 회신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영란 대표와 유이계 대표는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환경부 검토의견이 내려온 이후에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사전설명회 등을 통해 미리 준비해놨던 야생생물 보호구역 관리위원회가 26일에 열려 보호구역 지정을 의결했다. 그리고 설 명절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8일 당진시가 지정 고시를 내면서 소들섬이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공식 지정됐다. 

다음 목표는 개발행위 허가 취소

하지만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다. 소들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다음 목표는 철탑공사를 가능케 했던 개발행위 허가를 취소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들섬 일대 계획된 송전선로를 지중화 하는 게 최종 목표다. 사람들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이라며 불가능할 거라고 말했지만,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을 이뤘듯 개발행위 허가 취소와 송전선로 지중화도 이뤄낼 것이란다. 
이로써 소들섬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을 요구하며 시작한 무기한 천막농성이 81일부로 막을 내렸다. 그동안 당진시청 앞을 지켰던 천막은 설 명절을 보낸 뒤 오는 4일 철거될 예정이다. 하지만 개발행위 허가를 취소할 때까지, 그리고 우강면 구간 삽교호 일대 철탑을 모두 지중화 할 때까지 당진시 관계 공무원들과 함께 하는 TF회의는 지속하기로 했다. 

3개월 가까이 천막에서 생활한 김영란 대표는 “이번 설 명절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게 됐다”며 “지난 28일 김홍장 당진시장을 만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주민들의 뜻이 이뤄지도록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면서 기뻐했다. 

함께 해준 사람들 그리고 가족

한편 함께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철야를 포기하고 집과 시청을 오갔던 유이계 대표와 남편 이봉기 우강대책위 부위원장은 김 대표 혼자 밤새 천막을 지키는 동안 매일 해가 뜨면 천막으로 출근했고, 날이 어두워져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조금이나마 추위를 이겨낼 수 있게 천막을 보수하고 방한용품과 음식을 실어 나르고,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유이계 대표는 “지난 8년 동안 우강 주민들이 싸워왔던 것보다 단 몇 개월 동안 김영란 대표와 함께 했던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해냈다”며 “처음 천막농성을 김 대표가 제안했을 때, 일평생 해보지 않았던 일에 대해 두렵기도 했지만 온 열정을 쏟아가며 이렇게 함께 나서주는 김 대표가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기관을 상대하고 반환경적인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꼈지만 김 대표의 모습에 힘을 얻었고, 소들섬을 지키고자 하는 데에 원동력이 됐다”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봉기 우강대책위 부위원장 역시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을 계기로 당진시민들이 지역의 환경과 마지막 생태환경의 보루인 소들섬을 지키고, 그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불가능한 일에 대해 떼쓴다는 식으로 조롱하고 야유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만큼 간절했던 것인데 천막에서 생활한다고 인격마저 모독당하는 기분이 들었을 때 정말 속상했습니다. 추위 속에 먹고 자는 일은 문제가 아니었어요.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은 우리가 함께 이뤄낸 성과입니다. 그리고 오롯이 엄마의 뜻을 응원하며, 엄마 없는 집에서 3개월을 기다려준 쌍둥이 아들(병철·병민)과 딸 (봄)에게 진심으로 고맙습니다.”(김영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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