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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2.25 20:25
  • 호수 1394

그때 그 사람 故 김상현 당진군의회 초대의장
당진문화원 자리에 있던 ‘설성학교’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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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학교 설립해 무상교육 실시
폐교 후 노후까지 이웃 도우며 살아
청소년 선도활동 등으로 대통령 훈장

지난 2008년 작고한 故 김상현 당진군의회 초대의장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됐다. 1922년 당진읍 읍내리(현 수청동)에서 태어난 그는 문맹퇴치와 농촌계몽 운동을 하며 사재를 털어 지역에 학교를 건립하고, 학생들을 무상으로 가르쳤다. 오랫동안 당진에 터를 잡고 살아온 토박이들은 현재 당진문화원 자리에 있었던 설성농업학교와 설성상업전수학교를 기억할 것이다. 

지역에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고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설성학교의 존재를 아는 사람을 찾기 힘든 요즘, 故 김상현 전 의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공덕과 뜻을 기리는 사람들이 그를 추억하고 있다. 

설성농업학교 설립해 교육에 전념
김상현 전 의장은 청주상고를 졸업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조선금융조합·조선식량영단 등 금융기관에서 일했다. 이후 마흔 되던 해인 1962년에 설성농업학교를 설립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당진군지에 따르면 설성농업학교가 처음 위치했던 곳은 당진읍사무소 창고로, 일제 치하 당시 설성심상고등소학교 자리였다. 창고에 창문이 있을 리 없으니, 벽을 뚫어 창문을 내고 바닥에는 가마니를 깔아 생활했다. 책상은 선거 때 쓰고 버린 투표함으로 대신했다. 그러다 겨울을 앞둔 11월 창고를 비워주게 되면서 미군 부대에서 찢어진 천막 두 개를 얻어다 치고, 솔잎을 긁어다 불을 피워 불을 쬐면서 공부를 했다. 

이후 1964년 현재 당진초등학교 별관 자리로 학교를 옯겼다. 교실 6칸을 짓고 수업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야간을 이용해 구두닦이, 신문배달부 등 생계에 뛰어든 아이들을 중심으로 야학을 열었다. 중학교 과정을 1년 과정으로 기초를 가르쳤으며, 1965년 정식으로 설성중학교 인가를 받았다.

1967년에는 대지를 더 넓혀 복도가 있는 교실 6개를 추가로 지었다. 이때 설상상업전수학교 인가를 받아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등학교 과정을 교육시켰다. 김상현 전 의장은 당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가방과 필기구, 교복 등을 무상으로 제공하며 오로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다. 

하지만 1969년 정부가 중학교 평준화를 시행하면서 수업료 징수 문제와 교사 월급 지급 등이 요구됐고, 본래의 설립 취지인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무료교육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자 1979년 자진 폐교했다. 

어려운 학생들 위해 한평생 바쳐
이후 김상현 전 의장은 소년소녀가장, 결손가정, 재소자 등 어려운 환경에 처한 청소년들을 돕는 일에 앞장섰다. 특히 1993년부터 결손가정 및 소년소녀가장 25명에게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적금통장을 만들어 100만 원씩 적립하고, 명절 때마다 환경미화원 및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격려품을 지원하는 등 여든 나이에도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고령으로 건강이 악화된 상황에서도 200여 명의 학비 지원과 인성교육을 위한 선도활동을 펼쳤고, 심지어 지인이 간병에 보태라고 받은 푼돈까지 전부 모아 지역 청소년을 위해 사용했다. 아들 김낙유 씨는 “평생 봉사하며 살았던 아버지에게 항상 자부심과 존경심을 갖고 살았다”며 “아버지의 삶을 따라 어려운 청소년을 조금이나마 돕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1회 훌륭한 아버지상 수상
60년 넘게 껌팔이, 구두닦이, 재소자, 비행청소년 등 불우청소년을 위해 살아온 김 전 의장은 1967년 사회교육 및 문맹퇴치 공로로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고, 1985년에는 재소자 등 불우청소년을 선도한 공로로 또 한 번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기도 했다. 

더불어 1986년 제1회 훌륭한 아버지상과 1994년 제5회 보호선도대상 보호관찰분야 대상을 수상했으며, 1999년 정의사회 구현과 청소년 선도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는 등 국가와 지자체로부터 수많은 상을 받았다. 특히 김상현 전 의장을 통해 배움의 기회를 얻은 제자들과 주민들이 그의 은공을 기리는 비석을 세웠으며, 공덕비는 현재 당진문화원에 자리해 있다. 

어려운 학생들에게 아낌 없이 내어주며 살았지만 그의 형편이 넉넉했던 것은 아니다. 39세에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그는 홀로 6남매를 키웠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포상으로 받은 금반지를 팔아 지역사회에 기탁하고, 가난한 아이를 데려다 숙식을 함께하면서 글을 가르쳤다. 

아들 김낙유 씨는 “사실 아버지는 어려운 이들을 돕느라 가정을 등한시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아버지를 늘 자랑스럽고 존경스럽게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제1회 훌륭한 아버지상을 수상했을 때는 감격스러워 많이 울었다”고 덧붙였다. 

당진군의회 초대의장 역임
김상현 전 의장은 1956년 32세의 나이로 당진면의회 의원에 두 번이나 당선되기도 했다. 이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하고, 1991년 초대 당진군의회 의원으로 당선됐다. 의원으로 선출된 뒤에는 전반기 의장을 맡아 첫 당진군의장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김 전 의장과 함께 의정활동 및 사회활동을 했던 성기문 전 당진군의장은 “김 전 의장은 사회봉사를 무척 많이 한 사람”이라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교육사업과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봉사활동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형편이 넉넉지 않았는데 그를 존경하는 이들이 배후에서 후원을 많이 해줬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었다”고 덧붙였다. 

이홍근 전 충남도의원 역시 ”김 전 의장은 형님이 준 쌀을 어려운 이웃에게 다시 나눠주곤 했다”며 “작고한 지 14년이 지났지만 지금 생각해도 보기 드문 진정한 봉사자였다”고 말했다.  
 

>>故 김상현 전 의장은…
- 1922년 당진시 수청동 출생, 2008년 향년 86세 나이로 별세
- 당진면의회 의원 당선
- 설성농업학교 및 설성상업전수학교 설립, 교장으로 활동
-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당진군협의회 초대협의회장
- 심훈상록문화제 초대집행위원장
- (사)한국 B.B.S 대전충남연맹 당진군지회 초대회장
- 바르게살기운동 당진군협의회 초대회장
- 당진군의회 의원 당선
- 제1대 당진군의회 전반기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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