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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22.04.19 18:51
  • 호수 1401

[기고] 머체왓에 감자 심고
이종미 당진수필문학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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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미 당진수필문학회 고문

유월 장마 전에 알토란같은 녀석들을 무사히 만날 수 있을까. 돌밭에 씨감자를 심는 내내 끓어오르는 분노는 그럭저럭 눌렀지만 걱정과 미안함은 가라앉질 않는다. 

지난해 제주도에 갔다가 우연히 들렀던 머체왓*이 당진에 있는 우리 논으로 옮겨왔다. 그것도 거금을 들여서. 편백나무, 삼나무, 붉디붉은 천남성 열매와 이끼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던 ‘머체왓 숲길’이 아닌 그냥 돌밭만 왔다. 흙을 소개하는 것이 직업인 지인이 과일나무 심기 딱 좋은 마사토를 어렵게 확보했다고 한다. 서둘러 통장을 털었다. 그분이 지나가는 말처럼 무엇을 심을지 물었다. 그냥 할 말이 없어 가벼운 인사처럼 묻는 말인 줄 알았다. 주변 사람들이 심었다는 사과대추나 감나무를 심을까 한다고 건성으로 대답했던가. 마사토는 사과대추든고구마든 아무거나 심어도 되는 최고 좋은 흙이라고 믿었다. 

머체왓의 시작은 지난해 가을이다. 퇴직 후 간단한 먹거리라도 경작하고 싶다는 남편을 위해 유튜브를 둘러보다가 황금 벼가 출렁이는 논을 매입했다. 당연히 현장 답사도 했다. 컴퓨터 화면으로 볼 때보다 실물이 더 네모반듯하여 십 원도 깎지 않고 즉석에서 매입해 버렸다. 

문제는 벼를 베고 난 후에 시작됐다. 논바닥이 바로 옆 개울과 높이가 같아 수렁이었다. 추수한 논바닥에 송사리가 살 정도니 말해 무엇 하랴. 성토를 고민하던 중 때마침 좋은 흙이 나왔단다. 직장 일정으로 가볼 수는 없지만 성토와 발효퇴비까지 뿌려서 갈무리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돈이 없어 흙을 사지 못하지 흙이 없어 구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니 서두르지 말라는 남편의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하루 한나절 만에 수렁논은 내 키 높이만큼 솟아올라 밭으로 변신했다. 가끔씩 바람 쐬러 갈 곳 생겨 좋았다. 더 멋진 것은 거므스름하게 뿌려진 퇴비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까치무리와 흰 눈 덮인 밭은 한 폭의 풍경 그 자체였다. 

그러구러 베란다에 부드러운 3월의 볕이 찾아들었다. 무엇을 심을지 가을부터 했던 고민은 겨울이 지나도 봄이 와도 무게도 덜지않고 찾아왔다. 머리를 아무리 맞대고 고민해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경험 없는 우리의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농자재마트에서 정보나 얻어 보자는 맘으로 찾아갔다. 농부들이 분주히 들랑거리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다들 씨감자를 사 간다. 싹틔워서 2주 후에 심어야 한다나. 

즉석에서 결정했다. 제초제 한 번 뿌리지 않은 옥토에 과일나무 심어서 공연히 농약 칠 것이 아니라 감자를 심어 땅을 살리고 싶었다. 농자재 마트 직원에게 상담을 받고 씨감자 여덟 상자와 그 외의 농기구를 샀다. 마침 밭 주변에 사는 분이 감자심기 좋도록 이랑을 내 준다고 했다. 그뿐인가. 여자 어르신께서는 자원하여 감자 심는 날 일손을 보태주신다고 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멀리 자동차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밭은 줄무늬 노트처럼 열을 갖추고 있었다. 유명 화가의 그림 못지않은 멋스러움을 밭고랑에서 찾다니 참 행운이었다. 서둘러 백미터가 넘는 긴 고랑을 따라 가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머리 깃은 반듯한데 중간부터 끝으로 갈수록 이랑이 삐뚤빼뚤했다. 로터리 잘 치기로 소문난 분이라고 했거늘. 자세히 들여다보니 삐뚤어진 곳마다 큰 돌덩어리가 기계와 마찰하여 깨졌거나 하얗게 갈려있었다. 아무런 장비도 없이 목장갑만 끼고 그 큰 돌덩이를 사각 두둑에 내다 버렸다. 한두 시간만 주우면 해결날 줄 알았는데 어림도 없었다. 감자를 심으려면 이틀이라는 시간밖에 없다. 하지만 돌은 이틀을 주워도 사각형 두둑을 빼곡히 채워도 끝없이 나왔다, 감자를 심기도 전에 온가족이 몸살 났다. 

과수원을 하겠다고 대답한 나를 자책하며, 돌밭을 만들어 놓고 거금을 받아간 업자를 욕하며 여린 눈을 묻었다. 서너 달 동안 돌 틈에서 숨 쉴 생명에게 고통을 안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경험 없는 주인의 실수를 넋두리처럼 고백하며 돌밭에 감자를 묻었다. 삐뚤어지거나 찌그러짐 없이 동그스름한 녀석들만 나오기를 고대하는 양심이 찔린다.
*머체+왓: 돌+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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