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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읍면소식
  • 입력 2022.04.29 21:26
  • 수정 2022.10.28 16:55
  • 호수 1403

[우리마을 이야기 3] 우강면 송산1리
왕건을 승리로 이끈 당산 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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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까지 아산만 갯물 들어오기도
“오고 싶은 마을 만들기가 목표”

<편집자주>
당진시에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없어진 마을이나 없어질 위기에 처한 마을, 또한 자연마을 중에서도 농촌 고령화로 인해 전통의 맥이 끊길 상황에 놓여 있는 마을이 있다. 본지에서는 마을의 전설과 옛 지명, 보호수를 비롯한 자연환경, 열녀문·효자비 등 다양한 마을의 이야기와 마을이 가진 자원을 발굴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마을의 이야기를 기사와 영상으로 담아낼 계획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 보도합니다. 

 

우강면 송산1리 마을 전체가 형형색색의 다양한 꽃들로 가득이다. 꽃이 흐드러진 마을의 모습은 봄이 왔음을 실감케 한다. 이명열 부녀회장은 “처음에는 우강면 송산1리가 산골이라 싫었다”며 “하지만 공기 좋고 아기자기하게 예쁜 마을이라 이제는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좋다”고 말했다. 또한 박명숙 부녀회 총무는 “우리 마을은 솔선수범해서 봉사하는 주민들이 많다”며 “배울 점이 많은 동네”라고 전했다. 

 

소나무가 많은 송산(淞山)

우강면 송산1리는 지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면천면 법천면의 상길리, 중포리, 은동이 병합한 마을이다. 송산리라는 지명은 산에 소나무가 많아 붙여졌다. 그중 송산1리는 은골 또는 어은골, 어은동이라고 불렸다.

바닷고기가 상류를 타고 골짜기에 숨으러 왔다가 나갔다고 해서 어은골, 어은동이라고 불렸는데 주민들이 ‘어’자를 빼고 ‘은골’이라고 불렀다고. 유태호 이장은 “옛날에 송산1리 당산까지 아산만 갯물이 들어왔다”며 “바닷고기들이 알을 낳고 부화하기 위해 갯고랑에 숨어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 거북바위

장수와 재복을 빌던 거북바위

송산1리에 위치한 당산은 현재 주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다. 당산에 오르면 우강면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당산에는 거북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는 거북바위의 등무늬가 희미하지만 원래는 거북이 등껍질 무늬가 선명했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거북이 두 마리가 있었는데 암거북이는 한 부분이 쪼개져 거북이등 모양만 있어 현재는 숫거북만 남았다고 한다.  

한편 거북바위는 예로부터 장수를 뜻했으며, 주민들은 거북이가 재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도 주민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 오고 있다. 과거 견훤과 왕건이 싸울 때 견훤은 성동산성에, 왕건은 당산에서 전투를 준비했다. 어느 날 왕건은 당산 아래 포구까지 내려가면 거북이 한 마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의 꿈을 꾸게 된다.

그래서 왕건이 갯물이 있는 곳으로 갔더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황거북이가 갯가에 떠 있었다. 왕건은 신기해하며 거북이 등에 탔는데, 이 거북이가 바다로 가지 않고 전투를 준비하던 당산까지 올라와 성동산성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돌로 변했다. 이를 본 왕건은 자신이 견훤을 이길 것이라는 징조로 믿었고, 실제 견훤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내용이다.  

이외에도 거북바위에는 다양한 설화들이 전해지고 있다. 거북바위가 바라보는 지역이 부자가 된다고 믿었던 가운데, 거북이의 머리 모양이 합덕읍과 우강면 송산리 쪽을 향하고 있어 주민들은 합덕읍이 부흥했다고 생각했다고. 유태호 이장은 “타 지역 사람들이 몰래 머리 방향을 바꿔놓고 가기도 했다”며 “1975년경 이를 발견한 주민들이 원래 상태로 복원하고자 굴삭기를 동원해 시멘트와 자갈 등을 사용해 거북바위를 고정시켰다”고 말했다.

더불어 유 이장은 “초등학생 시절 거북바위가 있는 당산으로 매년 두 차례씩 소풍을 왔다”면서 “그 당시 선생님들이 이곳에 돌화살촉과 그릇 등을 묻은 곳이 있다고 가르쳐줬다”고 말했다. 이어 “1950~60년대에는 거북바위 앞에서 무속인들이 경을 외는 일이 많았다”면서 “아기를 낳지 못하고 집안에 우환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 소금고개

소금고개의 전설

송산1리에는 소금고개도 있다. 마을에는 지금도 소금고개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가난한 선비의 집에 한 스님이 찾아왔다. 스님은 목탁을 치며 시주를 요구했고 선비는 “스님께 드릴 돈도 물건도 없으니 그냥 가시라”고 말했다. 그러자 스님이 하룻밤만 신세를 지겠다고 하자 선비는 거절할 수 없어 허락했다. 스님이 바랑을 벗어놓고 잠을 청하려 하는데 선비가 하얀 쌀밥을 올린 밥상을 가져갔다.

이에 스님이 “조금 전 부처께 드릴 보리쌀도 없다더니 어떻게 쌀밥을 가져왔냐”고 묻자, 선비는 “아버지 제사상에 올리고자 했던 것”이라며 “아버지는 내년에 해드려도 되지만 스님은 내 평생 우리집에 처음 온 손님이기에 쌀밥을 대접하겠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스님은 감동해 선비에게 모내기할 못자리 터를 잡아주었다.

스님은 “아무날 아무시에 못자리를 좌향으로 잡고 10년 뒤 당신 집에 들릴테니 공양미 100석을 시주하라”고 말했다. 이후 선비는 논도 장만하고 살림도 늘리게 됐다. 10년이 되는 날 밖에서 목탁 소리가 들렸다. 스님은 선비에게 쌀 100석을 요구했지만 선비는 약속한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뗐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스님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다시 망하게 될 것이라며 쌀 100석 값을 요구했다. 귀가 솔깃해진 선비는 스님에게 돈을 건넸고, 스님은 선비에게 소금고개 남쪽에 있는 건방죽 안에 있는 샘에 이무기가 선비의 조상과 재물을 빼앗으려 하니 그 이무기를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죽이는 방법으로 강문리 사발포에 있는 소금배에서 소금 100석을 사다가 그 샘에 풀라고 알려줬다. 선비는 품꾼 100명을 보내 소금을 사다가 소금고개 밑에다 모두 풀었다. 그런데 다음 날 건방죽에 커다란 거북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고, 그 후로 선비는 쫄딱 망해 결국 마을을 떠나게 됐다는 이야기다. 

 

▲ (왼쪽부터) 박명숙 부녀회 총무, 김병태 새마을지도자, 유태호 이장, 이명열 부녀회장, 김춘희 전 부녀회장

살기 좋은 은골 만들기

우강면 송산1리 주민들은 ‘살기 좋은 은골’, ‘화합하는 은골’, ‘깨끗한 은골’이라는 슬로건으로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현재 마을에는 90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송산1리를 연중 꽃피는 마을을 만들고자 마을 곳곳에 다양한 꽃을 식재하고, 매월 환경정화활동을 통해 깨끗한 마을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김병태 새마을지도자는 “합덕읍에서 우강면으로 이사온 지 20년 정도 됐다”며 “다른 지역 사람들도 우리 마을에 와 살고 싶다고 할 정도로 송산1리는 화합이 잘되고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말했다. 또한 유태호 이장은 “우리 마을을 오고 싶은 고장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송산1리는 예로부터 충효사상이 투철한 효의 마을입니다. 이웃과의 두터운 정을 나누며 살아온 만큼 앞으로도 살기 좋은 마을이 될 수 있도록 주민들의 협조를 부탁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동안 마을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 도와준 주민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 1975년 6월 객토하고 있는 주민들
▲ 1975년 자매결연을 맺은 전파관리국에서 탁상을 전달받고 찍은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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