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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 정건영 세한대 실용음악학과 교수 (멀티퍼커셔니스트)
“음악은 세상 낮은 곳에서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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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 최연소 오스트리아 빈국립음대 초청교수 발탁
“예술가는 철학자이자 사상가…철학과 의식 있어야”
장애인 학생 참여 타악기 앙상블 해늘합주단 지도

 

동양인 최연소 오스트리아 빈국립음대 초청교수, 프라이너예술대학교 정교수, 드러머 링고스타가 소속된 세계적인 타악기 전문 브랜드 ‘루딕무써’의 팀파니 아티스트. 

정건영 세한대학교 실용음악학과 교수를 수식하는 여러 직함과 프로필이 있지만, 그가 생각하는 ‘진짜’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은 명확하다. 음악가는 악기를 연주하는 기술자가 아닌, 철학자이자 사상가여야 한다는 것. 음악은 춥고, 배고프고,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연히 입문한 타악기의 세계

타악기를 연주하는 정건영 교수를 흔히 멀티퍼커셔니스트라고 부른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마림바를 접하게 되면서 타악기의 세계에 입문했다. 처음부터 타악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 입학식 때 관악부 선배가 불던 은빛악기(트롬본)에 반했던 그는 관악부에 들어가 트롬본을 배우려 했으나 팔이 짧아 트롬본을 연주하기 힘들겠다며 퇴짜를 맞았다. 음악실을 나서던 그에게 마림바를 치던 선배를 만나 타악기를 배우게 된 것이다. 

생계를 위해 가구공장에서 일하면서 한 푼 두 푼 어렵사리 돈을 모아 27살에 오스트리아로 떠나게 됐다. 음대 입학을 도와주겠다던 지인으로 인해 린츠라는 지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도착 한 달 만에 그 지인에게 사기를 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빈으로 유학 가지만, 린츠는 대표적인 공업도시로 포항이나 광양제철소 직원들이 견학 오는 곳이었다. 

사기를 당해 뼈 빠지게 일하면서 모은 유학비를 모두 잃은 그는 음악 공부는커녕 식당에서 하루종일 접시를 닦아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무비자 기간이 끝났음에도 학생비자를 발급받지도, 한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해 불법체류자 신세까지 겪었다.

음악이 아닌 철학을 배우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다행히 한인교회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빈국립음대 시험을 치를 수 있었고 18: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그러나 대학생활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 2~3개의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특히 빈국립음대는 학제가 8년으로 길어 서른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빨리 악기를 배우고 음악을 공부해야 하는데, 지도교수는 고전과 철학책을 읽게 했어요. 조급한 마음에 ‘이걸 왜 읽어야 하냐’며 화를 내기도 했죠. 8년이 길다는 내게 지도교수님은 ‘널 가르치기에 8년은 짧다’고 말했어요. 첫 학기 수업에서 지도교수는 ‘의식이 없는 예술가는 예술가가 아니다’라고 말했죠. 유럽에서 베토벤, 하이든과 같은 음악가는 사상가이자 철학가인 거죠. 예술가는 자신만의 철학과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거예요.”

정 교수는 당시 <국부론>, <의무론>, <논어>, <맹자> 등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읽었다. 처음에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화로 된 책을 읽으며 공부했다. 자신이 연주하는 곡을 이해하기 위해 명곡이 탄생했던 시대 상황과, 베토벤 같은 거장들의 생애를 탐구하면서 각종 철학책을 섭렵했다.

한국과 오스트리아 오가며 활동 

10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빈국립음대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최고연주자과정까지 최우수 성적으로 수료했다. 2004년에는 오스트리아 페스테스트 타악기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는 1분 안에 가장 빠르게 드럼을 칠 수 있는 연주자를 가려 내는 대회로, 정 교수는 1분 동안 1142타를 연주했다.

그리고 2010년에는 동양인 가운데 최연소로 빈국립음대 초청교수로 발탁됐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프라이너예술대학교 정교수인 그는 한국과 오스트리아를 오가며 연주 협연과 교육 활동을 해왔다. 그러다 지난 2019년 고향인 예산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홀로 있는 어머니 곁을 지키며 신평면 남산리에 위치한 세한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음악이 진정으로 닿아야 할 곳

오스트리아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음악에 대한 가치관을 완전히 새로 정립한 정건영 교수는 “예술가는 돈을 좇는 것이 아니라 세상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대가라고 칭송받는 연주자가 큰 공연장이 아닌 길거리에서 할아버지·할머니들과 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봤다”며 “이때 예술은 특정 계층이 아닌 모든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음악이 진정으로 닿아야 할 곳은 춥고 배고픈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고, 춥고 배고픈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예술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을 하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도 그러하다고 여기며 지금껏 살아왔다.

그래서 그는 당진지역 특수아동들이 참여하는 해늘합주단을 만들어 올해로 4년째 지도하고 있다. 창단 첫 해 해늘합주단은 당진정보고 특수학생 8명, 당진고 특수학생 4명 등 총 12명으로 시작했고, 2020년에는 합덕고 특수학생 10명과 함께 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당진꿈나래학교 특수학생 4명과 합덕고 특수학생 6명으로 구성돼 활동해왔다. 매주 1회 3시간씩 진행된 수업에서 정 교수는 해늘합주단원들에게 드럼과 콩가 등 타악기 연주를 지도하며 이들과 함께 연주했다.

정 교수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다”며 “해늘합주단원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음악을 즐길 줄 알고, 관객과 마음을 나눈다”고 말했다.

“여든 살까지 이 아이들과 함께 음악을 하고 싶어요. 바라는 게 있다면 악기를 실을 수 있는 탑차를 구해 버스킹을 떠나는 것이죠. 아이들과 함께 어디든 가서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 정건영 멀티퍼커셔니스트는…

- 1975년 충남 예산 출생

- 오스트리아 빈국립음대 학사‧석사 학위 취득 및 최고연주자과정 졸업

- 오스트리아 프라이너 콘서바토리움 관현악 오케스트라 지휘과 졸업

- 안톤베번오케스트라 팀파니 수석 역임, 비엔나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타악기 객원 단원 역임, 한‧오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팀파니 수석 역임

- (현) 세한대학교 실용음악학과 학과장, 충남도교육청‧경기도교육청 홍보대사, 오스트리아 프라이너 사립음대 초빙교수, 오스트리아 빈국립음대 초빙교수, 서울특별시 홍보대사, 천리포수목원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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