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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우강면 부장리 남원포구 4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 중심으로 어업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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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에 촬영한 우강면 부장리 남원포구 주변 상권 풍경

한때는 남원포구에 어선이 수십여 척이 정박했다고 하나, 구술에 참여한 주민들은 1960년대를 전후로 포구에 어선은 많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대신 부장리의 어선들은 남원천을 따라 곳곳에 정박했다고. 주로 한국전쟁 당시 피난 와서 부장리에 정착한 피난민들이 어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옛날에 피난 온 사람들이 있어. 이북서 피난 온 사람들이 여기 와서 뚝에 다가 집을 짓고 거주했어요. 그 사람들 통해서 고기를 잡았죠. 조기 같은 거 잡아 와서 팔기도 했고. 그 소개를 누가 했느냐면 우리 할아버지(홍현구)가 했어요. 그 양반이 피난민들을 다 관리했다고. 피난민들 집이 다섯 집인가 있었어. 피난민들이 움막 하나썩 짓고 살았지.” (홍수호) 

올해 97세인 정부전 할머니는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 고향 마을에서 피난 나와 인천 덕적도 등을 전전하다 40세에 남원포구에 정착한 실향민이다. 남원포구에 정착할 당시, 남편은 작은 어선을 소유하고 있었다. 어업에는 종사하지 않았고 주로 신평말목 등지에서 소금을 운반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자신은 남원포구에서 생선을 사서 다라에 이고 인근 마을을 돌며 팔거나 굴을 까서 팔았다. 

▲ 1971년에 촬영한 우강면 부장리 남원포구 주변 상권 풍경

“그렇지. 쪼끄만 배. 소금도 실러 다니고 다 했지. 거기 어디 말목 앞에 뭐야 (깔판포구, 맷돌포구요?) 그렇지 여기 나가면 어디 갈 데 있나. 고기는 안 잡았어. 어디서 사다가 팔고 그랬지. (배는 어디에 대셨어요?) 여기 우리 뒤. 그냥 여기 그냥 대뒀지, 뭘. (배로 새우젓 같은 건 안파셨어요?) 새우젓 장사는 안 하고 살 수가 있나, 여기 개포에서. 다라 장사로 시장도 저기 온양까지 다니고. (굴도 따러 다니셨어요?) 굴 까서 팔아야지, 다 소매하고.” (정부전)

우현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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