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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 입력 2022.06.17 20:47
  • 호수 1910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전쟁의 참상
[6월 호국보훈의 달 특집]
6.25전쟁에 참전한 전용상 씨(합덕읍 상궁원리·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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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 시절 자원입대…“나라 위해 싸우겠다”
머리카락·손톱·발톱 모아 결사의지 다져
손바닥 부상 입고 명예제대…아직도 후유증 있어

 

“벌써 70년이 넘은 이야기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잘 안 나. 하지만 이거 하나는 분명해. 전쟁은 다시금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거.”

합덕읍 상궁원리에 거주하고 있는 전용상 씨는 1929년 생으로 올해 95세다. 귀가 잘 들리지는 않지만 사람들과 대화하고 식사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다. 그는 6.25 참전용사로 군 제대 후 한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현재는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를 돌보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지원병 모집 벽보 보고 자원
전 씨는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성인이 되자마자 군에 자원입대했다. 그는 “우리나라를 위해 입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형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에 군에 자원입대하는 걸 가족들이 간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1948년 1월 26일 조선국방경비대 제2연대 제1대대 제3중대에 입대했다. 1945년 8월 광복 이후 우리나라는 미합중국 육군 제24군단에 점령당해 1945년 9월 9일부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까지 미국의 통치를 받았다. 그는 “당시 합덕에 지원병을 모집한다는 내용의 벽보가 붙여졌다”며 “보자마자 지원했고 신체검사 등의 시험을 봤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합덕·우강·면천에서 열댓명이 그 시험에 응시했다”고 전했다. 

“뿌연 안개 속 까만 군인들”
한편 그는 1950년 6.25전쟁에 참전한 군인이다. 전 씨에 따르면 그는 6.25전쟁이 일어나기 이틀 전 강원도 홍천에 주둔해 있었다. 당시 그의 기억으로는 북한군이 탱크 8대를 끌고 (남한으로) 밀고 들어오고 있었고, 그는 무방비 상태여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전 씨는 “그날 안개가 자욱했는데 인민군들이 까맣게 보였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전쟁 중 목숨잃은 동료들
4년 간 군 생활을 하면서 여러 전투에 참전한 그는 당시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군인들의 소식을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아마 모두 세상을 떠났지 않았겠냐는 그다. 

전 씨는 전쟁에 참여하면서 하나 둘 세상을 떠난 동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배우자와 3명의 자녀 사진과 편지를 보여줬지만, 얼마 못 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소대원, 같은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한 형제가 연이어 죽었던 일 등…. 

“우강에 한창렬이라는 동기가 있었어. 당시 이 친구가 팔에 총을 맞아 피를 철철 흘렸지. 나는 그 친구가 부상입은 것 밖에 몰랐는데, 나중에 제대하고 그 친구 부모에게 물어보니 죽었다는거야. 나라사랑공원에 있는 전사자 명단에 그 친구 이름이 있더라고. 시신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

필사즉생 필생즉사

1951년 봄 용문산 전투에도 참여했던 그는 머리카락, 손톱, 발톱을 모아 결사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전투 중에는 시신을 찾지 못하는 것을 대비해 가족들에게 이것을 갖고서라도 장사를 지내라고 모았다는 것이다.

전 씨는 “나는 배우자도 없고 자식도 없어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며 “‘필사즉생 필생즉사’라고 죽기로 싸우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는 한자성어처럼 나는 죽기로 싸웠다”고 말했다. 그렇게 전쟁에 나섰지만 그는 부상을 입고 1952년 2월 명예제대를 명 받았다. 총 실탄이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를 관통하는 부상을 입은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다. 전 씨는 “다친데는 아물었지만 아직도 불편하다”며 “신경이 끊어졌고 손톱이 빠졌다”고 말했다. 

죽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그를 본 가족들은 무척 기뻐했다. 그리고 다시 군대에 입대할 일이 없다는 걸 안 딸 가진 부모들이 자신의 딸과 전 씨를 결혼시키려 했다고. 군 제대한 후 아내를 만난 그는 농사에 전념하며 고향에서 지냈다. 10년 넘게 마을 이장을 맡기도 했다.
“6.25전쟁이 터진 게 내 나이 20대 초반이야. 전쟁 중에는 아무 생각이 안 나. 적을 없애야한다는 것에만 집중하게 돼. 그래서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거야. 그때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았어. 전쟁통에 죽은 사람과 그의 가족들의 마음을 (살아있는 우리가) 어떻게 헤아리겠어.”

 >>전용상 씨는
- 1929년 합덕읍 점원리 출생 
- 합덕읍 상궁원리 거주
- 합덕읍 상궁원리 이장 역임
- 1948년 1월 입대 ~1952년 2월 명예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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