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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15 19:56
  • 수정 2022.08.12 14:04
  • 호수 1414

[어르신 영상 자서전 ‘학교 가는 길’ 1] 김한순 할머니
“내 이름은 김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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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식모살이·공장생활…모진 세월 꿋꿋이 살아와
여든 살에 처음 써 본 이름…“학교 가는 것 즐거워”


<편집자주>
글을 배우지 못한 70~80대 어르신들은 가난한 집의 살림 밑천이었던 맏딸이었거나, 가방 대신 지게를 져야 했던, 학교 대신 갯벌로 나가야 했던 어린 소년·소녀였다. 해방 전후 태어나 6.25전쟁을 겪으며 사회적 혼란과 절대적 빈곤 속에 교육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 한 많은 시절 삶의 무게를 이겨내고 문해교육에 도전한 늦깎이 학생들의 인생 이야기를 기사와 영상을 통해 전하고자 한다. 서글픈 시대와 역사가 오롯이 담긴 삶을 기록해두고자 한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지역미디어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또한 유튜브 채널 ‘당진방송’을 통해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내 이름은 김한순. 한 달이 하루처럼 바쁘게 지나갔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주고, 친구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고, 출석부에 손으로 내 이름을 쓰니, 나도 이름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아름다운 내 이름을 찾았다.” 

1942년생, 여든을 넘긴 김한순 할머니는 매일 아침 책가방을 들고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학교로 간다. 젖도 떼지 못한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모진 세상 꿋꿋이 살아냈다. 그렇게 긴 세월이 지난 뒤 이제야 할머니의 이름 석 자를 찾아 공책에 꾹꾹 눌러 쓴다. 

이불 뒤집어 쓰고 두려움에 떨어

김한순 할머니는 신기하게도 세 살 무렵이었을 때 엄마 기억이 난다고 했다. 장을 담그고 있었던 어머니 옆에서 울자 간장물에 밥을 말아 주던 기억이란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그게 전부다. 

“내가 세 살때까지도 아마 젖을 먹었나봐.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젖을 빨고 있었다더라고. 아버지가 나를 떼어다가 다른 방에 두고서는 엄마를 안방으로 모셔 장사를 치렀다더라고.” 

어머니의 빈 자리에 새어머니가 들어왔다. 그리고 머지 않아 전쟁이 터졌다. 김한순 할머니는 “아홉살 쯤 전쟁으로 난리가 났었다”며 “다른 사람들은 피난 가고 그랬는데, 아버지는 장사 나가 집에 안 계시고, 새엄마는 자기 딸을 데리고 친정에 가서 집에 혼자 있었다”고 말했다. 

밖에서는 비행기 소리가 들리고, 혼자 놓인 아이는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탕!’ 하는 총소리가 났다. 총알이 담벼락을 뚫고 나간 것이었다. 또 어느 날에는 들기름을 사러 갔는데, 정거장 앞에 사람들을 세워놓고 탕탕탕 총으로 쏴서 죽이는 장면까지 목격했단다. 

전쟁이 끝났지만 처참한 삶은 계속 이어졌다. 매일 구박하는 새어머니의 딸의 괴롭힘을 피해 부산으로 도망갔다. 부산에서는 식모살이를 하며 연명해야 했다. 고작 13~14살 무렵이었다. 장사하는 집에 가 공부는커녕 잠도 못 자가며 일했다. 가게일 뿐만 아니라 집안일에 주인집 아이들까지 돌봤다. 죽도록 식모살이를 했지만 돈 한 푼 받지 못했다. 

처음 한글 배우고 교복도 입어

스무 살쯤 됐을 때에는 공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삶도 녹록치 않았다. 당시엔 군인들이 많았는데, 공장에 다니는 어린 소녀들이 군인 아이를 임신하고, 사내가 도망치면 삶을 비관해 자살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단다.

예쁘장한 아가씨였던 김한순 할머니에게도 군인들이 쫒아다녔는데 ‘이건 아니구나’ 싶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곧장 시집을 보냈다. 그렇게 홀시아버지 모시면서 어려운 형편 속에 1남3녀를 낳아 키웠다. 하지만 49살에 갑작스럽게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일평생 누군가를 위해 뒷바라지하며 살아온 김한순 할머니는 여든이 넘어서야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시작했다. 한글을 배웠고 처음으로 교복을 입었다. 해나루시민학교에서 글을 배운 뒤 그는 혼자 병원도 가고, 은행도 가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한글을 읽고 쓰는 것이 마냥 신나기만 하다. 

“글도 몰랐던 저에게 한글을 가르쳐주셔서, 글을 깨우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아연 기자 zelkova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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