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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 잔돈 모아 하루살이 노숙생활했죠”
[세상 사는 이야기] 20년간 노숙인으로 살아왔던 박청호 씨 (합덕읍 운산리)

잘나가던 자영업자에서 무일푼 노숙인으로 전락
서울·천안·광주·부산 등 전국 떠돌며 노숙
5년 전 부모님 병환으로 고향 내려와
박경미l승인2022.08.19 20:59l(14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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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아버지 박창규 씨와 아들 박청호 씨

젊은 시절, 하루에 수백씩 쓰며 살아온 박청호 씨의 삶은 35살 이후 180도 바뀌었다.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오른 그는 고향을 떠나 상경했고 20여 년간 노숙자로 거리를 떠돌았다. 5년 전 다시 고향을 찾은 그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같았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호주머니엔 단돈 2000원 뿐…”

박청호 씨는 20~30대엔 소위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 당구장·오락실 등을 운영하며 큰 돈을 만졌고 이른 나이에 이룬 성공으로 흥청망청 돈을 썼다. 수백만 원의 판돈을 걸고 내기당구를 하는 등 하루에 수백에서 수천만 원 쓰기를 두렵지 않아 했다고. 박 씨는 “당시 왼쪽 주머니에는 100만 원권 수표가 잔뜩, 오른쪽 주머니에는 40~50만 원씩 현금을 가지고 다녔다”고 말했다.

물 쓰듯이 돈을 쓰던 그는 결국 유흥으로 전 재산을 잃었다. 그의 나이 35살에 재산을 모두 잃고 수십억의 빚더미에 오른 박 씨는 더 이상 고향에 있을 수 없었고, 합덕을 떠났다. 

서울역에 도착한 그의 호주머니에는 단돈 2000원만 있었다. 박 씨는 이 돈으로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빼먹고 그대로 잠들었고, 다음날 눈을 뜬 그의 앞에 100원, 500원짜리 동전이 놓여 있었다. 이렇게 박 씨는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낮에는 역을 지나는 사람들로부터 한 푼 두 푼 받는 일로 시간을 보냈고, 밤에는 박스를 덮어쓰고 쪼그려 잠을 잤다.

박 씨에 따르면 당시 서울역엔 노숙인이 약 600명 가량 있었고 잠을 청하는 노숙인은 3~400명이나 됐단다. 노숙인들끼리 패거리를 형성해 노숙하기 좋은 구역을 차지하려고 다툼도 많았다. 박 씨는 “노숙인들의 싸움을 말리다가 도리어 내가 다툼에 휘말리기도 했다”며 “상대 패거리인 줄 잘못 안 노숙인들에게 밤중에 폭력을 당해 치아가 모두 부러진 일도 있다”고 말했다.

전국으로 이어진 노숙 생활

박 씨의 노숙 생활은 전국으로 이어졌다. 노숙인들 간의 구역 싸움으로 서울역에서 용산역으로, 다시 용산역에서 청량리역으로 이동했다. 10년 전에는 영등포역에서, 8년 전에는 천안역에서 노숙 생활을 했다. 수도권을 벗어나 전라도 광주로 내려가 터미널에서 노숙하기도 했고, 겨울에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우연히 신문으로 동창의 소식을 접한 그는 동창이 준 10만 원으로 신발과 추리닝을 사 입었다. 박 씨는 “차림새가 좀 깔끔해야 마트에 출입할 수 있다”며 “마트 시식코너에서 배를 채우고 운동장에서 잠을 청했다”고 말했다.

어느새 노숙인 무리를 모은 그는 조직적으로 공중전화에 남은 잔돈을 모아 노숙 생활을 이어가기도 했으며 일부러 문제를 일으켜 구치소에 들어가기도 했다. 박 씨는 “차라리 밥 주고 편히 잘 수 있는 교도소 생활이 좋았다”며 “일부러 교도소에 들어가고 싶어서 벌금형을 받으려고 남들 싸우는 다툼 현장에서 나도 끼어있고 그랬다”고 덧붙였다.

노숙인을 대상으로 한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박 씨에게 접근한 범죄조직은 말소된 박 씨의 주민등록을 회복하고 그의 명의로 여러 대의 휴대폰을 개통시켰다. 이렇게 개통된 휴대폰은 불법 대포폰으로 판매된다. 대포폰뿐 아니라 노숙인 등의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 유통시키고 대출사기 등의 범행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박 씨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노숙인을 대상으로 이 같은 범죄가 많이 발생했다”며 “나중에 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고 말했다. 

아버지 건강 위해 100일간 기도 드려

그렇게 거리를 떠돌다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들은 박 씨는 5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결국 어머니는 세상을 뜨고, 그는 병든 아버지를 두고서 다시 떠날 수가 없었단다. 병원에서는 아버지가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다. 이 같은 이야기에 그는 다음날부터 새벽마다 솔뫼성지로 달려가 아버지의 건강을 기도했고, 이를 100일간 반복했다. 그의 정성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기도한 지 100일째 되던 날, 집에 돌아온 박 씨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선 아버지를 목도했다. 박 씨는 “이전까지 아버지는 내가 일으켜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며 “그런데 아버지가 혼자 벽을 짚으며 집 밖을 나섰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아버지는 현재 집 밖을 나설 정도로 기력을 회복했다. 

“지역사회 도움에 감사함 느껴”

현재 부자는 기초생활수급자로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도움도 많이 받았다. 처음 박 씨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부모님이 살던 집은 곰팡이가 피어 생활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에 천주교 신자들이 도배와 대청소를 도와줬고, 적십자에서 한 달에 한 번 밑반찬을, 남부노인복지관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밥과 반찬을 제공해준다. 박 씨의 동창이 운영하는 오현치과에서는 박 씨의 사정을 듣고는 치아 수술을 전액 무료로 지원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마을주민과 동창, 사회단체 등 지역사회에서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해왔다. 박 씨는 “여기저기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다들 너무 고맙다”고 전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아버지만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곁을 지키겠다고 맹세했어요. 그렇게 하루하루 아버지와 함께 지내다보니 5년이 흘렀네요. 이제 거동을 조금 하시지만 5년 사이 수술을 네 번이나 할 만큼 건강이 좋지는 않아요. 형편은 어렵지만 끝까지 아버지를 지키고 싶습니다.”


박경미  pkm94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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