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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읍면소식
  • 입력 2022.08.19 21:17
  • 수정 2022.08.23 13:37
  • 호수 1418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수문통 3
인천행 여객선 기착지, 수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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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객선부두 (※출처: 인천일보)

일제강점기부터 인천행 여객선이 당진의 여러 포구를 왕래했다. 수문통은 이 여객선의 기착지 중 한 곳이었다. 인천행 여객선은 송악의 한진과 신평의 맷돌포·공포(운정)를 거쳐 우강의 남원포, 수문통을 지나 강문리의 부리포까지 드나들었다. 하지만 점차 토사가 쌓이면서 바다가 얕아졌고, 1974년 즈음부터는 부리포까지 여객선이 드나들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인천행 여객선의 운행이 종료되기까지 수문통은 인천행 여객선의 마지막 기착지였다. 인천행 여객선의 마지막 운행 시기는 정확히 알기 어려웠으나 삽교천방조제 건설이 시작되기 전부터 토사의 퇴적으로 여객선의 출입이 어려웠던 것으로 조사됐다. 

1932년에 들어 인천항의 해운업체는 총 7개 업체로 16개 항로에 취항하는데, 중간의 도서지역 기착지만도 30여 곳에 이른다. 이후 광복을 거쳐 6.25전쟁이 휴전되던 1953년 통계에는 동양기선 등 11개 선사가 경기만 일대와 멀리 당진·목포·마산 등 13개 항로에 정기적으로 취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천을 출발한 여객선 혹은 화물선은 덕적군도~남양만~아산만을 지나 한진~맷돌포~공포~남원포~수문통~부리포~선장포~구양도~구만포(예산 고덕면)를 거쳤다. 또 장고항~보덕포~오섬 등에 기착했다. 

인천을 오가던 배는 영창호, 이근호, 공동환, 해평호, 인충호 등이 있었다. 고려 및 조선시대 세곡의 운송을 위한 조운로로 발달한 이들 포구는 일제시대에는 수탈의 현장으로 아픈 역사를 감내해야 했고 이후에는 주변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미곡을 반출하는 포구로 번성하였다. 
더불어 이들 포구는 이 지역 주민들이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통로이기도 했다. 수문통은 삽교천 상류 우강면 소재의 마지막 인천행 여객선 기착지였다. 

우현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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