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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읍면소식
  • 입력 2022.08.26 20:30
  • 수정 2022.10.28 16:59
  • 호수 1419

[우리마을 이야기 11] 우강면 소반리
드넓은 우강평야…소들강문 한가운데 자리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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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릇누릇 익어가는 벼 볼 때 가장 좋아”
간척 전엔 바닷물 드나들던 황금어장
바지락·망댕이·강다리·꽃게·젓새우 잡혀

<편집자주>
당진시에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없어진 마을이나 없어질 위기에 처한 마을, 또한 자연마을 중에서도 농촌 고령화로 인해 전통의 맥이 끊길 상황에 놓여 있는 마을이 있다. 본지에서는 마을의 전설과 옛 지명, 보호수를 비롯한 자연환경, 열녀문·효자비 등 다양한 마을의 이야기와 마을이 가진 자원을 발굴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마을의 이야기를 기사와 영상으로 담아낼 계획이다. 해당 기사는 유튜브 '당진방송' 채널을 통해 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해당 기사는 유튜브 ‘당진방송’ 채널을 통해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소반리 주민들의 모습

드넓게 펼쳐진 우강평야가 푸른 물결로 넘실거린다. 여름의 끝자락에 놓인 우강들판의 모습은 마치 짙은 초록빛 카펫을 끝없이 펼쳐놓은 듯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소들강문 한가운데에 우강면 소반리가 위치해 있다.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소들강문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삽교천 유역을 따라 펼쳐진 예당평야는 김제 만경평야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넓은 평야다. 예당평야는 삽교천을 따라 예산군 고덕면 구만리부터 당진시 합덕읍과 우강면을 지나 신평면까지 이르는데, 우강면 일대의 평야를 소들강문이라고 부른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우평(牛坪)’이라고 기록돼 있다. 순우리말로 하면 ‘소들’이다. 일부에서는 내포지방의 방언인 ‘솟뜰(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에서 퇴적으로 생겨난 섬과 같은 작은 돌출구를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됐다고 하고, 또 다른 자료에서는 ‘소 모양의 돌 두 개가 바다 섬 중에 돌출했다가 자연스럽게 매몰됐기 때문’이라는 기록도 있다. 

예로부터 ‘우평(소들)’으로 불리던 지명에 삽교천 강의 입구를 의미하는 ‘강문(江門)’이라는 말이 합쳐져 우강면 들판 일대가 ‘소들강문’으로 불린다. 소들강문은 ‘우강(牛江)’이라는 지역명의 어원이기도 하다. 

▲ 소반리 마을회관

“벼 익어가는 모습 큰 기쁨”

소들강문의 한복판에 위치한 소반리의 풍경 또한 너른 들판이 전부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답답했던 마음마저 탁 트일 지경이다.

게다가 모를 심은 5월부터 수확 전까지, 들판을 가득 채운 벼가 자라고 익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주민들에게 기쁨 그 자체다. 김재운 노인회장은 “추수가 다가오면서 벼가 누릇누릇 익어가는 걸 보면 기분이 무척 좋다”면서 “일년내내 고생했던 게 다 잊혀질 정도”라고 말했다. 

올해 집중호우로 부여 등 타 지역에서는 비 피해가 있기도 했지만, 다행히 소반리를 비롯한 우강평야는 큰 피해 없이 지나갔다. 주민들은 “올해 농사가 잘 될 것 같다”며 풍년을 기대했다. 다른 마을은 이런저런 밭작물도 많이 재배하지만 소반리는 논두렁에 심은 두렁콩을 제외하면 그저 쌀농사가 전부다. 

▲ 1995년 세운 마을회관 건립탑

바닷물 오가던 삽교천 하류 

소반리 주민들이 원래부터 쌀농사만 지었던 것은 아니다. 동쪽으로 삽교천과 맞닿아 있어 간척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바닷물이 드나들었고, 갯가에 나가 바지락을 잡았다. 삽교천 하류에 위치해 있어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곳은 그야말로 황금어장이었다. 당시 농사를 짓는 주민들도 많았지만 바다에서 생업을 이어가던 어부도 많았다. 

지금은 할머니·할아버지가 됐지만 당시 어린아이들은 바다를 놀이터 삼아 자랐다. 소반리 주민 김옥순 할머니는 “망둥이, 강다리, 조기, 숭어, 젓새우, 꽃게 등 별별 물고기가 다 잡혔다”면서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이 수영하고 고기 잡으며 놀았다”고 말했다. 

▲ 몇년 전까지만해도 소반리 마을회관을 반환점으로 우강면 벚꽃길 걷기 행사가 열리곤 했다.

이 일대는 예부터 바다의 퇴적작용에 의해 평야가 형성됐는데, 특히 삽교호방조제가 건설되면서 바닷물은 더이상 드나들지 않고 민물 호수로 변했다. 그리고 간척사업으로 일대 갯벌은 농경지가 됐다. 

소포리+반대리=소반리

소반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소포리(小浦里)와 반대리(班垈里)가 합쳐지면서 두 마을의 첫 글자를 따 소반리(小班里)로 이름 지어졌다. 소포는 현재 소반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데, 300년 전 삽교천 물길이 바뀌면서 작은 개(小浦)가 생겼다는 것에서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또다른 기록에서는 벌판이어서 때문에 소펄 또는 소펀으로도 불린다는 설도 있다. 

반대는 마을에 바닷물이 드나들었을 때 반두(물고기 잡는 어구)를 매 고기잡던 곳으로, 주민들은 ‘반둔말’이라고도 한다. 또한 ‘상원’이라는 웃원말(우던말)도 있다. 펄이 주위보다 높아서, 혹은 소포에 있는 넓은 들판인 큰원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웃원말 또는 우던말로도 불린다는 것이다.

▲ 소반리 마을회관 앞 도로변을 따라 벚나무가 심겨 있었으나 2년 전 벚나무를 제거하고 무궁화를 심었다.

한편 김재운 노인회장은 “어렸을 때 어른들이 소반리 마을을 ‘대들원’이라고 했다”며 “배를 대놓던 대들원포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들원’이라는 표현은 우강면지를 비롯해 각종 지식백과에서도 검색되지 않은 명칭이어서 그 유래를 찾을 수는 없었다. 

고령화로 마을주민 대부분 노인 

소반리는 아름다운 마을의 풍경만큼이나 주민들 간 화합도 잘 되고 있다. 지난 26일, 소반리 화합의 한마당 경로 위안잔치를 열고 코로나19로 힘들었던 지난 시간을 위로하고 서로 격려하며 화합을 다지는 자리를 마련했다. 

2019년에는 ‘살고 싶은 마을, 행복한 마을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주민들과 출향인들의 후원을 통해 화합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또한 2020년에는 주민주도형 에너지전환 선도마을 만들기 사업을, 2021년에는 농촌현장포럼을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고령화는 소반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이기도 하다. 

▲ 소반리 도로변을 따라 식재된 무궁화

김재운 노인회장은 “마을주민이 대부분 노인”이라며 “주민들이 경로당에 모여 재밌게 놀면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00년 새마을지도자 우강면협의회·부녀회에서 내경리에서 부장리까지 소들평야를 따라 도로변에 2000주의 벚나무를 심었고, 2003년부터 해마다 벚꽃길 걷기 행사를 진행해왔다. 소반리 마을회관은 벚꽃길 걷기 행사의 반환점이었는데, 몇 년 전 벚나무가 제거됐고 코로나19 등으로 걷기 행사도 열지 못했다. 주민들은 “나무가 병충해를 입고 개화가 안되면서 2년 전 벚나무를 모두 잘라내고 무궁화를 심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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