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3-28 10:44 (목)

본문영역

  • 인물
  • 입력 2022.09.02 20:31
  • 수정 2022.09.27 18:09
  • 호수 1420

[로컬에서 희망 찾기-청년이 희망이다 9] 연아장미 남연아 대표(송악읍 석포리)
연아 씨의 장밋빛 인생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살에 베트남서 당진으로…19년째 당진살이
6년 전 장미 농사 시작…폭우로 수해 입기도
“자신과 가족에게 당당하다면 행복한 삶”

남연아(38·송악읍 석포리) 대표는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다. 처음 온 당진은 매우 낯선 곳이었지만 19년이 지난 지금은 구수한 사투리도 사용할 정도로 지역에 정착했다. 현재 그는 송악읍에서 6년째 장미 농사를 지으며 희망의 꽃을 틔우고 있다.

“사투리 못 알아들었죠”

남연아 대표는 19살의 나이에 베트남에서 당진에 왔다. 그에게 당진은 언어도, 음식도, 문화도 모든 것이 다른 미지의 세계였다. 열대국가에서 자란 남 대표는 한국의 겨울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지난 2003년 9월 당진에 온 남 대표는 “낙엽이 들고 단풍 지는 게 신기했다”며 “한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처음에는 집 밖으로 나가질 못했다”라고 말했다.

결혼 전 기본적으로 한국어를 배웠지만 글을 읽을 줄만 알고 의미를 알지는 못했단다. 게다가 시댁은 사투리를 사용해 소통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남 대표는 “표준어로 언어를 배웠는데 시댁에서는 가위를 ‘가세’, 양파를 ‘다마내기’라고 쓰니 신혼 초반에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19년간 살면서 이제는 당진사람이 다 됐단다. 남 대표는 시부모님의 사투리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지역 어르신들을 만날 때면 자연스레 사투리가 나올 정도이고, 가장 맛있는 음식은 시어머니가 끓인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란다. 그는 “이젠 시댁에 가면 ‘저 왔슈~’하면서 인사드린다”며 “어디 가서도 시어머니 손맛이 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내 새끼 같은 장미꽃

그는 6년째 송악읍 석포리에서 1200평 규모로 장미 농사를 짓고 있다. 당진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만난 태국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에게 현재의 농원 자리를 소개받았다. 남 대표는 “장미 농사를 짓기 전에는 제약회사에서 1년여간 일했다”라며 “열심히 하면 먹고 살만 하다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꽃 농사를 시작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농원은 자신의 이름을 따 ‘연아장미’라고 이름 지었다. 장미꽃을 제 새끼라 생각하며 지은 첫 농사는 잘 됐지만 2년 째에는 꽃을 하나도 수확을 하지 못할 정도로 망했다. 남 대표는 “계절마다 온도, 습도, 영양상태가 다른데 이것을 모르고 농사 짓다 보니 실패했다”면서 “잎부터 꽃봉오리까지 응애가 생겨 병충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남 대표는 포기를 생각할 만큼 낙담했지만 다시 일어섰다. 그는 농원, 꽃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남 대표는 “한 농원 대표가 ‘다른 농장에 많이 가보고, 자신만의 농장을 만들어야 한다’며 ‘너의 시대를 만들라’고 한 조언이 나를 일깨웠다”고 말했다. 심기일전한 남 대표는 농원 상태에 맞춰 그날그날 기온과 습도를 달리 맞추며 세심하게 관리했다. 당진시농업기술센터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교육에도 참여했고, 강소농 육성사업에 선발돼 교육과 컨설팅, 기술지원 등도 받고 있다. 

수해에도 오뚝 일어서

올해는 당진시농업기술센터에서 지원하는 스마트팜 시설에서 장미 농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6월 말 갑작스러운 폭우로 수해를 입었다. 송악읍 석포리에 자리한 농원과 순성지역 1500평 규모의 농원 모두 물에 잠겼다. 하우스에 80cm 가량 물이 찼다. 송악지역 농원에서는 꽃을 수경재배해 비교적 모종을 살릴 수 있었지만, 순성지역 농원은 토경재배를 하고 있어 심한 피해를 입었다고. 

남 대표는 “5월에 모종을 심으면 10월까지 꽃을 생산할 수 있기에,  지금 시기였으면 한창 꽃을 수확하고 있을 텐데 너무 속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비 온 땅만을 보고 있을 순 없었다. 남 대표는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섰다. 남 대표는 “언제까지 좌절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며 “땅에서 모종을 캐어 물기와 흙을 닦아낸 뒤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다시 수경재배했다”고 전했다. 추석을 앞두고 그는 연아장미에서 한창 장미꽃을 수확하고 있다. 

아들딸에게 자랑스러운 엄마 

시행착오를 겪으며 농원도, 그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남 대표가 농원에서 직거래로 판매하는 곳이 당진만 12곳이고, 서산과 태안 등을 합치면 총 30곳이란다. 그는 아직 장미 농사로 성공했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그의 삶은 이미 성공한 삶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일을 응원해주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등학생 아들은 엄마의 농원을 잇고자 농업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거에는 다문화가정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어요. 자녀들 또한 다문화가정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저 역시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게 되면 위축될까봐 걱정했죠. 하지만 우리 아들딸은 ‘우리 엄마 베트남에서 왔다’고 당당히 얘기해요. 우리 엄마 한국 문화 익히고자 열심히 공부했고, 장미 농사를 짓기 위해서도 많이 노력 했다고…. 아이들한테 ‘자랑스럽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니, 저는 성공한 삶 아닐까요?”

다문화도 우리 사회 구성원

2019년 행정안전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당진시는 충남도 내 중 3번째(1만674명)로 외국인주민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다문화가정, 결혼이주민들은 이제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우리 사회 구성원이다. 남 대표는 자신과 같은 결혼이주여성에게 “좋아하는 일, 직업을 가지고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는 게 중요하다”며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지역사회 적응을 돕고,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장미농원이 지역에 있어서 사람들이 더 좋아해요. ‘연아장미’에서 기른 꽃이 지역 꽃집과 당진시민들에게 많이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제가 기른 예쁜 꽃으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 이 기사는 2022년 충청남도 지역언론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당진방송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