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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22.09.13 13:04
  • 호수 1421

[기고] 오정아 출향인(읍내동 출신 / 당진초·호서중·호서고 졸업)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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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가시고 커튼 사이로 밝은 기운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밖에서 계절에 맞는 새소리가 들려온다. 요즘 들리는 새소리는 이름이 뭔지 모르겠지만 작고 귀엽다. 일어나서 창밖으로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건 역시 웅장한 톈산. 그리고 하늘과 구름을 보며 날씨를 가늠해본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산다는 것은 곧 톈산을 우리동네 뒷산으로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톈산은 ‘하늘의 산’이라는 뜻으로 유네스코에도 등재된 만년설을 볼 수 있는 자연유산이다. 아시아의 알프스라 불리는 거대한 산맥으로 중국,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에 걸쳐 장엄하게 자리하고 있다. 

알마티는 카자흐스탄의 특별시로 옛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이다. 2021년 기준 인구가 200만이 채 안 되며, 카자흐인 61.4%, 러시아인 24.3%, 위구르인 5.4%, 고려인 1.8%를 차지하고 있다. 면적은 서울보다 조금 크다. 

이곳에서 9월 첫 주를 보내려면 유독 화이팅 넘치는 기운이 필요하다. 9월 학기제인 이곳에서는 아이가 새 학년을 시작하는 때이다. 즉, 여름의 쉼을 끝내고 다시 정상화되어 꿈틀대는 때라는 뜻이다. 아침부터 교통체증을 제대로 맛보는 것으로 ‘아, 이제 다시 1년을 시작하는구나’ 절감한다. 

이곳에 와서 살게 된 지 5년째인데 매년 새 학년이 시작될 즈음은 아이를 학교에 보낼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그래도 지금은 학년이 올라가 스스로 해야 할 일들과 엄마가 준비해줘야 할 일이 구분되니 조금은 나아진 듯해도, 학교 등하교를 책임져야 하는 나의 역할엔 변함이 없다. 

개학 전 학교에서 쓸 학용품 리스트를 받으면 그에 따라 준비하면 되는데 큰 학용품 전문점에 가거나, 마트 또는 일반시장에 일시적으로 학용품 시장이 열린다. 8월 마지막 주쯤 되면 학생을 둔 가정에선 일제히 학용품 쇼핑을 해야 하니 외국인인 나에겐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낯선 하나의 관문이었다. 

이곳은 일반 국공립학교, 사립학교, 국제학교 등 여러 학교가 있는데 학교마다 조금씩 분위기가 다르다. 국공립학교는 대부분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흰 셔츠에 짙은 색 하의를 입고 여학생들이 머리장식으로 흰색 꽃장식을 다는 게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처럼 각 학교별로 정해진 같은 디자인의 교복을 입는 것은 사립학교나 일부 국제학교 등이 그렇다. 

내 아이(김나연)는 이곳에서 사립학교를 다니는데 러시아어를 기본으로 모든 수업이 이루어지고 복장은 자유롭다. 카자흐스탄인데 왜 러시아어로 수업을 하는 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긴 설명이 필요하다. 간단히 말하자면 카자흐스탄은 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 러시아의 일부였고 인구 구성비로 봐도 약 1/4분은 러시아인이니 모든 생활에서 러시아어만으로도 일상이 가능하다.

물론 학교수업에 카작어(카자흐어)가 있어서 아이가 처음에 카작어를 따라잡기에 버거워했다.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미국·영국계열 일부 국제학교에서는 카작어 수업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아이가 학교에서 크게 낙오되는 과목 없이 재밌게 적응하고 잘 생활하는 것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 “나는 왜 다른 친구들이랑 다르게 생겼어?”라고 질문해서 가슴이 철렁한 적도 있지만 이젠 외국인이라는 신분으로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는 본인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그 나름의 장단점을 살려 한국어도, 러시아어도 완전히 익숙한데다 덤으로 영어와 카작어까지 알고 있으니 기특할 따름이다. 

K-컬처가 전세계에 스며들었음을 외국에 사는 한국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크게 느낄 것이다. 내가 한국사람인 걸 알면 “안녕하세요”는 물론 간단한 한국말로 응대하는 젊은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는데 그 수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아이돌 스타나 연예인을 스스럼없이 얘기하면서 호감을 표하고 인사하고 지나가는 젊은이들도 있다.

여름방학을 한국가서 지내고 오면 어디 갔었는지, 또 어떤 물건을 사왔는지도 소소한 관심거리다. 그래서 이번에도 한국에 다녀오면서 공항 면세점 기념품샵에서 친구들과 선생님 선물을 사왔다. 아마 1년 동안 선물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집안일을 하거나 오늘처럼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달력을 보니 한국은 곧 추석이다. 여기서야 한국처럼 명절을 보낼 수는 없지만 한국식당에서는 아마도 송편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19로 멈췄던 교민 한마음 체육대회도 올해는 열린다고 한다. 

며칠 전에 일이 있어 영사관에 갔는데 한국비자를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주변에서도 한국으로 일하러 간다거나 혹은 갔다온 적이 있다는 현지인을 많이 보았다. 또한 카자흐스탄 내에서 어렵지 않게 보고 듣게 되는 한국과의 다양한 교류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많이 느낀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외국인으로 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당진사람’이라서 ‘당진’이라는 두 글자만 보아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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