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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수문통 6
수문통의 산증인 어민 장원식 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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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통에서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장원식 씨는 13세부터 어업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그의 기억에 따르면 수문통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가구가 거주했으며, 생선을 사러 온 상인들과 인천행 여객선을 타기 위해 온 승객, 쌀을 실어 나르는 인부들로 늘 붐볐다. 현재 그가 살고 있는 집터에 당시 쌀을 보관했던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여기가 집이 14채가 있었어. 마을에 뱃일하는 사람들은 몇 사람 안 됐어요. 그때 당시 3~4집 정도 있었죠. 장덕수 씨라고 삽교천에서 장사하는 그 집, 여기 홍성국 씨네 아버지 홍성찬 어른, 그리고 나, 그 정도. (중략) 여자들도 갖다 팔려고 생선을 다라로 이고 다니고. 옛날에는 전부 다 장사해서 먹고 살고 그랬으니께. 고기가 많이 잡히지도 않고 조금 잡히니께 서로 찌지기판 나는 거야.”

장원식 씨는 동생(故 장순식)과 함께 13세에 처음으로 바다에 나갔다. 누구에게 뱃일을 배우지도 못했다. 동네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래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집안은 가난했고 그는 맏아들이었다.

”그때는 진짜 보리죽도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가난했으니께 학교도 다니다가 고만두고. 우리 끼니꺼리 때문에 한 거여. 어려서부터 그이(게) 잡아서 갖다 팔고. 어머니가 그이 잡아서 갖고 나가면 이제 감자니 뭐니 다른 걸로 바꿔 갖고 오지. 여기 고생 안 한 사람들 없어. 배 부린 사람들 다 고생했지.“

 

우현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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