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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 입력 2022.10.14 22:09
  • 호수 1426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사발포구(부리포) 2
쌀 싣고 인천을 오가던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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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발포구가 있던 자리는 간척사업 이후 논으로 변했다.

인천에서 부리포(사발포)까지는 약 7시간이 걸렸다. 조수 물때에 따라 한 번 와서 1박하고 다시 되돌아갔다. 주로 인근 면천·합덕·예산 사람들이 이용했다. 30~40명의 사람과 쌀·계란·잡곡 등이 인천으로 실려나가고, 올 때는 그릇·광목·새우젓·제과류·생필품 등이 실려 왔다.

그 당시 인천을 오가던 배는 쌀 800여 가마를 실을 수 있는 큰 배인 영창호를 비롯해 공동환·이근호·해평호 등이 있었다. 1910~1940년 일제강점기에는 소들강문의 곡물을 수송하는 당진군 최대의 포구로 번창했었다. 일제강점기의 운임은 쌀 한 말이 80전 할 때 인천까지 1원20전이었다. 30여 년 전 배표 팔 곳은 김연수 씨 집이고 부리포 취급소를 운영하던 사람은 강문리 최창석 노인이었다.

우강면 강문리의 사발포는 역사적으로 조선시대 면천 남창의 조세미를 운반했던 포구를 일컫는 ‘범근내포’가 자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강문리는 강문, 사벌포, 감찰언이라는 3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졌다. 

강문은 옛 면천군 이서면 강문리 지역으로 1914년 통폐합 이전의 ‘원강문’ 지역을 말한다. 마을이 범근내 입구에 있으므로 강문(江門)이라 한다. 사벌포(新筏浦)는 옛 면천군 이서면 신번리 지역으로 강문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약 120여 년 전에 아산만가에 개로 둑을 막아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신촌리의 가포와 경계에 있으며 부리포(富里浦) 혹은 신벌포(新筏浦)라고도 한다. 부촌의 포구 혹은 부리처럼 쑥 나와 있는 곳의 안쪽에 포구가 생겼기에 ‘부리포’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유명한 삽교천 변의 범근내포(泛斤乃浦)를 현재의 부리포로 비정하기도 한다. 감찰언(監察堰)은 강문 남쪽에 있는 마을로 약 150여 년 전 감찰 벼슬을 한 사람이 언(堰)을 쌓고 마을을 이루었다 한다. 감찰원(監察元)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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