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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24 14:24
  • 수정 2022.11.08 08:59
  • 호수 1427

[어르신 영상 자서전 ‘학교 가는 길’ 4] 안계숙 할머니
“엄마,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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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 삐약이는 인형을 안고…”

딸이 사다 준 그림책을 또박또박 정성스레 읽어 내려간다. 나이 70을 앞두고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에 딸은 당장에 검색하더니 해나루시민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며칠 뒤 학교에 와보라는 말에 딸과 함께 교실에 들어선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가슴이 북받쳤다. 너무 너무 좋아서….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아버지 원망 

1952년 어리(현 우두동)에서 태어난 안계숙 씨는 배우지 못한 한이 60년 넘도록 가슴 안에 가득했다. 딸은 절대로 가르칠 수 없다던 아버지를 원망하고 원망하면서 살았다. 아버지는 “여자가 글을 알면 연애편지 써서 바람 난다”며 그가 학교에 가는 걸 극구 반대했다. 아버지 또한 ‘까막눈’이었는데, 그땐 사는 게 불편하지 않았나보다. 글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 하나뿐인 자식도 가르치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 산소가 수청동에 있어요. 그 근처를 지나가더라도 산소에 잘 안 가. 지금 생각해도 너무 화가 나요. 알았던 것도 잊어버릴 나이에 아버지 때문에 내가 이제야 공부한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화가 나.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원망했으면 큰딸이 ‘엄마, 이제 나이도 먹었고, 학교에 다니면서 우리 이름도 다 쓰고 읽을 수 있잖아. 그러니까 이제 할아버지 용서해줄 때도 되지 않아?’라고 얘기하는데, 나는 절대로, 죽기나 해야 잊을까. 그 설움을 못 잊어요.”

동네 살던 사촌언니와 아랫집 친구들 다 가방 메고 책보 싸서 학교 다녔는데, 등교하는 친구들 보고 있으면 어린 마음에도 자기 자신이 너무 처량해 보였다. 

20년 넘게 그가 운영했던 반찬가게는 제법 손님이 많았다. 입소문이 나서 서울 강남에서도 주문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손님이 택배를 보내달라면서 주소를 문자메시지로 보내면 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으니 띠동갑 앞집 이웃에게 부탁해야 했다. 그러면 이웃이 운송장에 주소를 적어줬다. 

그렇게 가게를 운영하면서 가족들을 챙기며 바쁘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통증이 찾아왔다. 하루에 너 댓 번씩 골반이 너무 아팠다. 결국 수술을 하고 가게를 접었다. 한동안 아픈 몸을 회복하느라 그냥저냥 보냈는데, 1년쯤 지나니 뭐라도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딸에게 “엄마 학교 가고 싶다”고 말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해나루시민학교에 입학했다. 2018년부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으니 어느덧 4년이나 됐다. 

 

“손주도 중요하지만 마음은 학교에”  

안계숙 씨는 “지금도 학교에 대한 열정이 크다”며 “수업 빠지면 큰 일 나는 줄 안다”고 말했다. 그는 “손자·손녀가 아파서 돌봐줘야 하는 때도 있는데, 물론 손주도 중요하지만 마음은 학교에 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 엄마를 보는 딸들은 늘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여자는 배우면 안 된다는 아버지 말대로 평생을 산 게 너무 억울해서 딸들을 더 열심히 가르쳤다. 어린 시절엔 받지 못했던 가족의 응원을 받으면서 오늘도 안계숙 씨는 학교로 향한다. 

<편집자주>
글을 배우지 못한 70~80대 어르신들은 가난한 집의 살림 밑천이었던 맏딸이었거나, 가방 대신 지게를 져야 했던, 학교 대신 갯벌로 나가야 했던 어린 소년·소녀였다. 해방 전후 태어나 6.25전쟁을 겪으며 사회적 혼란과 절대적 빈곤 속에 교육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 한 많은 시절 삶의 무게를 이겨내고 문해교육에 도전한 늦깎이 학생들의 인생 이야기를 기사와 영상을 통해 전하고자 한다. 서글픈 시대와 역사가 오롯이 담긴 삶을 기록해두고자 한다. 

※ 이 기사는 충청남도지역미디어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또한 유튜브 채널 ‘당진방송’을 통해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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