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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 입력 2022.10.28 22:57
  • 호수 1428

대포리와 소반리(소포) 경계에 형성된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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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두런포구가 있었던 대포리와 소반리 일대의 모습

대두런포구는 지금의 안뜸1길 48-18(현 소포리)과 안뜸1길 48-11(현 대포리) 앞 논(우강면 소반리 195-3번지)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의 구술 내용을 종합해 볼 때, 1960년대 전후 소포와 원대포 마을의 포구는 해안가로 연결되어 하나의 만을 이뤘다. 이곳을 주민들은 ‘대두런포구’라 불렀다. 대를 이어 우강면에 살고 있는 김재운 소반리 노인회장과 천병원 씨, 김종갑 씨가 대두런포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기는 그 전에 대두런포구라고 하더라고. 소반리 여기 보고서 대두런포구라고 했어, 대두런. 대포리하고 소반리하고 경계. 거기가 대두런포구였어.” (김재운)

옛 항공사진과 지도를 살펴보아도 소포와 원대포가 인접했으며, 마을 앞 삽교천변의 포구가 이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두런포구는 주민들의 구술대로 소포(소반리)와 대포(대포리) 경계에 형성된 포구로 보인다. 소포와 원대포 모두 옛 면천군 범천면 당시부터 갯가에 형성된 큰 마을로 이미 포구가 존재해 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포리하고 소반리하고 경계에 포구가 있었지.” (천병원)

“그게 갯뚝(안뜸1길)이야. 저게 집 있는 데가 뚝이여. 원뚝. 거기다 배는 안 댔어. 근데 배 주로 댄 거는 요 집(우강면 소반리 195-3)이지. 요기 배들을 거기다 제일 많이 댔어. 여 근처가 제일 배를 많이 댔고. 소포라고 했지. 그 명칭이 참 애매해요. 동네 이렇게 따라서 대포·소포 이렇게 나눠져 있다고. (원대포와 소포가) 붙어 있잖아. 골이 이렇게 생겼으면 이쪽은 소포 이쪽은 대포였고 양쪽에다 아무데나 배를 매놔.” (김종갑)


우현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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