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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22.11.05 18:28
  • 호수 1429

[칼럼] 신양웅 국편사료조사위원
백제 부흥 전쟁의 백촌강지구 해전은 당진 웅포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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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촌강 해전은 우리 고장 당진에서 일어났고 3년간 부흥운동기간에 문제가 되고 있던 피성, 고련단경수, 손량, 지벌포, 백사 장암 등을 가헌 선생님께서 당진지방에서 찾아내셨다. 필자는 1989년 10월에 당진문화원에서 ‘백제부흥운동시 당진역할’이라는 강연을 듣고 관심을 가지게 됐다. 

백제부흥운동을 연구하는 학자 사이에서 백촌강이 금강하류, 동진강, 안성천, 대천 앞바다 등을 말하는 의견으로 분분했다. 대부분이 현지답사도 하지 않은 채 문헌 ‘삼국사기’, ‘신·구당서’, ‘고사기’, ‘일본서기’ 위주의 고증을 보고 지역이기주의를 더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시키는 것 같다.

백촌강 해전은 663년 8월 27일에서 28일 양일간 벌어진 동양 최초 국제 해전으로 4회 전투에서 당의 전통 화공 작전으로 왜 병선 400여 척이 불타고 왜 장정 1만명이 전사하는 참패를 당했다. 풍왕은 고구려로 망명하고 9월 8일에는 주류성마저 함락돼 백제부흥운동은 실패하고 말았다. 당나라 수군을 통솔하고 해전을 치른 문관 출신 웅진도독 유인궤는 왜 장정들의 시신을 수렴해 묻어주고 그 원혼들을 위해 제사를 주었다는 내용이 ‘구당서 유인궤전’에 기록돼 있다.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그는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인간적으로 죄책감을 느꼈는지 강시(죽은 누에처럼 허옇게 물에 불은 채 밀려와 주변 해안가를 덮은 시신들)를 묻어주고 조제를 지내 왜 장정들의 원혼을 달래주었다고 한다. 분명 분묘는 백촌강 해전이 벌어졌던 그 주변의 해안가에서 있을 것이고 왜선 1000척과 당선 170여척이 선착(입항)할 수 있는 백사장도 있어야 할 것이다.

국방부 국방연구소에서 민족전란사를 발행한 11집 <나당전쟁사> 1999년 12월 27일. 기록에 백강구의 위치는 당진군 석문면 백석해안이라고 기록돼 있다. 가헌 선생님이 연구하고 답사한 곳으로 유독 당진 해안가에만 유인궤 장군이 수렴했다는 전사자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이 있다. 무덤(분묘) 막무덤, 맹무덤(졸무덤), 말무덤 세 군데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당진시 고대면 대촌리 서방산상에 위치한 토만두상으로 높이 1간(약 2M), 주위가 약 80간(145M)의 고분인 막무덤(조잡하게 매장한 분묘)이다. 1916년 조선총독부가 토지조사사업 때 발견하고 발행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기록돼 있다.

또 1979년 간행된 ‘충청남도지’에 故 연재 홍사준 부여박물관장은 <옛무덤=고대면 대촌리> 이곳은 분묘 높이 6척, 묘 주위가 80간 고분으로 1인의 분묘라기보다는 전쟁으로 인한 무명용사의 고흔묘가 아닌가 추측된다. 하지만 이렇다 할 전설도 없으니 혹시 장래 이 지방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이뤄지길 기대하면서 기록하여 둔다는 고분이다. 

두 번째는 석문면 통정리에 있는 맹무덤인데, 한자로 큰 맹(孟)자를 쓴다. 이곳 지명도 맹무덤재다. 1988년에 석문면지를 만들기 위해 지명유래 조사를 했다. 당시 그곳에 사는 분이 맹무덤과 관계된 자료를 주었는데, 자료에는 ‘장덤은 장터이고 줄무시는 졸몰시라, 복사골은 폭사골이고 맹무덤은 막무덤이다.

이는 신라와 백제 전쟁시에 배들(병선)이 장덤으로 정박해 장터로 변한 것이고 줄무시는 군졸들이 많이 죽었다 하여 졸몰시가 된 것이다. 맹무덤은 죽은 시체를 마구 묻었다 해서 막무덤이 맹무덤으로 변하고, 효자무골은 죽은 사람 중 두 사람만이 수자무골에 묻었기에 수자무골이 효자무골로 변했다고’고 돼 있다. 아마 백촌강 전투와 고나련한 지명유래로 사료된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이곳 맹무덤재 부근에서 도보로 새벽길을 갈 때 뒤에서 여러 명이 수군대며 따라오는 것 같아 뒤돌아보니 목 없는 귀신들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생존하는 분 중에 실제로 목격했다는 사람도 있다. 

세 번째는 석문면 장고항 3리 참새골 둥성이에 있던 말무덤인데, 길이는 약 7~8m, 높이 1m40~50cm 정도다. 지금은 파괴되고 수목이 우거져 있다. 이곳은 필자가 1950년 초등학교(초등학교) 다닐 때, 여름방학 때가 되면 학생들이 부락별로 모여 조기회도 하고 두레놀이를하던 장소였다. 어릴 적 얼마나 많은 말들이 죽었으면 말무덤까지 만들어주었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야 말무덤이 백제 고분임을 알게됐다.

하루속히 당진백촌강유적지보존선양회(회장 이홍근)를 중심으로 많은 분이 백촌강 해전을 연구해 학계에 고증받길 바란다. 또한 관에서 관심을 갖고 협조해 웅포 앞바다가 사적 자료로서 인정받길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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