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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22.12.28 09:39
  • 호수 1436

[문화칼럼] 남광현 당진시 문화관광과 문화재팀장
재조명되고 있는 대호지면 조금진...한국 최초의 서양음악 도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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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 대호지면에 대한 당진시민들의 일반적인 시각은 지역에서 가장 낙후된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일제의 신작로 개발이 있기 전 해로가 물류 이동의 중심이던 전통 시대에는 해미현 서면에 속해 있어 서울로 가는 중요한 해로 교통로 중 하나였다. 
그런데 대호지면과 관련하여 최근 성신여대 문화산업예술대학원 김정섭 교수의 <충남 당진 조금진의 문화적 장소성과 엔터테인먼트 명소 전환 리브랜딩 전략>이라는 논문이 발표되면서 세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오페르트 도굴사건으로 잘 알려진 독일 상인 오페르트에 관한 이야기다. 그동안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해 간추려 보면, 오페르트는 조선과의 통상을 위하여 1866년 3월 24일 중국 상해를 출발하여 3월 27일 해미현 서면 조금진에 도착한다. 그는 해미현감 김응집에게 통상을 요구하다 실패하고 같은해 6월 6일 조금진에서 통상을 요구하다 또 실패하였다. 1868년 오페르트는 행담도-구만포-덕산관아를 거쳐 남연군묘를 도굴하여 시신을 미끼로 통상권을 확보코자 하였으나 실패한 이 사건을 통칭하여 ‘오페르트 도굴사건’이라 한다. 

김정섭 교수는 오페르트가 쓴 <금단의 나라 조선(2019 번역판)>을 인용하여 새로운 접근을 하였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페르트의 여행기와 <고종실록> 등 관련 문헌을 종합하면 독일 상인 오페르트는 영국 상선 로나호를 타고 1866년(고종 3년) 음력 2월 12일 해미현 조금진에 도달해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 역사에 길이 남을 선상연회를 개최했다. 통상 관철(접대) 분위기 조성용으로 해미현감 김응집과 수비대장 등 조선 관원을 초청하여 음식과 술을 대접하면서 서양의 아코디언 연주곡, 바이올린 연주곡 등 구체적인 악곡들을 음악재생 장치인 대형 뮤직박스들(the large musical boxes)을 틀어 들려준 것이다.

오페르트는 자신의 책에서 “큰 뮤직 박스들을 틀자 해미현 수비대장은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박자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들려준 음반 가운데) 특히 바이올린 연주곡은 조선인들을 더욱 매료시켜 온 힘을 다한 연주자의 음악이 끝나자 큰 박수갈채를 보냈다. 수비대장은 평범한 손풍금의 음색에 빠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매우 흥겹고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음악에 맞춰 춤추고 노래했다”라고 당시 반응을 적었다. 

당진 조금진이 서양인이 뮤직박스를 가지고 와서 처음으로 구체적인 악곡들, 다시 말해 아코디언과 바이올린 연주곡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틀어준 곳이라는 것이 오페르트의 책 등 기록으로 확인되어 음반사적으로 의미가 깊다. 서양의 악곡이 개항기 서양인에 의해 시연된 국내 최초의 장소라는 역사성을 주목해야 한다.』

<K컬쳐 시대의 뮤직 비즈니스>의 저자로도 유명한 김정섭 교수는 오페르트의 여행기를 인용하여 『오페르트가 바라본 한국인의 음악적 정서는 다른 민족에 비해 우수하다. 음악을 틀어주면 이질적일 음악에 대해 거리낌 없이 율동하고 반응한다』라면서 K컬쳐는 서양의 음악에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 세계적인 음악으로 재탄생 시킨 것이라는 논조를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장소(한국 최초의 서양음악 도래지 = K컬쳐의 원산지)를 스토리텔링의 장소로 명소화하는 하드웨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마다 한가위날 저녁에 대호지면에서는 면지역 남녀노소가 한껏 기량을 뽐내는 콩쿨대회가 이어져오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다 사라졌지만 이곳에서는 고집스럽게 이 문화를 이어오고 있다. 한국 최초의 서양음악 도래지에 걸맞는 유희성을 가진 주민들의 집단인 것 같다. 대호지 사람들 중에 머지않아 김정섭 교수의 논문을 접하고 한껏 고무되어 각종 하드웨어 사업에 대해 건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예견된다.

하지만 고향사람으로 이 글을 소개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일은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는 조심스런 충고를 해주고 싶다. 콩쿨대회 콘텐츠를 모태로 역사적 사건과 접목하여 하나하나 차근차근하게 준비하여야 할 일이다. 문화는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감하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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