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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읍면소식
  • 입력 2023.01.20 20:38
  • 수정 2023.01.20 21:47
  • 호수 1440

역사가 된 시절을 산 대호지 주민 25인의 이야기
대호지면주민자치회 구술채록서
<그다음 이야기 : 일제강점기 그리고 보통 사람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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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독립만세운동부터 일제강점기 지나 6.25 전쟁까지
만세운동 후 초주검…가난에 허덕이던 민초들의 삶

“6.25 전쟁이 났을 때 우리집 뒤에 총알이 날아와 불이 번쩍번쩍하니 동네 사람들이 우리집으로 다 도망 와 대청마루 밑에 몸을 숨겼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마루 밑에 자리가 없어 몸통만 마루 밑에 들어가고 엉덩이며 다리는 밖으로 나온 사람들도 많았다.”-김영례(82)

“초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6.25 전쟁이 났다. 큰오빠가 인민군에 동조해서 그때 잡혀가 죽임을 당하고 시체도 찾지 못했다. 둘째 오빠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징용을 가서 고생하다 오 셔서 오래 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김이기(89)

대호지면은 1919년 대호지·천의장터 4.4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주민들은 손에 태극기를 들고 대호지면사무소에서 정미면 천의장터까지 만세를 부르며 7km를 행진한 뒤 일제와 무력 격전을 벌였다. 일제강점기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6.25 전쟁이 발발했다. 

평온했던 시골 마을에 가난과 고난이 찾아왔다. 피죽 하나 먹지 못하고 버텨내야만 했다. 많은 이들이 모진 고문과 전쟁, 굶주림에 세상을 떠났다. 대호지에는 그 어려운 시기를 버틴 사람들과 떠난 이들의 가족들이 남아 있다.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그들의 이야기가 대호지면주민자치회에서 발간한 <그다음 이야기 : 일제강점기 그리고 보통 사람들의 삶>에 담겼다. 

▲ 작가 김한하 씨가 집집마다 방문해 어르신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글로 다듬었다.

그다음 이야기는?

<그다음 이야기>에는 역사적인 시기에서 생을 견뎌 온 25명의 대호지 주민들의 이야기가 수록돼 있다. 이 책은 주민총회를 통해 만들어진 사업이다. 2021년 당진시 시책제안 공모사업에 ‘대호지 4.4 독립만세운동 역사마을 조성사업’이 선정되며 그 일환으로 책이 만들어졌다. 책을 발간한 이후 4.4 독립만세운동 만세탑 공원화와 창의사 역사공원 조성 사업 등이 이어질 예정이다. 

책 발간 당시 대호지면주민자치회장이었던 남기찬 전 회장은 “혹독한 일제 식민지배와 6.25 한국전쟁시 우리 지역민들의 삶은 어떠했는지 그 시절을 살아낸 생존 어르신들의 증언을 채록해 널리 알리는 작업을 지난해 진행했다”며 “후손들에게 지금의 평화와 풍요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산 교육자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조금초와 미호고등공민학교 등 대호지면 학생들의 옛 모습들

25명 집집마다 방문해 이야기 들어

책 발간을 위해 대호지주민자치회는 각 마을의 연로한 주민들을 수소문한 끝에 25명의 어르신을 선정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이 많아 남은 사람이 적었고, 25명 중에서도 치매가 있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분들도 있었다. 그래도 대호지면주민자치회는 이들 한 명 한 명이 겪은 이야기 속에서 역사를 찾아 기록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이 사업을 진행했다. 채록은 대호지면주민자치회 2기 위원인 김한하 씨가 맡았다. 집마다 방문해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 뒤 글로 다듬어 책으로 엮었다. 

“삶이 늘 살얼음판이었기에 아무 일이 없어도 걱정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묵묵히 이 땅을 지켜왔기에 지금의 우리가 여기에 있을 수 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세상이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앞서 살아온 한 사람 한 사람들의 노력이었다. 그들 삶의 이야기를 남겨주고 싶었다.” - 작가 김한하의 여는 말 

▲ 작가 김한하 씨가 집집마다 방문해 어르신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글로 다듬었다.

가난에 숨통서 파래 뜯던 이야기

김한하 씨가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찾아가면 ‘그땐 다 그렇다. 특별한 것 없다’고 손사래를 치곤 했다. 하지만 그 삶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처절한 생존기였다. 그러나 그 당시 누구나 다 그랬고 일상이었기에 그간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숨겨져 있었다. 

고선균(86) 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평생 농사만 지으며 몸을 아끼지 않고 살았다”며 “농사가 천직이고 농사를 지어야만 사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살면서 제일 큰 설움이 배고픈 설움이라는 것을 우리 세대는 겪어보았고 조상이 준 이 땅을 지키며 이어가는 일이 사명이라고 믿기에 몸이 부서지라고 일만 하면서도 그것을 당연한 일이라 믿고 살았다”고 말했다. 

책 안에는 4.4 독립만세운동부터 일제강점기 시대를 겪어 온 이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고태균(86) 씨는 “아버지도 4.4 독립 만세운동에 참여했으며 갑자기 들이닥친 일본 군인에게 맞아 초주검이 됐다”며 “병원도 없고 약도 구하기 힘들 때였는데, 맞아서 죽게 된 사람에게는 오래된 인분 물을 마시게 하면 나아진다는 속설에 아버지는 인분 물을 마셨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아버지는 내가 15살 때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고태균 씨의 큰형님 역시 일본 사람들에게 끌려가 부산 형무소에서 감옥살이를 했단다. 형을 살다 온 형님은 산송장 몰골로 집으로 돌아왔다. 고 씨는 가난 속에 살아야만 했다. 학교 대신 집 앞 숨통(바닷물과 민물이 들어왔다 나가는 곳) 옆에서 파래를 뜯어말려 생계를 유지했다. 새벽부터 파래를 뜯고 있다가 학교 가는 아이들이 보이면 숨통 구멍에 숨곤 했다. 아직도 그 기억이 고 씨에겐 어제처럼 생생하다.

만세운동 후 후유증으로 다들 세상 떠나

이 시기 가장들이 끌려가거나 혹은 징용으로 집을 비웠다. 경제적인 수익도 없기에 모두가 힘들었다. 남기형(78) 씨는 “할아버지가 4.4 독립 만세운동에 참여한 뒤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며 “할아버지는 일본 경찰에 끌려가 감옥에서 수감 생활을 하다 집에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 당시 감옥에서 살아 나왔다 해도 며칠 못 가서 돌아가시거나 그나마 살았던 몇 분들도 몇 달 안에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가장들이 없어져 버린 집에서 경제적 수익도 없었고 벌금까지 내야 하는 상황이라 지역민 모두가 경제적 타격이 컸다”고 말했다. 

“집안 형편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늘 가난에 허덕이는 세월이었어요. 우리 집만의 일이 아니었죠. 그나마 우리 집은 먹고 살 만했었는데도 그 지경이었어요. 없는 사람들은 약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죽죠. 4.4 독립만세운동은 대호지 전체가 나선 일이었어요. 누구 하나 그 일에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에요. 참여한 사람은 참여한 대로, 물질적,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참여하지 못한 사람은 정신적인 고통이 있었을 것이에요. 그 시대를 산 사람 중에 애쓰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 조금초와 미호고등공민학교 등 대호지면 학생들의 옛 모습들

가난으로 한 집에 23명이 살기도

대호지면 장정리에서 나고 자란 정문환 씨(91)가 어렸을 적 집에는 23명의 가족이 살았다. 정 씨는 “한방에 누워 손바닥만 한 이불 하나 놓고 자는데 누울 자리가 없어 어머니는 쪼그리고 앉아 잠을 자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먹을 것 역시 부족한 시절이었다. 그는 “먹을 게 없어 도토리를 삶아서 말려서 껍질 벗겨내고 절구에 빻아 도토리밥을 해서 먹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시어머니를 통해 4.4 독립만세운동 당시 대호지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4.4 독립만세운동 때 다들 태극기 들고 만세 부르며 행진하니 시부모님도 집 앞에서 같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며 “그 일이 있고난 후 어느 날 시아버지를 주재소로 끌고 가 두들겨 패서 거의 초주검이 됐다”며 “어떤 사람이 ‘이 사람 아니다’라고 해서 간신히 살았는데, 얼마나 맞았는지 옷이 다 찢어져 살갗에 붙어 옷을 벗기지도 못하고 찢어진 천 조각을 떼어내 상처를 소독했다”고 기억해냈다. 

▲ 조금초와 미호고등공민학교 등 대호지면 학생들의 옛 모습들

직접 역사의 한 가운데서 아픔을 느껴야 했던 이도 있다. 97세의 한근식 씨는 일본군에 의해 남양군도로 강제징용을 가야만 했다. 그는 그곳에서 부대 초소를 만들기 위해 매일 땅을 팠다. 해방된 뒤로도 우리나라로 돌아올 수송선이 없어 1년을 그곳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는 “한 달에 200원을 받기로 했는데, 반은 내가 집으로 송금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주기로 했으나 받지 못하고 그냥 왔다”고 말했다. 남양군도는 일본이 1914년부터 1945년 8월 종전까지 점령했던 중서태평양 있는 곳(현 미크로네시아)으로, 당시 강제 동원된 한인은 5800명으로 확인된다. 

이외에도 이 책이 아니었으면 사라질 역사가 남아 있다. 1860년대 의령 남씨의 종숙으로 출발해 1900년대 학당의 모습을 갖추고 3.1운동 참여자 등의 인재를 양성한 도호의숙의 이야기도 있다. 남양군도 강제징용, 도호의숙, 4.4 독립만세운동, 6.25 전쟁 등. 이 밖에도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가 남겨 있다. 김한하 씨는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사진 수집에 가장 많은 노력을 했다”며 “어르신들에게 사진을 달라고 하면 없다고 했는데, 장롱 위 혹은 박스 안, 책과 책 사이에 한 장씩 숨겨져 있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에게는 일상이었기에 특별하다 생각하지 못하고 내보이지 못했던 그때의 이야기가 이번 책 발간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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