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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3-29 21: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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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참여미술의 원로 김경인 화가와 딸 김남윤 큐레이터
“예술은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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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비판적 작품 활동으로 권력의 감시 대상 되기도
‘소낭구 화가’…“우리 민족 닮은 소나무의 얼과 힘”
“산업도시·물질중심사회 순화하려면 문화예술 필요”

“예술이 기술과 다른 점은 기술은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며 따르는 것이고, 예술은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것이죠. 저항하는 자세로 일하는 자가 바로 예술가이고, ‘각성시키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흔히 예술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김경인 화백에게 예술은 ‘저항’이다. 1941년생인 그는 스무 살 무렵 4.19혁명을 겪었다. 한국전쟁 후 혼란의 시기에 서울대에 진학한 그는 학업에 전념할 수 없었다. 오랜 기간 독재와 군사정권 아래서 민중이 저항했던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았다. 

 

엄혹한 현실을 그리다

어쩌면 운명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예술이 아름다운 ‘장식’에 불과했던 시절, 한국사회에서 사회참여예술은 그렇게 시작됐다. 청년이었던 김경인 화백도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사회에서 한가로이 아름다운 세상만 그릴 순 없었다. 때문에 김 화백의 작품은 1980년대 민중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만해도 한국에서는 삶의 문제를 들고나와 참여미술을 하는 선배들이 없었어요. 군사정권을 겪으면서 ‘내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30대부터 사회비판적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의 그림은 어둡고 무섭고 강했다. 1970~80년대에 그린 <문맹자>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그의 그림에 담긴 메시지가 무거워질수록 그는 권력의 감시 대상이 됐다. 그림을 그리면 어디론가 잡혀갈 수 있는 억압의 시대에 김 화백은 정권을 향해 “세상에 밝은 곳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 빛을 그리는 것은 괜찮고 그림자를 그리는 것은 안 되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삶을 끝까지 책임진 아버지”

그의 삶의 궤적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이는 바로 딸 김남윤 씨다. 그는 현재 아미미술관 큐레이터로 10년째 일하고 있다. 김 큐레이터는 “어렸을 때 봤던 아버지의 그림은 해골, 도깨비, 죽음을 연상하는 이미지로 가득해 무서웠다”며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상당한 용기가 있어야 가능했던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의 그림은 소위 ‘팔리지 않는 그림’이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과 가족의 삶을 끝까지 책임진 아버지가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고 덧붙였다. 

 

성북리 아미산 자락에서 

김경인 화백은 6.25전쟁 당시 당진에 와 정착한 피난민이다. 유년시절을 당진에서 보낸 그는 50대에 고향보다 더 고향 같은 당진으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참여미술을 하면서 누적된 피로로 인해 그의 관심은 자연스레 ‘자연’으로 옮겨갔고, 순성면 성북리 아미산 자락에 ‘우송산방’을 짓고 작업에 몰두했다. 

자연의 품에서 작품활동에 집중하던 그 시절이 참으로 행복했던 그는 그와 교류하던 여러 예술가들과 성북리에 모여 살며 ‘예술인마을’을 만드는 꿈을 꿨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던 예닐곱명의 예술가들이 이곳에 작업실 부지를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개인이 예술인마을을 만들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여러 난관에 부딪히면서 그가 꿈꾸던 예술인마을은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여전히 당진에 예술의 가치가 깊이 뿌리내리길 그는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김경인 화백은 “당진은 전형적인 산업도시”라며 “물질 중심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순화하려면 문화예술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산업사회에서 적절한 조화와 균형을 맞추려면 민·관이 함께 문화 발전을 위해 더더욱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 

한편 김경인 화백은 ‘소낭구 작가’로 불리기도 한다. 춤을 추듯 구불부불 하늘을 향해 뻗은 소나무의 자태를 담은 그의 작품은 김 화백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친다. 김 화백은 “소나무는 우리민족과 닮았다”며 “우리민족에 대해 탐구하면서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여든이 넘은 그는 이제 그의 삶을 하나씩 뒤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지난해에는 강원도 고성 진부령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으며, 최근에는 당진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당진문화예술인 구술총서 <화가 김경인>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다. 지난 세월을 한 권의 책에 모두 담아내기엔 부족하지만 딸 김남윤 큐레이터는 “아버지의 삶을 내 손으로 정리하는 것을 꼭 하고 싶었는데, 이런 기회가 주어져 무척 감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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