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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욱아 유빈아, 엄마 아빠 늦깎이 결혼식 올린단다 - 신평면 거산리 전진·김성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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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사랑법]

“태욱아 유빈아, 엄마 아빠 늦깎이 결혼식 올린단다”
털털한 그녀와 섬세한 그가 키워온 6년간의 사랑
“저희는 애가 둘이나 있는데…”
망설임에 잦아드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걱정 말라고, 가벼운 인터뷰니 부담 가질 필요 없다고 거듭 안심시킨 후에야 허락을 받아냈다.
신평면 거산리로 향하는 차안. 갖가지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함께 산지 6년만에 식을 올리는 부부 아닌 부부. 아이 둘을 낳고도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사연. 희망에 가득차야 할 예비 신랑신부에 대한 인터뷰가 자칫 서러운 눈물바다가 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 등등…

“어머, 일찍 오셨네. 태욱(3세)아 유빈(2세)아, 인사해야지. 어수선하죠? 저희 이렇게 살아요. 어쩌죠? 애기아빠는 조금 늦을 거래요.”
은은한 실내등 아래서 첫 대면을 한 김성유(여·25세)씨는 전화통화와는 딴판으로 통통 튀는 목소리에 명랑하기 그지없다.
“식을 올리려고 했는데 그만 첫 애를 덜컥 밴 거에요. 그 다음 해에는 또 둘째 애를 임신했고요. 도무지 틈이 있어야죠. 결혼식은 안했지만 혼인신고까지 한 법적부부예요”
스무살에 친구 오빠 소개로 남편 전진(26세)씨를 만나 한 눈에 반해 사귄 지 두달 만에 한 방을 썼다는 김성유씨.
“마음이 맞으면 같이 사는 거예요.”
질문한 사람이 무안해질 정도로 함께 산 이유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린다.
“애기아빠가 함께 살려면 부모님 허락부터 받아야 한다고 우겨서 저희 집에 찾아왔지만 대문 앞에서 냉대를 받았어요. 섭섭한 생각은 없었어요. 예쁘게 살아가면 인정해 주시겠지. 잘 살 자신이 있었으니까요. 요즘은 부모님이 저보다 애기아빠를 더 챙겨요.”
만날 당시 한보철강에서 근무했던 전진씨는 회사 부도로 몇 달 안돼 실직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사랑을 하고, 생활을 책임져야 했던 두 사람. 전씨의 실직 후 두 사람은 노래방, 신문배달원 등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이곳 임대아파트로 이사오기 전까지 6년간 월세집을 전전했어요. 3년전 태욱이를 출산했을 때도 한칸짜리 월세방이었죠. 그래도 행복했어요. 태욱이는 복덩이에요. 아이 덕분에 부모님과도, 또 애기아빠와도 더 살갑게 지낼 수 있었어요.”
남들 같으면 한숨을 쉰다던가 눈가의 물기를 닦는다던가 하며 쉽게 이어갈 수 없을 이야기를 김씨는 어두운 기색 하나 없이 계속해나간다. 오히려 표정은 점점 밝아진다. 행복이란 이런 표정을 하고 있구나 생각할 찰나, 벨 소리와 함께 남편 전진씨가 도착했다.
“오늘이 아내 생일이에요. 늦은 시각이라 변변히 사올 게 없어서.”
손에 케이크 상자를 든 채로 멋적어하며 방으로 들어선 전진씨. 길에서 마주쳐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저희 둘 똑같죠? 아이를 안고 동네를 산책하면 사람들이 남매가 조카들 데리고 놀러 나온 줄 알아요.”
늦게까지 양어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왔을 전씨는 자신과 아내의 얼굴을 가리키며 낯선 손님 앞에서 넉살좋게 웃어 보인다.
“솔직히 아내가 태욱이 가졌을 때는 죄짓는 기분이었어요. 월세 방에서 애를 낳을 수는 없다며 반대했어요. 하지만 애기엄마의 의지가 저보다 강했어요. 아이 키우면서도 잘 살수 있다고 제게 믿음을 줬어요. 월급 100만원 가져다주면 자기를 위해서는 한푼도 쓰지 않고서 모두 아이와 저를 위해 쓰는 사람이에요.”
순간 전씨의 동공에 물기가 어렸다. 털털하고 강단 있는 아내와 섬세하고 부드러운 남편. ‘부조화 속에 조화’란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마음이 훈훈해진다.
“식 자체가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아요. 그저 어른들 앞에서 잘 살겠노라고 다짐하는 자리예요. 혼수니 예물이니 모두 간소하게 했어요.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웨딩드레스만큼은 제 고집대로 했어요. 자꾸 값싼 쪽으로 손이 가는 아내를 말려서 예쁘고 고운 드레스를 골라주었어요”
6년만에 올리는 늦깎이 결혼식. 부산을 떨며 신접살림 마련하는 재미도 덜하고, 태욱이 유빈이 덕에 가족 계획할 일도 없을 듯한 밋밋한 새출발.
“별다른 각오는 없어요. 그저 이제껏 살아왔던 것만큼 주어진 여건에서 서로 사랑하며 열심히 살고 싶어요.”
두 부부는 사전에 말을 맞춘 듯 똑 같은 대답을 했다.

전진씨와 태욱이의 긴긴 배웅을 받으며 신평을 나섰다. 차안에서 오래도록 ‘편견’이란 것에 대해 생각했다.
결혼 전부터 함께 살기 시작한 나이 어린 두 사람. 20대 초반에 이미 육아와 생활고를 책임져야했던 젊디젊은 부부.
후회하지 않을까. 불행하지 않을까. 철없지 않을까... 그러기에 편견은 깨어지라고 있는가 보다.
송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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