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
농기구 미니어처 만드는 손낙서 옹(고대면 진관2리)
​지게 할아버지, 마을교사 되다

건강 때문에 시작한 농기구 미니어처 제작
미수(米壽)의 나이에 나무 깎아 섬세한 작품 활동
고대마을교육자치회 마을교사로 활동 예정

2022-07-29     한수미

 

‘지게 할아버지’ 손낙서(88) 옹이 마을교사가 됐다. 육순에 시작한 나무 전통공예가 구순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게, 맷돌, 절구, 쟁기 등 잊혀져가는 옛 농기구는 손 옹의 손에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한때는 지게에 작품 한가득 담아 지고 다니며 팔러 다니곤 해 ‘지게 할아버지’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다. 지게 할아버지가 이제 ‘지게 선생님’이 됐다. 그리고 곧 마을에서 아이들을 만날 예정이다.

꼬박 하루 걸려 만드는 지게

손 옹은 옛날에 쓰던 농촌의 물건을 작게 만드는 농기구 미니어처를 제작하고 있다. 부러진 나무가지를 직접 가져다 깎고 다듬고 구멍을 내어 끼우고 맞춘다. 꼬박 하루 걸려 만든 지게부터 이틀은 집중해야 완성할 수 있는 물레까지 여전히 왕성한 작업을 통해 작품을 만든다. 그가 처음 공예를 시작한 것은 건강 때문이었다.

예순셋 무렵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갓 태어난 손주를 돌보는 것도 힘에 부쳤다. 그 길로 하루 두 갑씩 피우던 담배도 끊었다. 일은 고사하고 마실 다니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건강 때문에 시작한 공예

가족의 돌봄으로 건강을 회복하면서 시작한 일이 나무를 구해 오는 것이었다. 산에서 나무를 가져와 어렸을 때 봤던 것들, 직접 써 온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만든 것이 지게였다. 우리가 아는 지게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지게를 만들었다.

지게를 다 만들고 뿌듯함을 느낀 손 옹은 그 길로 계속 나무공예를 이어갔다. 물레, 절구, 쟁기 등 다양한 농기구를 만들었고 그의 집 한 편에 마련된 작업장에 전시했다.

“이것들이 날 살렸지”

옛날에는 직접 지게를 지고 다니며 시내를 오가기도 했다. 한 아름 작품을 이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판매도 했단다. 이제는 노쇠해 지게를 지고 다니진 못한단다. 그래도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타고 석문면에 있는 도비도에 간다. 물고기 몇 마리 낚아 집에 돌아오고 난 뒤 한 숨 돌리면 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하루 서너 시간 그렇게 작품에 몰두한 것이 근 30년이 됐다. 그는 “건강이 안 좋아 시작했는데 작품을 만들면서 건강이 좋아졌다”며 “이것들이 날 살린 셈”이라고 말했다.

88살의 할아버지 선생님

아흔을 바라보는 미수(米壽)의 나이로 손낙서 옹은 선생님이 됐다. 아이들이 마을 안에서 자랄 수 있도록 마을 주민들이 교사가 되는 마을교육이 고대면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손 옹은 지난달 20일 출범한 고대교육마을자치회에서 마을교사로 참여하게 됐다.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지게나 물레, 맷돌을 아이들에게 소개하고, 또 함께 만드는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건강 허락할 때까지 농기구작품 만들고 싶어”

어김없이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다니는 손 옹이 어느 날 고대마을자치배움터를 찾았다. 센터 앞 테라스를 꾸미던 고대마을교육자치회 회원들에게 손수 만든 작은 소쿠리를 선물했다. 이후 한 회원이 손 옹도 함께 마을교사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에 회원들이 공감하며 마을교사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고대마을교육자치회 출범식에 손 옹의 작품이 전시됐으며, 손 옹이 만든 나무팽이는 아이들의 장난감이 됐다. 전종훈 마을자치배움터 센터장은 “손낙서 옹은 우리 동네의 보물”이라며 “아이들에게 전통을 알려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품 맹글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혀. 그래도 이것 때문에 건강을 되찾았지. 아직도 눈이 좋아 안경 안 쓰고도 작품 맹글거든. 아이들이 내 작품 보고, 가지고 노는 거 보면 좋지.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