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군생활체육협회장으로 활동할 당시 일주일에 3번, 30분 씩 운동하는 ‘스포츠 7330캠페인’을 진행했어요. 그 때 당진시대 덕분에 시민들에게 많이 알려져 운동이 활성화 됐죠. 이처럼 체육을 비롯해 문화 등 시민들이 평소에 알기 어려운 것을 신문에서 다뤄 확산시켰으면 해요. 지역언론은 정말 필요한 존재죠.”고대면 슬항리 출신인 하 대표는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공과 함께 운동을 누비다 고등학교 때는 대전에서 축구선수로 활동했다. 하지만 허리를 다쳐 선수 활동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직장을 다니다 이후 스무살 끝 무렵 고향인 당진을
서해LPG충전소 고한영 대리는 어렸을 때 당진으로 이주해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당진에서 나왔다. 그리고 현재 당진에서 일하고 있다.청년들이 지역사회에 무관심하다고 하지만,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당진에 대해 관심이 많다. 올해 3월 출범한 당진시청년정책네트워크를 시작으로 현재는 당진시청년정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당진시가 추진하는 청년정책의 실수요자로서 청년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고한영 대리는 지역의 청년정책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당진시대에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당진시대에 당진시청년정책네트워크 출
당진시여성포럼 최연숙 대표는 당진지역의 여성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다.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및 역할, 그리고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4월 취임한 당진시여성포럼 대표직 뿐만 아니라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충남연맹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 2013년에는 여성친화도시 컨설턴트로 참여하는 등 여성 관련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경기도 파주가 고향인 최 대표는 결혼을 하면서 당진으로 이주해 왔다.당진에 온 뒤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당진시대와 인연을 맺었다. 최 대표는 “당진시대 덕분에 당진의 인물, 단체,
심규상 오마이뉴스 기자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 기자가 됐다. 그는 몸담고 있던 시민단체에서 대변인을 맡아 보도자료를 쓰거나, 기자들을 만나 그가 소속된 단체 활동이 언론에 보도되도록 요청하는 일을 담당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가 전하는 소식이 잘 보도되지 않자, 직접 기자가 돼 기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심 기자는 과거 민주주의민족통일 대전충남연합이라는 사회단체에 상근하면서 충남 시·군 조직을 담당했다. 그는 당시 활동했던 당진사랑단체연합과 교류하면서 당진시대 창간 멤버들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회원단체 소식과 당진
당진남부사회복지관(관장 김창희)이 청소년들의 아침밥 먹기 운동의 일환으로 균형 잡힌 영양섭취 및 불규칙적인 식습관을 해소하고, 학생들의 건강증진 및 학습능력 향상을 위해 ‘얘들아~ 밥 먹자!’ 행사를 지난 14일 진행했다.이날 행사는 신평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600여명의 학생들에게 아침 7시부터 등교시간에 맞춰 참치마요컵밥과 요구르트를 제공했다. 행사 진행을 위해 새벽부터 아드라코리아당진의 협조를 받아 학생들에게 제공할 아침밥 준비와 행사 진행을 함께했으며 신평중학교 푸른나무 청예단 학생들이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정미면 사관리에서 나고 자란 정미면개발위원회 이원석 위원장은 20년 전 사관리 이장을 할 당시 당진시대와 인연을 맺었다. 중앙지에 익숙해 향토지가 낯설었던 이 위원장은 처음엔 당진시대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 두 번 신문을 보다 보니 지역에 관련된 기사에 눈길이 갔고, 지역민으로서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한 지역현안들을 다루고 있어 지금까지 구독을 이어오고 있다.“당진시대는 지역의 현안을 매섭게 꼬집는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소 그 부분이 약해진 것 같단 생각을 해요. 중립을 지키되 날카롭게 현안에 대해
대우광고기획 방명근 대표는 1946년 아산 인주에서 태어나 3살 무렵 당진을 찾았다. 그는 20대 초반 월남전에 참전했으며 수차례 정권이 바뀌는 것을 보며 살았다. 그는 시골이었던 당진이 개발을 거듭하며 발전되는 모습 또한 생생히 지켜봤다. 그는 “당진에서 70여 년을 살면서 지역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 왔는지 봤다”며 당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옛날엔 당진 시내라고 하면 구 당진시네마~당진천~당진농협금융센터 정도였어요. 그 외에는 다 논과 밭이었어요. 그리고 남산은 지금보다 컸죠. 구터미널에서 당진초 가는 언덕길도 남산이었어
기아자동차 당진해나루대리점 이재설 카마스터는 영업일만 14년째다. 군대를 전역한 뒤 24세 때부터 정수기 영업을 11년간 했으며 이어 3년 동안 BMW 서산지점에서 근무했다.최근에는 보다 지역과 함께하고자 지난 9월 기아자동차 당진해나루대리점으로 오게 됐다. 그는 “내 이익이 아닌 고객의 이익에 초점을 두고 영업을 하고 있다”며 “또한 젊었을 때부터 영업을 해 와서 어떻게 하면 좀 더 고객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지에 주안점을 두고 항상 고민한다”고 말했다.그는 영업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속해 있는 단체만 해도
석문면 통정리에 거주하는 당진시대 독자 김평순 씨의 고향은 충남 금산으로 인천에 살다가 지난 2009년 당진에 내려왔다. 송악읍 전대리에서 인삼 농사를 짓던 김 씨의 동생과 어머니의 일손을 거들기 위해 종종 당진을 오갔다. 그러나 지난 1998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동생과 함께 일을 하기 위해 당진에 정착한 것이다.지역에 살면서 지역소식을 알기 위해 그는 스스로 당진시대 구독을 신청했다. 그는 “당진시대 덕분에 지역 소식을 많이 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농촌에서 태어난 그는 오랫동안 도시에 살면서도 항상 농촌에 대한 그리
추석을 앞 둔 지난달 26일, 고대농협에서는 추석을 맞아 조합원을 위해 우리 농산물 할인 행사가 열렸다. 강원도 강릉에서 새벽에 배달 온 배추와 무, 쪽파를 저렴한 가격으로 조합원에게 판매했다. 이를 위해 김응숙 상무를 비롯한 고대농협 직원들이 새벽부터 나와 행사를 준비했다. ‘배추 한 망에 1만2000원’ 김 전무가 또박또박 써내려간 글씨다. 별 것 아니지만 김 상무에게 이는 특별한 의미다. 스트레스 등으로 오른손에 마비가 온 뒤 김 상무는 글씨를 바르게 쓰기가 어려웠단다. 그는 “누군가는 날려 쓴 글씨처럼 보이겠지만 최선을 다해
품앗이학교협동조합 어린이기자단이 어느덧 활동한 지 3년을 넘어가고 있다. 9명의 어린이기자단은 매달 이라는 주제로 그 달에 기억해야 할 것을 직접 선정·기획하고, 취재부터 기사 작성까지 하며 독자들에게 다양한 주제를 전달해 왔다. 대견스러운 어린이기자단 뒤에는 든든히 뒷받침 해주는 부모들이 있었다. 품앗이학교협동조합 김영경 대표와 이선우 회원 역시 어린이기자단과 함께 하고 있는 엄마들이다. 그들은 “당진시대 을 통해 어린이기자단의 기사를 보면 아이들은 물론 부모들도 반가워하고 뿌듯해 한다”고 말했다.두 사람은 어
당진2동사무소 옆에 위치한 무궁화 이발소의 하루는 이른 새벽 6시30분이면 시작된다. 때로는 박기택 대표가 이발소 문을 열기도 전에 한 두 사람이 기다리기도 한다고.단지 이곳은 이발을 하기 위한 공간만은 아니다. 박 대표의 친구부터 이웃까지 지나가다 들려 커피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 ‘아지트’이기도 하다. 종종 당진시대 신문을 함께 읽으며 지역 현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단다.박 대표가 이발소를 운영한 지도 어느덧 59년이 됐다. 그는 28살 때부터 가위를 잡았다. 채운동에서 내리 5대 째 살고 있는 그는 한 때 파출소에서 행정보조업
김선호 사무장의 고향은 우두동이다. 김 사무장은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다. 이후 1993년에 대전에서 통신기술을 공부했지만 사정상 다시 당진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러다 2002년도에 우연한 계기로 법무사사무소 일을 접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김 사무장은 지금 그가 가진 법무사 지식들을 실무현장에서 배웠다. 처음에는 부동산 등기 업무만 보다가 자연스럽게 송무(부동산 가처분 가압류에 대한 일방적 소송을 신청하는 것)도 맡게 됐다.“법무사라는 직업은 등기일만을 하는 직업이 아닙니다. 법무사의 대표적인 일은 부동산 등기, 소송, 민사신
석문면 삼화2리 출신인 호명도 이장은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그는 20대 청년시절 당시 새마을 지도자로 일했던 때를 회상하며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8년 째 삼화2리 마을을 위해 힘쓰고 있는 호 이장은 삽과 곡괭이로 마을에 길을 내고 주민들의 지붕과 집을 개량하는 등 마을 일이라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했다. 마을회관 건립 등 마을을 위해 주민들과 함께 노력했더니 삼화2리가 새마을 훈장을 두 번이나 받았다면서 마을에 대한 사랑을 내비쳤다.당진이 고령화 지역인 만큼 호 이장은 노인문제에 관심이 많다. 호 이장은 “노
장경환 씨는 송악읍 기지시리 역사의 산 증인이다. 평생을 기지시리에서 살아왔을 뿐만 아니라 20년 동안 이장으로 일했으며, 현재도 노인회장을 맡아 어르신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힘쓰고 있다.20년 동안 이장을 맡아온 그는 주민들의 신뢰가 곧 이장으로서 책임감을 갖게 했다. 주민들의 믿음이 본인의 봉사정신을 강화시키는 원동력이었다고. 김기정 현 이장은 “장경환 노인회장이 기지시리에 좋은 전통을 만들었다”며 “마을의 중요한 현안에 대해 현 이장과 전임 이장이 서로 논의하는 문화는 기지시리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한편 장
방남옥 씨는 22살에 결혼해 남편의 고향인 당진에 내려왔다. 그 당시 당진은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특히 방 씨가 살던 삼봉리는 사람 하나 다니지 않을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아는 사람도 없이 남편만 믿고 찾은 당진은 외로운 곳이었다. 농사일을 돕기도 했지만 일이 서툴러 구박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훈훈한 시골 인심과 변함없는 남편이 원동력이 됐다.한편 방 씨는 30대에 맡은 삼봉3리 부녀회장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체활동을 접었다. 이후 50대가 넘어 생활개선회, 적십자, 사랑봉사대 등 다양한 단체에서 다시 봉사를 시작했다. 그
강원도 속초시가 고향인 장성만 대표는 2010년 당진에 내려왔다. 안산에서 상황버섯 농장을 운영하던 그는 전원생활을 즐기고자 땅을 알아보던 중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던 당진시를 눈여겨 보고 신평면 도성리에 땅을 사고 시장조사를 시작했다. 마침 상황버섯 농사를 짓는 농가 수가 적었던 당진은 그에게 안성맞춤인 곳이었다.“처음에 당진은 생소한 낯선 곳이었어요. 희망의 도시라고 느껴졌지만 한편으로 고향이 그리웠죠. 하지만 이곳에서 적응하기 위해 마을회관에 수박을 들고 찾아가는 등 이웃과 함께 했더니 지금 살고있는 신평에서 만큼은 친구가 많습
합덕읍 상궁원리에서 나고 자란 김윤환 씨는 7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0년 째 해창 오토캠핑장(고대면 당진포2리 당나루물꽃승마마을)의 관리책임자를 맡고 있다.해창 오토캠핑장은 도농교류와 농촌부흥을 위해 고대면 주민들이 모여 만든 당나루물꽃승마마을 영농조합법인에서 운영하고 있다. 해창 오토캠핑장 설립 당시 캠핑장을 위한 관리자가 필요했고 법인에서 회의를 통해 찾은 적임자가 바로 김 씨였다. 그는 “당나루물꽃승마마을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1년에 2만 명이 넘게 오가는 캠핑장의 관리자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
1919년, 대호지면 일원에서 4·4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남신희 씨는 공주형무소에 끌려가 태형 90대를 맞았다. 이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 남 씨는 국가유공자로 지정됐다. 남장우 이장은 남신희 씨의 손자다. 그의 집 앞에 적혀 있는 ‘애국지사의 손자’라는 문패를 보면 할아버지에 대한 그의 자긍심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할아버지께서는 국가의 독립을 위해 애쓰시던 분이었습니다. 애국지사의 손자라는 사실에 큰 자긍심을 느낍니다. ”한편 남장우 이장은 지난 2012년부터 도이1리 이장을 맡고있다.
당진동부새마을금고 류지은 주임은 예금, 적금, 공제 등 수신 업무를 담당하며 2년째 일하고 있다.합덕읍 운산리가 고향인 류 주임은 합덕초등학교와 합덕여중·여고를 나온 뒤 경영학을 전공했다. 이후 류 주임은 각종 자격증을 땄고 금융동향에 대해 공부하며 금융권 취업을 준비해 아산신협에서 1년 동안 일했다. 하지만 출퇴근이 어려워 당진동부새마을금고로 이직하게 됐다.류 주임은 “당진동부새마을금고는 직원들 모두 가족 같다”며 “전 직원이 서로를 챙겨줘 평생 함께하고 싶은 직장”이라고 말했다.류 주임은 고객과의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