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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01.10.01 00:00
  • 호수 389

작은학교 떠들썩한 가을운동회-송산면 가동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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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서 우리마을 잔치 잔치 벌였어요”

“어, 사진기다. 사진관 아줌마다.”
어디선가 들려온 이 한마디 덕분에 느티나무 그늘아래서 옹기종기 모여있던 아이들은 대번에 기자를 사진관 아줌마로 믿어버렸다. 보는 그대로 말하고, 말한대로 믿어버리는 아이들. 오늘은 아이들이 믿는 대로 사진관 아줌마 노릇이나 톡톡히 해야겠다. 제발 이 산토끼 같은 아이들이 카메라 앵글 안에서만 뛰어주기를 바랬다.

송산면 가곡리 어촌마을에 자리한 가동초등학교(교장 임병수)의 가을은 운동회 준비로 분주하다. 운동장에는 총총히 만국기가 달렸고, 팽팽하게 천막도 세워졌다. 어디선가 군침 도는 냄새도 물씬 풍겨져나온다. 운동장 한쪽에 걸려진 ‘경로잔치’ 플랭카드가 손님 맞을 채비가 모두 끝났다고 말해준다.
“할머니들 벌써 오시네. 빨리 서둘러요.”
급식실에서 음식을 장만하다 말고 어머니회 회원 유정숙(32세·가곡1리)씨는 카네이션 꽃을 들고 쏜살같이 교문을 향해 달린다.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게 될 주인공들이 속속들이 학교로 모여들고 있다.
“운동회라고 해봐야 전교생 49명에 32가구가 전부입니다. 작은 학교답게 마을 분들과 함께 하는 운동회를 만들어야겠다싶어 올해부터는 아예 어르신들 경로잔치와 겸해서 치르기로 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정겹고 아기자기한 운동회가 될 겁니다.”
아침부터 이곳저곳 점검하느라 바빴던 임병수 교장은 모여드는 어르신들을 보며 연신 흐뭇해한다.
두달전 척추수술을 받은 몸으로 손자손녀 보실 욕심에 복띠를 매고 걸음하신 이상순(73세) 할머니. 학교에 다니는 손주는 없지만 구경 삼아 나오셨다는 이철수(70세) 할아버지. 천막 안에 자리한 어르신들이 서른명은 족히 넘어 보인다.
드디어 아이들의 맨손 달리기가 시작됐다. 은행나무 그늘에 자리한 마을 주민들과 경로석의 어르신들은 “저기 꼴찌하는 애가 뉘집 아이여?” “저눔은 초장에 엎어졌네”하며 손뼉을 치며, 신나 하신다.
1학년 꼬맹이들까지 “영차 영차” 힘을 보탠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손님들 중 한 명을 찾아 손잡고 달리는 ‘어디 계세요?’ 경기가 펼쳐졌다.
‘물동이 이고 지고’에 참가한 어머니회 회원들은 출렁이는 물에 온 몸이 젖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뜀박질을 한다. 아빠와 아이가 한조가 되어 지구공을 굴리는 ‘지구를 굴리자’에선 아빠 혼자 열성적으로 뛰는 바람에 아이가 뒤처져 다시 되돌아와서 함께 굴리곤 한다.
운동장 가득가득 웃음꽃이다.
오늘 경기의 백미, 어르신들의 여흥을 돋우기 위해 마련된 마른 볏짚으로 새끼 꼬기 대회가 열렸다. 왕년에 한 가닥씩은 하셨을 법한 새끼 꼬기.
“왜그리 엉성한 겨” “내가 너보다는 더 길다. 이눔아” 할아버지들은 동심으로 돌아가 친구분들과 티격태격 하신다. “얼씨구나 절씨구나” 기어이 노래 한자락이 흘러나온다.
“나이 드신 어른들도 운동만 하면 웃나봐요. 함께 웃으니까 너무 재미있어요.”
혜림(여·4학년)이의 말처럼 3대가 한 자리에 모여서 웃고 즐기는 일은 좀처럼 보기힘든 흐뭇한 광경이다.
“가족 같은 분위기죠? 들일 논일에 주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서 딱히 즐길만한 놀이시설도 없는 마을 사람들에게 운동회는 그야야말로 온 가족이 함께 놀 수 있는 기회입니다. 모두가 마을 이웃되시는 분들이라 우리 집 너희 집 구분도 없고요. 아이들도 모처럼 엄마, 아빠 손잡고 뛰는 것입니다.”
1학년과 3학년 두 반을 맡고 있는 이애란(45세) 교사는 이번 운동회가 마을주민들과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며 “가곡리에 가동초등학교가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말했다. 어느새 해가 머리 꼭대기에 닿았다. 목이 마르고 배에서 소리가 난다.
진짜 마을잔치는 지금부터다.
학부모들이 경로잔치를 위해 어제 밤늦게까지 또 오늘 새벽부터 장만한 음식들을 사이에 두고서 또 얼마나 정겨운 모습일까. 얼큰하게 탁주 한 사발 하신 어르신들은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지 않으실까. 김밥을 입안 가득 넣고 터뜨리는 아이들의 웃음은 또 얼마나 싱그러울지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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