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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 입력 2001.10.01 00:00
  • 호수 389

도대체 뭐 해먹나 한탄은 해도 쌀을 버릴 수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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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 쌀 뿐인 우강, 우강사람들 이야기

도대체 이젠 뭘 해먹고 사나
쌀이 넘쳐나고 풍년이 들었기 때문이라며 느닷없이 쌀증산을 포기하고 쌀도 형편없이 낮은 시가에 수매하겠다는 정부 덕분에 농민들의 불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더구나 온통 들판 뿐인 우강지역 농민들은 그저 아연하기만 하다. 우강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한날, 마침 농업경영인 회관 준공식에 참석들 한다고 하여 그리로 발길을 돌렸다.

“농민이 살길을 찾아야 돼. 보관능력과 조절기능이 관건이야. 옛날에는 겨울에 쌀값이 싸니까 업자들이 빚을 내서라도 쌀을 샀는데 지금은 억지로 안돼. 그러니 우리가 보관능력을 갖추고 조절해서 팔아야지.” (허전욱)
“우리 누님은 말야 도시에 나가 사시는데 우강쌀이 그렇게 맛있대. 그런데 이 우강쌀이 우강에 남아나 있어야지.”(유천종)
“미질이 문제라고 하지만 미질만이 문제는 아니야. 당장 어떻게 팔 것인가가 문제지. 현재로선 조합장들이 농민문제를 풀어줘야 하는데 입장표명도 하지않고 농민들 입장을 대변하지도 못하잖아. 이건 당진군 전체의 문제야.”(이재헌)
“농협도 자체적으로 입장을 갖는 게 아니라 중앙회 지시를 받다보니... 누가 되도 이런 저런 압력을 받다보면 할 수도 없고 안할 수도 없고 무기력한 조합장이 될 수밖에…” (윤국현)

이들의 이야기는 짧지만 미질과 보관, 유통, 계통출하, 농협의 자주성 문제등 쌀농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말하고 있었다.
같은 날 우강의 한 점포에서는 이병화씨를 비롯한 예닐곱명의 농민들이 모여 같은 내용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른쪽 끝 사진)

맛있는 우강쌀은 어디로 갔지?
예당평야에 자리잡은 우강과 합덕은 예로부터 땅이 비옥하여 밥맛 좋기로 이름난 곳이었다. 토질은 점질토이며 드넓은 평야에서 나와 수확 후에 다시 논으로 고스란히 돌아가는 볏짚은 토질을 더욱 기름지게 하였다.
그런데 이 우강과 합덕을 중심으로 생산되는 당진쌀이 외지로 팔려나가 결국 당진쌀이 아닌 다른 브랜드로 시장에 출하되고 있다는 말은 이미 고전이 된 지 오래다. 특히 질이 좋은 쌀일수록 농협보다 한푼이라도 더 쳐주는 일반도정업자를 통해 다른 지역으로 팔려나가기 십상이었다.
많은 농민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정작 우수품종으로 계약재배를 했으면서도 수매과정에서 다른 저질미와 섞여버리는 현재의 미곡처리과정은 이 가격문제와 함께 질좋은 쌀이 지역농협을 통해 계통출하되는 것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었다. 이것은 다시 당진쌀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하여 외지판매를 정당화하고 부추기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만들었다.

풍년이라는 말에
다급하게 팔아치운 속사정
더욱이 올해는 그런 현상이 더욱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정부와 언론에서는 풍년이라고 떠들지, 쌀은 넘쳐난다고 하지, 다급하고 불안해진 농민들은 일반도정업자들이 부르는 대로 값을 쳐주고 팔아버리는 일들이 속출했다. 우강 지역 일부에서는 시가에도 못미치는 1,270원이나 1,280원에 팔아치운 경우도 있었다.
우강면 대포리 김윤환(45세)씨는 이런 현상에 대해 “가격보장도 해주지 않고 벼를 수용해 주지도 않고 개인도정업자한테 파는 도리밖에 없지 않느냐”며 “결국 우리쌀을 못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가격결정을 미룸으로써 쌀판매기준에 적정선을 제공하지 못한 농협측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농민들은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농협은 쌀 가격의 유지를 위해 일찌감치 가격을 결정해 줘야 한다. 이번에 농협이 가격결정을 미루는 바람에 농민들이 손해를 많이 봤다. 일반도정업자들이 농민들의 불안심리를 이용해 가격장난을 많이 쳤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수중에 돈은 없지, 농협은 살 생각을 안하지, 결국은 거의가 싼 값에 외지로 빠져나가 버렸다” 우강의 유천종씨 말이다.

농협은 왜 가격결정을 망설이는가
정부의 쌀정책을 비토하던 농민들이 한결같이 협동조합을 향해 분노의 화살을 돌리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지금의 쌀사태를 겪으면서 조합이 농민들 편에 서있지 않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이 농민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재헌씨의 말 한마디가 그것이다.
확실히 농협의 입장과 농민의 입장은 달라보였다.
조생종 수확이 끝나고 수매시기가 닥쳤는데도 농협은 수매가격을 정해주지 않았다. 그 원인에 대해 농협측은 “빨리 결정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최대한 정부의 지원을 받아 가격지지 보장을 얻은 후 결정하려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정부에서 무이자 지원을 해주면 가격을 올려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농협에서 급하게 여긴 문제는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정부의 지원을 우선 약속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농민들에게 급한 문제는 수확한 쌀을 적정가격에 파는 것이었다.
농민 이만영(신촌리)씨는 “현재의 협동조합은 일반회사 경영 그 자체다. 그이상이 결코 아니다. 농민의 이익을 보호하는 협동조합이 아니라 싸게 사서 적당히 파는, 직원들의 회사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조합장 담합설과 조합원 탈퇴설
그런데 모든 조합이 처음부터 가격결정을 미룬 것은 아니었다. 9월 1일 우강농협은 이사회를 통해 1등품을 1,450원에 수매하기로 결정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곧 가격결정을 유보하는 발표를 했고 9월14일에는 수매가를 1등품 1,380원으로 하향 결정했다.
우강농협 조합원들은 조합의 일관성 없는 정책 때문에 우강쌀이 외지로 헐값에 투매되어 수억원의 손해를 입었음을 비판했다. 또 여러정황을 근거로 농협조합장들 사이에 가격을 1,320원에 하자는 담합이 있었다는 사실과 우강농협의 지충원 조합장이 이로부터 압력을 받았다는 추론을 이끌어냈다.
우강농협의 조합원이자 면내 각농업단체들은 급기야 “생산비에도 못미치는 1,300원대의 수매계획을 백지화해 1,400원대로 수매할 것, 농협장은 소신과 의지를 갖고 외압에 대응하여 농민의 권익을 대변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자진사퇴할 것”등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모든 조합원에게 발송했다.
이들은 또한 이같은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전 조합원이 조합을 탈퇴할 것”까지 결의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 우강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조합원탈퇴 움직임이 일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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