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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01.10.22 00:00
  • 호수 391

[금주의 당진역사]10.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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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영화학원(永化學院)운동
충남 당진군 범천면 사립 영화학원(永化學院)에서는 예정과 같이 거 23일에 동교 운동장에서 추계대운동회를 개최하였다는데 정각 시부터 모여드는 군중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1백2십여 명 생도의 60여회 활발한 경기와 인근 공사립 4교 연합의 규율을 잇는 대교운동은 보는 사람의 운동열을 부흥케하였으며 동교 졸업생의 재미스러운 여흥은 지루한 시간을 유쾌히하고 성황리에 마치었다하며 지방인사의 상품기증도 다수이었다더라. (동아일보 1926년 10월 31일)

●당진퇴비(唐津堆肥) 성적 3천3백만관
충남 당진군 농협에서는 퇴비를 적극적으로 장려한 결과 장족의 진보를 보게 되었으며 금년에는 퇴비 공진회를 4월부터 10월 5일까지 출품심사한 결과 출품호수가 10,742호나 되며 퇴비 총적량은 32,445,500여관의 엄청난 숫자를 보게 되었는 바 경지면적에 비하여 보면 일단보당 200관씩이나 된다는데 전기 공진회의 일등은 면으로는 송산면이오, 리로는 금암리오, 개인으로는 이종상(李鍾尙)씨오, 학교로는 신평학교(新平學校)이다.
(동아일보 1930년 10월 23일)

●당진 염병 만연, 또 다섯집에
충남 당진지방에서 그간 전염병으로 사망한 사람도 다수였으며 지금껏 아직 종식되지 안하였는데 설상가상으로 수일 전부터 읍내리 방면에서 발진티부스가 발생하여 벌써 5호나 만연되었다는 바 당지 경찰서에서는 당지 병자들을 벌막으로 수용 치료케하는 동시에 일반의 건강진단까지 실시하였다.
(동아일보 1930년 10월 23일)

24일 ●당진번영회, 24일 창립
당진지방에서는 시대 진운을 따라 생활은 복잡하여지고 모든 기관은 불충실하여 발전책에 대한 모기관이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하여 오던 중 수일 전에 당진 읍내 모모제씨의 발기로 번영회를 조직코자 준비하여 오던 바 지난 24일 오후 7시에 당지 공보교 강당에서 백여 시민이 집합하여 창립대회를 열고 시설 급무인 좌기 토의를 결정하고 동 11시에 폐회하였다더라.
1. 오도, 당진간 도로 확장의 건 1. 당진시장 확장의 건
1. 연합운동장 설치 촉성의 건
(동아일보 1929년 10월 28일)

●잡신 당진
당진읍내 우조여관(友助旅館) 주인 모씨는 식대 안 낸다고 손님의 의복 뺏기가 일쑤라는데 금번에는 어느 양복직공이 술값 안 낸다고 그 사람의 일하고 있는 양복점에 가서 점주도 모르게 엉뚱한 사람의 새 양복을 가져갔다가 경을 쳤다고.
(동아일보 1928년 10월 24일)

27일 ●면양학원(沔陽學院)의 비운
충남 당진군 면천면 성상리 면양학원(沔陽學院)은 설립이래 4개 성상이 된 바 원래 기본재산이 없어서 경비의 곤란이 막심한 중 간부 안종순(安鍾洵), 조병한(趙炳漢) 양씨의 열성과 각 학부형의 성의로 겨우 유지하여 왔으나 오히려 방침이 없다하며 면내 유지 제씨의 자진 기부금의 총액이 3~400원에 달하나 일인도 현금은 지출한 이가 없다하며 더구나 전기 금액의 수입을 예상하고 동원에서는 당지 금융조합으로부터 일시 채금을 차입하였다는데 이로 인하여 동원 간부들은 집행까지 당하는 등 여러 가지의 곤경을 격었다 하며 거의 폐멸의 경에 있다고.
(동아일보 1925년 10월 27일)

자료조사 : 김남석(nsk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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