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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01.10.29 00:00
  • 호수 392

“우리 노랫소리가 그렇게 이쁜지 우리도 알지 못했어요” - 한정초등학교 합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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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서 더 아름다운 화음

“잠깐만요. 단장 좀 하구요.”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아이, 옷매무새를 다듬는 아이, 신발을 고쳐 신는 아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는 헛기침들...
처음도 아닐 진데, 낯선 손님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그렇게 어색하고 신경 쓰이는 일이었을까. 대회 때보다 잘 부르고 싶은 조바심에 아이들 얼굴이 홍시처럼 달아올랐다.

“해야 해야 해야해야-
해야 해야 해야해야- 해야해야- 나오너라-
우리동무 해동무-
열무김치 밥말아먹고- 우주자전거 달리자-”

한정초등학교(교장 조남식) 합창부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날, 오후부터 불어닥친 마르고 찬바람에 마음 한켠이 스산해졌다. 때아닌 초겨울 날씨에 가라앉은 마음을 구원해준 것은 한점 티없이 맑은 아이들의 노랫소리였다.
좁은 교실에서 서른 다섯명이 입을 모아 단 한 사람을 위해 빚어낸 가슴 따뜻한 화음의 울림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듯 했다.
“아이들이 굳어있어서 소리가 작았죠? 신문사에서 취재 온다니까 아이들이 오전부터 들떠서는 목소리 톤을 제대로 못 잡아냈어요.”
기자가 받은 아찔할 정도의 감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은수(27세) 교사는 조심스레 말했다.
한정초교 합창부는 지난 9월 6일 당진교육청 주최로 열린 제12회 초등학생 음악경연대회의 합창2부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7학급 이상인 초등학교들만 따로 모아 경연을 펼친 합창2부 부문에서 다른 큰 학교들을 제치고 차지한 1위 소식은 학교 전체를 잔치분위기로 만들었다. 한정초교는 전교생 260여명에 11학급이 전부다. 합창2부에 출전한 다른 합창부원 수는 평균 50~60여명. 한정초교 합창부는 모두 합해봐야 40명이 채 안된다.
“노랫소리가 다른 팀보다 작을까봐 대회 전부터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합창부가 생긴지 4년째지만 한번도 등수에 든 적이 없었어요. 이번만큼은 아이들에게 입상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뜻밖에 1등을 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노은수 교사는 곧 있을 다른 학교로의 전근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멋진 선물을 안겨주고 싶었다고 한다.
힘들어 하는 아이들을 다독거려 수업전과 방과후, 하루 3~4시간씩 꾸준히 연습을 했다. 변변한 연습실이 없어 늘 급식실과 독서실을 전전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올해부터는 전문 음악강사를 초빙해서 호흡법, 발성법 등을 제대로 익혀나갔다. 기초부터 확실히 다져야 한다는 노은수 교사의 생각은 결국 예기치 못했던 대회 1위라는 결과를 낳았다.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아이들이었다. 대회전 큰 학교들과의 경쟁으로 조금은 위축되고 자신없어 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먼저 “노력만 하면 뭐든 해낼 수 있어요”라고 외친다.
“라이브 하는 가수가 될거에요. 무대에서 우리 소리가 그렇게 이쁘게 나는지 저희도 잘 몰랐거든요.(김은선·여·6학년)”
“합창부 선생님처럼 저도 음악선생님이 돼서 제자를 키워내고 싶어요. 좋은 음악선생님이 되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해요.(박정은·여·6학년)”
“연습때 다리가 아파서 혼났어요. 그런데 이제는 하나도 안 아파요.(한이슬·여·5학년)”
“합창부 되고 나서 목소리가 좋아졌다고 그래요.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노래를 열심히 불러서 계속 1등하고 싶어요.(박미현·여·4학년)”

학원시간이 임박하자 아이들이 하나 둘 씩 교실을 떠났다. 마지막 한 명의 아이가 자리를 뜰 때까지 노은수 교사와 얘기를 나누다 교실을 나섰다. 함께 쉴새없이 웃고 재잘댔던 아이들은 아직도 못다한 얘기가 남았는지 버스 정류장 앞에 올망졸망 모여 두런거리고 있었다. 곁에서 들어보니 모두 합창대회 때의 무용담(?)이다.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다.
합창부 아이들이 꿈꾸는 미래에 이번 대회 수상이 얼마만큼 큰 힘이 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 조금은 클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될 거라는 믿음만은 확실해졌다.





송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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