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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 입력 2001.11.12 00:00
  • 호수 394

“특별히 서러울 일도, 애써 눈물 보여줄 이도 없었어요”- 면천 자개리 오승필·황영미 부부 - 송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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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입장이 시작되자 식장 안을 가득 메운 하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모였다.
“어째, 신부들 우네. 이 좋은날 어째”
하객들이 웅성거렸고 개중에는 함께 눈시울을 붉힌 이들도 여럿이다.
지난달 30일 가원예식장에서 치러진 5쌍의 합동결혼식은 이렇듯 서러움 반, 감격 반의 조금은 가라앉고 조금은 들뜬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눈물바다… 눈에 띄게 밝은 선남선녀 한쌍
이날 결혼식에서는 유난히 눈에 띄는 신랑신부 한 쌍이 있었다.
긴장과 복받쳐 오른 설움으로 고개를 떨군 여느 신부들과는 달리 환한 웃음으로 씩씩하게 들어선 신부와 시종일관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하객들의 인사에 답한 신랑. 새하얀 웨딩드레스와 회색 연미복이 밝은 표정의 선남선녀를 만나 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면천면 자개리의 오승필(31세)씨와 황영미(29세)씨.
때 이른 초겨울 날씨에 따끈따끈한 아랫목이 생각나던 날 저녁, 신혼여행에서 막 돌아온 오승필·황영미 부부를 만났다.
“7월에 눈 맞어
그해 동짓날 데리고 와 살더라구”
“찾기 힘들었죠? 집이 워낙 외진 곳에 있어서. 밤에는 여간해서 눈에 띄지 않아요.”
어두운 고샅길에 마중 나와 있던 황영미씨의 얼굴에는 초행길 손님이 행여나 고생했을까 노심초사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잰걸음으로 앞장선 그이를 따라 농가 사랑채로 들어서니 6평 남짓한 작은 방에 일곱 식구가 살갑게 모여 앉아 있다.
“무어 궁금한 게 있어 예까지 찾아와. 온 김에 몸이나 녹이고 가슈.”
스스럼없이 아랫목을 내어준 박노희(62세)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마디 툭 던지고는 이내 이번 결혼식에 대해 몇 마디 하신다.
“그렇지 뭐. 하나있는 아들놈 어지간히 장만해서 장가보내고 싶었는데 형편이 돼야지. 이참에 합동결혼식을 올렸지만 어미 마음이야 안 좋지”
“7월에 서로들 눈이 맞어 그해 동짓날에 (황영미씨를) 데리고 와 살았어. 없는 살림에 며느리가 모진 고생했지. 그래도 말대꾸 한번 없어. 그게 늘 이쁘고 고맙지. 착한 걸로 치면 우리 아들, 며느리 따라올 이가 없어.”
노모의 말이 잦아질 때까지 오승필씨와 황영미씨는 미순(여·5세), 미애(여·3세), 원섭(1세) 삼형제를 껴안고는 들어도 못들은척 아이들과 딴청이다.

‘고맙다’라는 말로는 부족한 나의 아내
오씨와 황씨는 지난 93년 처음 만났다. 인연이 될 사람은 타지에서도 서로를 알아보게 되는 것일까. 두사람 모두 면천 사람인데 만나기는 서산서 만났다 한다.
스물셋 된 더벅머리 총각과 스물 하나 된 새침데기 처녀는 만남을 거듭하면서 서로에게 끌렸고 그해 크리스마스날엔 아예 처녀의 살림을 남자집으로 옮겨 그날부터 한 이불을 덮었다.
“행복하게 해주려고 데리고 왔는데 이날 이때껏 손에 흙 안 묻히게 한 적이 없네요. 노쇠한 부모님을 대신해 항상 함께 일해야 하니까, 그래야 살림이 굴러가니까. 남자는 여자를 편하게 해줘야 한다고들 하는데. 일 시킬 때마다 괜히 죄짓는 기분 들고, 미안하고, 안쓰럽고…”
오씨는 아내에게 그간 아껴두었던 말들을 조심스레 꺼내 보였다.
소작농 집안의 맏며느리. 지아비와 슬하에 1남2녀. 일흔 여섯이신 시아버지와 예순 둘이신 시어머니를 모시며 군불 때는 재래식 부엌살림을 맡아온 아내에게 오씨는 ‘고맙다’라는 말로는 부족한 심정이라고 한다.

무던한 남편덕에 부부싸움 한번 못해
곁에서 묵묵히 얘기를 듣고 있던 황영미씨가 말문을 텄다.
“아옹다옹 살아서 재밌었어요. 돈 없는 게 걱정이긴 했지만 큰 욕심 없다보니 별반 문제가 안되더라구요. 네 살 적에 엄마를 여의고 여기 시어른을 제 친정엄마처럼 여기고 살았어요. 여기는 제집이구요. 제집일 하면서 힘들어할 사람 있나요?”
없이 사는 살림일수록 가족들간에 서로 토닥거려주고 아껴주며 알콩달콩 살게된다고 말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스무 한살에 시집이란 걸 와서 신혼 초에는 고부갈등으로 적잖게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보니 모두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무던한 남편 덕에 부부싸움 한번 제대로 못해봤다고 한다.
결혼식장에서 환한 얼굴로 담담하게 있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특별하게 서러워할 일도, 애써 눈물을 보여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황씨는 말한다.

8년만의 오붓한 가을여행
“뽀뽀 무진장 했어요”
부부는 며칠전 3박4일로 가을여행을 다녀왔다.
결혼식 즈음해서 신혼여행겸 다녀온 나들이었다. 추수철에 일손을 놓고 여행을 간 것은 8년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여행 때 찍었다며 부부가 보여준 사진 속에는 간만에 오붓한 시간을 보낸 두 사람의 애틋한 표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뽀뽀도 무진장 많이 했어요. 여행에서 기억나는 건 불국사하고 동해바다 뿐이에요”
오승필씨의 너스레에 이때껏 말없이 않아 있던 아버지 오창석(76세)씨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오늘따라 시절피는 아들이 영 밉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내집 장만의 꿈 멀지만 따뜻한 가정 일굴 터
형편껏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불평없이 살아온 두 사람이지만 함께 바라는 소원 한가지가 있다. 여느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내집 장만의 꿈이다.
“큰집이 아니어도 좋아요. 그저 더운물 나오는 따뜻한 집에서 부모님 모시고, 아내를 쉬게 해주고 싶어요. 열심히 일해서 빨리 돈을 모아야 하는데 그게 마음먹은 대로 쉽지는 않네요. 아이들 다 자라기 전에는 장만해야죠.”
농지 한가운데 울도 담도 없이 허술하게 지어 올린 슬레이트집. 어린 아이들과 노쇠한 부모님을 편히 쉬게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다.
그나마 두 부부가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은 좁고 허술한 집안 곳곳에 훈훈하고 따뜻한 공기를 채워 넣는 것.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데운 공기로 집안을 온기있게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송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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