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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2.06.03 00:00
  • 호수 421

“라쎄 할스트롬의 <쉬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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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헤드라인은 언제나 빈칸이다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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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감각하게 어른이 된다

잘난 것 하나 없고 뚱뚱하며 말까지 더듬는 무능력한 백인 남자 쿼일(케빈 스페이시)은 무감각하게 살면서 홀로 어른이 되어버렸다고 믿는다. ‘푸킵시’ 신문사에서 윤전기 돌리는 일을 하던 쿼일은 야한 여자 페탈(케이트 블란쳇)을 만나 하룻밤 성관계로 사랑한다고 말해버리는 순진형. 그래도 “내 몸매를 망치다니…”라며 화를 내는 페탈을 임신시켜 딸까지 낳았건만, 아내 페탈은 밤마다 남자를 바꾸어가니 젖소부인 바람났다. 어느날 밤 아내는 외간남자와 딸을 대동해서 야반도주를 시도하지만 교통사고로 즉사한다. 다행히 딸은 고아원에서 찾아왔지만 그는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이때 고모 아그네스(주디 덴치)가 갑자기 나타나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위해 고향인 뉴펀들랜드로 돌아가자”며 쿼일을 꼬신다. 선조 대대로 살았다는 뉴펀들랜드의 집은 폭풍우에 날아가기 딱 좋은 상태. 두드리고 고쳐서 들어가 살지만 어린 딸은 “귀신이 보여요”라며 ‘식스 센스’ 같은 말을 하고, 쿼일의 꿈에도 죽었던 아내 페탈이 자꾸 등장해 간을 서리게 한다. 더욱이 우연히 듣게 된 쿼일 조상들의 역사는 가문의 수치.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쿼일은 고개숙인 남자가 되게 생겼다.
그러나 쥐구멍에도 볕은 들고 쥐가 만들어낸 치즈 구멍에도 희망이 보인다. 뉴펀들랜드의 지역신문 ‘개미 버드’에 윤전기 자리를 알아보러 들렀던 쿼일은 얼떨결에 쉬핑뉴스를 담당하는 기자로 취직하게 된다. 신문사 이름처럼 개미처럼 취재해 정승처럼 기사를 쓴 덕분에 쿼일은 사장의 신임을 받고 개성있는 안목을 가진 기자가 되어간다. 여기에 유치원을 운영하는 과부 웨이비(줄리안 무어)사이에서 로맨스까지 꽃피우니 겹경사가 아닐 수 없다. 쿼일의 이야기를 기사로 써서 헤드라인을 단다면?
정답 : 무감각하게 어른이 된 쿼일,
감각의 제국에 입성
쿼일은 어린시절 아버지로부터 수영도 못하는 무능력한 아들로 취급받아왔고, 자기 자신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남자로 세뇌시키며 성장했다. 영화의 첫 장면은 두려움으로 가득한 성장의 분열된 모습을 잘 보여준다. 호숫가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어린아이와 물 밖에 서서 그 모습을 즐기듯 바라보는 아버지. 아이는 구원의 요청을 하지도 않고, 아버지 역시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는다. 이런 부자(父子)도 다 있다 싶은 생각을 하기 시작할 즈음 물에 빠졌던 아이는 어느새 커다란 덩치와 살로 가득한 성인으로 바뀌어있다.
어른이 된 그의 생활에도 별반 달라짐은 없다. 그는 언제나 허우적거리고, 주변의 인물들은 냉혹하다. 그러나 남귤북지(南橘北枳)라고 하였던가. 그를 둘러싼 모든 사정은 아름다운 대자연과 풍광으로 가득한 뉴펀들랜드에 도착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뉴펀들랜드 사람들이라고 아픔이 없을쏘냐. 이 곳의 모든 사람들은 가슴 한 편에 잊을 수 없는 각자의 과거를 안고 살아간다.
이 영화에는 분명 잔잔한 감동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탄탄한 원작덕분일뿐, 명배우들의 연기력은 스크린을 압도하지 못한다. 산다는 것도 그렇다. 잘났든, 못났든, 사람들은 모두 어른이 되게 되어있다. 성장한다는 것은 개인의 연기력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종종, 육체와 정신이 같은 속도로 나아가지 못할 때 아버지의 옷을 빌려 입은 듯한 어색함이 겉돌지만, 우리 모두는 쿼일처럼 무감각하게 어른이 되어간다.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성장중인 애이며 동시에 어른이다. 모두 나이를 먹지만 습관적으로 나이를 흡수하고 동시에 배설한다. 순수하며 교활하기. 성장한다는 것은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삶이 달콤하고 동시에 쓴맛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마지막, 쿼일의 말대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기사의 헤드라인”이라면, 인생의 헤드라인은?
정답 : 언제나 빈칸이다.
Blank, since a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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