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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0.10.30 00:00
  • 호수 344

보수주의자, 음악동우회의 ‘거친’ 무대에 서다 - 김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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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자, 음악동우회의 ‘거친’ 무대에 서다

낮은 음의 마력,
베이스기타에 반해버린 20대 후반
너무 늦은 반란인가요?

김이화

나이 스물 여덟, 미모 뛰어남, 근무처 평통자문회의, 성향 보수적, 소속모임 음악동우회, 특기 베이스기타 연주, 좋아하는 음악인 에릭 클립튼 메탈리카.
어딘지 불협화음을 이루는 이 이력의 주인공은 김이화씨.
올 가을 상록문화제에서 음악동우회 ‘락’공연을 보신 분이라면 무대 오른쪽에서 베이스기타를 연주하던 미모의 여성을 기억할 것이다. 베이스기타를 든 이 여성은 연주 당일의 정중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왠지 도발적인 인상을 주었다. 그도 그럴것이 베이스기타는 남성연주자들의 전유물이다시피 한 악기. 국내에서도 여성연주자는 몇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베이스기타를 들고 무대에 오른, 긴머리의 저 여인은 과연 누구일까, 굼금해했던 분이 많았을 것이다.
그녀를 만난 곳은 대통령 직속기관인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당진군 사무실. 흔히 평통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듣기만 해도 회색 양복색깔이 떠오르는 보수적이고 격식 딱딱한 이곳에서 아무 탈없이 근무한 지도 어느덧 5년째인 걸 보면 그녀 자신이 꽤 보수적인 성향임을 짐작할 수 있는데...
“맞아요. 친구들이 또래에 비해 참 보수적이라고 말을 해요. 그리고 너무나 평범하죠. 어린시절에는 더 평범했는 걸요.”
그렇다면 어째서 지금 그녀는 거칠디 거친 ‘락’음악의 무대에서 저음의 베이스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것일까?
“고교시절부터 노래가 좋아져서 음악동우회의 학생회원으로 있으면서 가끔 합창같은 걸 한 적이 있었죠. 하지만 본격적으로 악기를 다루기 시작한 것은 96년부터였어요. 너무 악기연주가 하고 싶어서 통기타를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베이스기타에 매력을 갖게 됐어요. 그 깊은 저음의 매력은 아는 사람만 알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시절부터 꿈틀꿈틀 움트기 시작한 그것은 음악에 대한 묘한 갈망이었다. 하지만 “피아노를 배워볼래?”라고 은근히 권하던 엄마의 권유에도 선뜻 응하지 못했다. 막연히 그것은 아닌데 하는 느낌 뿐이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됐고, 서울서 직장생활을 하게 됐다.
“저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너무나 평범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평범한 것에 너무 길이 들어있어서 내면의 그런 요구를 미처 듣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녀가 회상하는 초등학생시절의 자신은 공부를 좋아해서 박사가 되는 게 꿈이었던 야무진 소녀였다. 그리고 서예를 배우며 좋아했던 정적이고 조금은 고루한 면이 있는 아이이기도 했다.
“제가 조금만 일찍 저 자신의 내면의 소리, 음악에 대한 열정을 깨달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가 돼요. 왜 그렇게 그저 평범한 것들만을 쫓아 살았는지, 왜 나를 진작 알지 못했는지 말이예요.”
이화씨가 20대라는 젊은 나이에 이토록 회한에 젖는 것은 새록 새록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열정을 그대로 감당하기엔 사회적으로 이미 자유롭지 못한 처지에 있다는 생각 때문.
지난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홀로 되신 어머니를 이화씨는 떠나지 못한다. 지난해에는 또 신성대에 입학해 전산정보 공부를 시작했다. 왠만큼 자립할 수 있도록 돈버는 일도 그만둘 수 없다. 이렇게 저렇게 따지지 않을 수 없는 나이, 계산없이 순수열정 하나로 진격할 수 없는 상황에 와있음을 서늘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이것 저것 욕심을 내느라고 바쁜거죠, 뭐. 어떤 날은 연주에 대한 충동이 있어도 바빠서 못하기도 해요. 하지만 못내 기타를 잡게돼요. 무척 우울하거나 힘든 날에는.”
베이스기타 연주는 이렇게 이화씨의 바쁜 생활에 막간을 이루는 배경음악이다. 그 낮은 음의 마력은 바쁘다 못해 가벼워져 버리는 삶을 다시 깊은 데로 끌어내려준다. 연주에 취해있다 보면 번잡스럽고 사소한 일들에 대한 상념들이 어느새 가고 없다.
“직업적인 연주자의 길은 이미 저의 길이 아닌 것 같아요. 저의 길이 거기서 비껴와버린 거죠. 하지만 연주는 계속 하고 싶어요. 베이스기타의 매력을 버릴 수는 없을 거예요.”
이화씨는 그동안 음악동우회의 상록문화제 행사와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작은 공연에서 간간이 모습을 보여왔다. 대개는 보컬을 받쳐주는 반주를 하게 되지만 가끔씩 연주 자체를 선보이기도 한다. 좋아하는 연주는 에릭클립튼과 메탈리카의 연주. 애절하면서도 거친 음의 세계를 좋아한다.
당진에 소공연을 늘 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리고 원하는 사람만 있다면 그녀는 언제든 무대위에 서고 싶다. 특히 조용하게 음악연주와 감상을 할 수 있는 미니무대가 있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왕에 있는 시설들도 시간대를 잘 이용하면 충분히 무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평범하게 바쁘고 보수적이면서도 독특한 취미와 특기를 가짐으로써 그녀의 세계는 넓고 조화로와 보인다. 그녀의 삶은 막간을 이루는 베이스기타의 저음과 거칠음으로 인해 그만의 개성을 갖는다. 비슷한 내용의 글도 ‘행간을 읽어야 비로소 그 글만의 맛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김태숙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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