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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2.07.21 00:00
  • 호수 428

‘당진일기’의 저자 서강대 철학과 엄정식 교수 초청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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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당진의 자아를 찾는 것부터…

당진의 자아를 찾기 위한 깊은 질문, “나 스스로 당진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편집자 주】

엄정식(60) 교수는 19년 전 아버지의 흑백사진 한 장을 들고 당진을 찾았다. 선친의 고향이 당진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9년간 엄교수는 당진읍 원당리의 150년 가까이된 허름한 농가에서 ‘나’ 자신을 찾는 진지한 여정을 끊임없이 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계간지 <철학과 현실>에 1993년부터 연재한 글들을 묶어 「당진일기」를 펴내기도 했다.
엄교수는 당진이 자신에게 자아를 찾는데 큰 동기를 부여한 만큼 자신도 당진의 자아를 찾는데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이제는 당진인들 스스로 당진과 대화할 때”

근대화를 벗어나 세계화 진입의 기로에서, 더구나 문화적 과도기의 시기에 당진이 창의적인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엄정식 교수가 강연에 들어가자마자 단호하고 진지하게 던진 질문이다.
엄교수는 “이런 문화적 표류의 시기에 고아가 되지 않기 위해선 뚜렷한 방향감각과 세계관 및 가치관을 지녀야 한다”며 “그 첫 발걸음은 당진의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자아의식의 절박성을 지적한 것이다.
“당진사람은 엄밀히 말해 시골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시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지금의 당진인들은 농촌문화의 마지막 인물들임과 동시에 정보화사회의 최초의 인물들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서해안 시대의 교두보인 당진은 현대가 겪고 있는 문화적 과도기의 압축된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엄교수는 당진의 자아를 찾는 노력은 우선 두가지 질문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진은 무엇을 원하는가?’, ‘당진인이 된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한 질문을 갖기 위해선 당진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문제의식이 발로될 때 비로소 질문을 던질 수 있으며, 그것은 자아를 찾고 새로운 문화를 구축하려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엄교수의 강연을 추론해보면 ‘당진인이 되기 위해선 우선 당진과 대화하고 당진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라’는 명확한 명제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스스로 당진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매년 당진의 인구는 조금씩 줄고 있다. 엄교수는 이런 문제가 당진을 좀먹는 속물근성이라고 따끔하게 꼬집으며 질타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엘리트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호시탐탐 어설픈 정체성을 지닌 채 뛰쳐나가려고 합니다. 당진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속물근성만 꽉 차 있는 것은 아닌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군요. 안창호 선생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히려 외국 사람이 조선사람보다 더 조선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사람이 아니면 조선에서 벌어지는 일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고.”
“과연 위기의 상황에서 당진으로 기꺼이 돌아올 용의가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진 엄 교수는 “개개인이 그러한 자아도 확립돼 있지 않다면 당진의 자아를 찾기 위한 노력은 아직 첫단추도 끼어지지 않았다”고 역설했다. 개개인의 자아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당진문화’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엄교수는 “우선 당진사람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당진인이 되라”고 강조했다. 당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됐을 때 그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이 당진의 문화이며, 그 다음에 한국사람, 세계인이 되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당진엔 예지적 지도자가 절실하다

강연 도중 엄교수는 고대 아테네의 유능한 지도자, 페리클레스의 예를 들었다. 범상치 않은 야심과 지도력을 지녔던 나폴레옹이 닮고 싶어한 지도자는 시저였었고, 그 시저가 닮고 싶어한 지도자는 알렉산더 대왕, 그리고 그 알렉산더가 추구하는 지도자 상은 바로 고대 아테네의 페리클레스였다.
“현대 민주주의와 철학의 모태를 형성했던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향후 백년, 혹은 천년 후에 내가 집권한 몇 년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란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아테네를 지도했습니다. 임기를 채운다거나 입신출세를 위해 중간에 떠나 중앙에 빌붙는 지도자는 필요 없습니다. 새로운 당진을 건설하겠다는 야심과 빛나는 예지를 지닌 지도자만이 향후 백년, 혹은 천년 후의 당진문화를 빛낼 수 있습니다.”
강연이 이어지던 중 엄교수는 청취자들에게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그것은 가장 격렬한 문화의 격전지인 당진의 지도자는 여느 지도자들과는 달리 범상치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문화적 표류기인 이 과도기를 겪어낼 수 있으며 구태의연한 사고와 권력을 뛰어넘어 앞서가는 패러다임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할까를 묻지 않는 사람은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 공자의 격언 -

강연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엄교수는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할 수 있는 것을 해낼 용기를 주시고, 할 수 없는 것은 기꺼이 포기할 마음의 평안을 주시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할 수 없는지 분별할 지혜를 주소서’
엄교수는 그간 철학적 고민과 연구를 통해 세운 ‘나는 욕구와 능력과 의무라는 세변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삼각형이다’라는 하나의 가설을 제시했는데, 이 가설에 비추어 “당진사람은 당진인으로서 무엇을 원하고 할 수 있으며 해야만 하는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당진의 현 실정을 이성적인 관점에서 냉철하게 해석하고 그 결과로부터 ‘당장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으며,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축적이며 역동적이고 다이내믹한 당진적 자아를 추구하기 위해선 당진인으로서의 소명감과 의무감을 지녀야 합니다. 현재 당진의 ‘욕구’와 ‘능력’을 냉철하게 평가하고 그로부터 어떤 것을 해야만 하는 ‘당위’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엄교수는 강연을 시작했던 처음으로 돌아가 ‘나 스스로 당진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란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질문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문제의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인식할 때 고민은 시작되고, 그 고민이 발전적인 결과물을 이끌어내기 마련이다. 엄교수는 공자의 격언을 끝으로 한시간여의 농도 짙은 강연을 마무리했다. ‘어찌할까를 묻지 않는 사람은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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