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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3.01.19 00:00
  • 호수 451

버스운전은 나의 천직, 가정과 직업을 같이 돌보는 직장여성 - 배미자 - 김기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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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당진여객 여성버스운전자 배미자 씨

“버스기사들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승객들에게 불친절하게 하는 일이 있는데 그건 결코 버스기사들의 본심이 아니에요. 버스기사들의 힘든 점을 이해해주세요. 저희도 많이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경력 8년의 수준급 버스운전자

버스는 시민의 발이라 불리는 대중적인 교통수단이다. 지금이야 자가용이 보급되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버스는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큰 도구임에 틀림없다.
이 시민의 발을 모는 여성버스운전자 배미자(35, 송산면 매곡리 세안아파트)씨를 만난 건 배씨가 모는 버스 안에서였다. 배미자씨의 직장은 당진 읍내약국 앞에서 출발해 청구아파트, 시곡리 현대 아파트를 거쳐 송악아파트를 돌아서 다시 당진으로 돌아오는 짧은 코스를 반복하는 시내순환버스다.
이 버스의 승객들 대부분이 아이들을 데리고 타는 아주머니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버스 안은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와 수다로 가득차게 된다. 배씨 역시 아주머니인지라 이 같은 소란엔 익숙한 듯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안양에서 살았어요. 당진은 여성운전자가 매우 적지만 안양에선 자주 볼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한 아주머니가 버스를 모는 것을 봤죠.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실제로 당진여객에서 일하는 80여명의 기사중 여성운전사는 배씨를 포함해 단 두 명뿐이다. 그러니 당진의 여성버스 운전사가 특별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배씨도 버스 운전을 한 지는 햇수로 8년째지만 당진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재작년이다. 그래서 그런지 배씨를 모르는 승객이 타면 가끔씩 신기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일도 있다.

집안일과 버스운전을 같이

배씨는 첫차를 모는 날이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한다. 주부이기도 한 그녀는 아침에 출근준비를 하며 식사준비 등의 가사를 돌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일찍 일어난다.
한달 중 19일을 근무하는데 첫차는 10일 정도 배차된다. 막차는 저녁 8시에 있는데 막차 운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9시가 넘는다. 집안일과 직장을 동시에 돌봐야 하기 때문에 여성버스운전사는 적다. 남편이나 부모 등 가족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두가지를 같이 하기 힘든 이유로 여성운전사는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 배씨의 남편 이대준(33)씨는 아내의 직업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수원에서 직장을 다니는 그는 일주일 중 2~3일밖에 집에 오지 못한다. 하지만 집에 오면 바쁜 아내를 대신해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를 해놓는다.
“힘든 거요? 물론 힘들지요. 우리 애도 이제 4살이나 되는데요. 그래도 저는 편한 거죠. 아이는 할머니가 돌봐 주시니까 안심하고 일에 전념할 수 있어요. 남편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요.”

버스운전의 애환

버스운전이라는 것은 우리가 밖에서 보는 것만큼 쉽지 않다. 우선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이고, 무엇보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씨도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계속 운전대를 붙잡고 지낸다. 보통 사람들은 한 두시간 운전을 하면 피곤해서 운전대를 놓지만 버스 운전사는 그럴 수 없다. 항상 정해진 시간을 지켜야되고 어쩌다가 몸이 아프기라도 하면 매우 곤란해진다. 게다가 매일 같은 코스를 왕복한다. 그러다 보면 쌓이는 것은 스트레스와 짜증이다.
“버스기사들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승객들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일이 있는데 그건 결코 버스기사들의 본심이 아니에요. 버스기사들의 힘든 점을 이해해주세요. 저희도 많이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배씨도 처음 안양에서 버스운전을 시작할 때는 승객들의 언행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 요금을 속여서 내는 승객이나, 요금을 기분 나쁘다는 듯이 요금함에 집어던지는 행위가 제일 기분이 상했다. 마치 자신을 화풀이 대상으로 여긴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제가 모는 버스에 단골로 타는 두 꼬마가 있었어요. 학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제 버스를 거의 매일 탔었어요. 그러더니 종점에서 잠시 차를 세우고 쉬고 있었는데 그 두 아이가 자기 엄마와 같이 오더니 자기들을 매일 태워다 주는 아줌마라고 소개하는 거예요. 그 엄마라는 분이 웃으면서 고맙다고 하는데 정말 제가 몸둘 바를 몰랐어요. 저는 단지 제 일을 한 것 뿐인데 고맙다고 하니까요. 그 일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배씨는 이런 고마운 일이 있으면 그 동안의 스트레스를 한번에 날려 버린다고 하며 아직도 생각나는 그 모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당진 도로가 너무 좁아요”

배씨가 토로하는 또 다른 어려움은 역시 도로와 터미널 문제였다. 가뜩이나 좁은 도로에 차들이 좌우에 주차되어 있는 읍내의 도로는 최악이다. 실제로 배씨가 운전하는 버스는 일반버스보다 크기가 조금 작은데도 곳곳에서 길이 좁아 빠져 나오는데 애를 먹는다.
“읍내 도로를 빠져 나오는 건 정말 힘들죠. 초보자들은 사고확률이 매우 높아요. 그건 버스운전사들한테도 마찬가지예요. 버스운전사들은 베테랑이지만 그 정도의 혼잡함 속에서는 까딱하면 사고로 이어져요.”
그럼 아직까지 한번도 사고를 내본 적이 없냐는 질문에 부끄러운 듯 흘러나오는 대답에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고요? 나긴 났었죠. 처음 당진여객에 취직하고 몇 주 지나지 않았을 때였죠. 제 버스는 송악아파트가 종점이고 그곳에서 4~5분 정도 숨돌릴 시간이 있어요.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송악아파트 바로 옆에 볼링장이 있어요. 다 쉬고 나오는데 아파트 진입로에서 다른 차가 진입하면서 비켜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버스를 뒤로 돌리다가 볼링장 간판이던 볼링핀을 받아버렸어요.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라 다친 사람도 없고 사고처리도 회사에서 해줘서 잘 해결됐지만 어찌나 미안하던지....”

버스운전 재밌어 앞으로도 계속

배씨는 버스운전이 자신의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일은 고되지만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도 많고 보수도 괜찮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일 큰 이유는 버스운전만큼 남녀차별이 없는 직업도 드물기 때문이다. 단지 대부분의 여성이 남성보다 체격이 작기 때문에 핸들이 커다란 차를 운전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그래서 배씨는 여성 버스운전사가 많아지기 위해서는 시내순환버스보다 더 작은 규모의 버스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경력 8년차의 배씨도 157㎝의 자그마한 체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금씩 힘이 모자람을 느끼고 있다. 젊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전 이 일이 좋아요. 좋아하는 일을 쉽게 그만둘 수는 없잖아요. 힘이 닿는 데까지 열심히 해 나갈 거예요.”
김기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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