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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 입력 2003.03.23 00:00
  • 호수 459

나이 사십을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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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요즘 들어 남편은 곧잘 자기 나이를 의식이나 하듯 불혹(不惑)에 대해 말을 꺼내 놉니다. 불혹이란 남자 나이 사십이 되면 그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또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질줄 알아야 하는 나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이 사십이 되어 자기의 얼굴에 책임을 지는 남자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나도 참 나이 많이 먹었다. 내일 모레면 사십이네, 벌써...”
올해 서른 여덟인 남편은 잠자리에 들기 전 이런 애기를 꺼냅니다.
“애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나이는 들고, 뭐 하나 해놓은 것도 없는 데 말야.”
그럼 저는 기죽은 남편의 말에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얼버무려줍니다.
“자기만 나이 먹는 거 아니잖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먹어가는 게 나인데 뭘.”
자신만만하게 말하지만 사실 저 또한 엄마이자 아내로서 하루하루 시간이나 죽이고 나이만 먹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며칠 전 남편은 거래처 사장하고 저녁 약속이 잡혔으니 애들하고 저녁 먹어야겠다며 미안한 기색이었습니다. 바쁜 날은 일주일에 두번 집에서 밥먹는 것조차 힘들 때도 있습니다. 저녁만 먹고 술은 절대 마시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전화를 끊고 애들과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치우고 있으려니 늦을 것 같았던 남편이 들어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양손엔 마트에서 뭘 잔뜩 샀는 지 커다란 봉지까지 들고 말입니다.
“아니, 무슨 일이야. 밖에서 저녁 먹고 늦을 것 같더니?”
“그냥, 그렇게 됐다. 애들은 밥 먹었어?”
남편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삼겹살에 소주나 한잔 해야 겠다고 합니다. 치우던 밥상을 대충 정리하고 부엌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남편 저녁 상을 다시 차렸습니다. 남편은 삼겹살 먹을 때는 꼭 상이 아닌 바닥에 신문지 깔고 먹는 걸 좋아합니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었구나?”
거래처 사장하고 약속이 깨졌는 데 그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모양입니다.
“나보다 나이만 어렸어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다.”
그렇게 말한 남편은 소주 한잔을 쭉 들이켰습니다.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가 밖에서 일하는 남자의 크고 작은 일들을 다는 헤아릴 수 없지만 귀가 있어 듣기도 하고 눈이 있어 보는 것도 있는지라 대충은 지레짐작으로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게, 직장생활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 일보다는 인간관계란 말도 있잖아. 또 사회 생활하다보면 별별 사람 다 만나고...”
저는 이렇게 남편을 위로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남편의 직장은 첫 직장이 아닙니다. 근 7년간을 다니던 회사는 어느 날 갑자기 저녁 뉴스에 좋지 못한 일로 몇 번 언급되더니 많은 인원이 감축되고 비교적 큰 회사였던 규모도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직장에서 떨어져 나오게 된 남편은 그 후로 서너 차례 새로운 직장을 옮겨 다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몇 해째 착실하게 지금의 직장을 잘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 생각과는 다르게 남편은 그러지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서른 중반까지만 해도 뭐든지 새롭게 시작할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도 하기가 힘들다.”
남편의 속마음은 나이 마흔을 앞두고 현실에 안주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미욱함을 탓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 자기가 뭐 하고 싶은 일이라도 있어?”
“그럼, 있지."
너무나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남편의 대답이 궁금해졌습니다.
“그저 마음 편하게 트럭 하나 사서 채소 장사나 하면서 살고 싶다. 다른 사람 눈치 안보고 얼마나 좋냐?”
그렇게 말하곤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남편을 따라 저도 웃을 뿐이었습니다. 나이 사십을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습니다.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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