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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3.09.02 00:00
  • 호수 481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작업 - 김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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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소리’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김영섭씨

“내 작업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일에 익숙하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 안에 갇혀 사고의 폭이 좁아질 수도 있고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것을 찾고 싶었다고 한다.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김영섭씨는 독일 유학을 택했다.
독일에서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생각할 수 있는 틀이 광범위하고 자유롭다는 것이었다. (대학에서의 수업과정도 우리나라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10학기 동안 자신이 원하는 전공분야의 교수 밑에서 공부를 하게 되는데 한 교수가 전 학년을 가르치게 된다. 실기수업 시간도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있었다. 미리 작품에 대한 계획서를 가지고 가서 토론하는 형태로 수업이 이루어진다.)
독일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김영섭씨는 5번의 전시회를 했다. 독일에서는 공연이나 전시회에 대한 지원체계가 잘 이루어져 있어 다른 어려움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독일은 2차대전에서 패한 후, 사회적으로 많은 규제를 받았는데 문화산업만은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동안 축적되어 온 문화제도 덕택으로 독일은 어느 작은 도시를 가더라도 공연과 전시회를 접할 수가 있다. 전시회는 거의 매일 있다시피 하고 공연도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씩은 열린다. 웬만한 도시에는 전용 극장이 다 있고 전시 공간으로는 성(城)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수시로 이루어지는 공연이나 전시회는 방송국이나 시(市)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문화예술이 기형적으로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교해 보면 부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독일 자아브륏켄 대학에서 김영섭씨가 공부하고 있는 분야는 ‘소리’다. 언뜻 생각하기에 미술과 소리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인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미술은 눈으로 볼 수 있게끔 그려지거나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소리’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일까?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작업, 소리를 시각화하는 작업이 김영섭씨가 독일에서 하고 있는 작업이다. 그는 수많은 ‘소리’ 중에서 사물놀이를 택했다. 새로운 소재 찾기에 고민 중이던 김영섭씨에게 “네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해라”라는 말을 듣고 생각한 것이 사물놀이였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이 작업에 대해 김영섭씨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 주었다.
“사물놀이는 ‘친다’라는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가령, 타자기가 앞에 있다고 하면 그 타자기를 사물놀이 리듬에 맞춰 치는 것입니다. 종이에는 어떤 일정한 모양의 글씨들이 인쇄되어 나올 것입니다. 거기에다 사물놀이를 할 때 사람들이 움직이는 형태(진)을 덧입히는 것입니다.4개의 악기가 제각기 움직이기 때문에 이 작업은 항상 4작품이 나오게 됩니다.”
설명을 들은 후, 희미하게나마 ‘소리를 보여주는 작업’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독일이라는 먼 나라에서 우리의 소리, 사물놀이의 소리를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물놀이는 특히 독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공연이기 때문에 신문과 방송에서 자주 보도된 바 있다고 한다.

5번의 전시회 중 김영섭씨의 기억에 가장 많이 남았던 때는 다름슈타트 음악대학 갤러리에 초청되었을 때다.
다름슈타트 음악대학에는 전학년이 10일 동안 참가하는 음악회가 있다. 이 전시회가 있기 1년 전, 이 행사에 초청을 받아 사물놀이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걸 기억하고 초청을 한 것이었다. 이 전시회에서 김영섭씨는 사물놀이의 ‘소리’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을 전시했다.

당진읍 읍내리에서 김영섭씨는 대학 다닐 때부터 사물놀이를 했다. 방학때면 고향인 당진에 내려와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그는 독일에서도 꾸준히 이 활동을 하고 있다. 독일에서 만난 교포2세 두 명, 작곡하는 사람 두 명 이렇게 다섯 명이 매주 모여 연습도 하고 행사가 있을 때는 공연을 하기도 한다. 난생 처음 접해보는 사물놀이 공연에 독일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한바탕 신명나게 판을 벌이고 나면 관객들은 뜨거운 호응으로 응답해 준다고 한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교민들에게 사물놀이를 가르친다. 공부하랴 작품하랴 정신없이 바쁘지만 주말마다 두 시간씩 교민들을 지도하는 그는 이 일이 힘들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이 활동이 오히려 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김영섭씨는 우리나라에 있을 때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 사람의 정체성과 생각들,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다양한 인상이나 그 사람의 성격 등을 잡아내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담아내는 작업은 단순한 얼굴 표정이 아닌 그 사람의 내면을 여러가지 기법과 장치, 여러가지 재료를 통해서 묘사하는 작업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이 4천여 점이나 된다. 이 4천여 점의 작품을 찍은 사진을 가지고 그는 독일로 향했다.

2001년 1월 좀 더 폭넓은 미술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길에 오른 김영섭씨, 그러나 독일에서의 생활이 처음부터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독일에서는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이 새로 입학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이미 작가로서의 자신의 세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언어의 문제였다. 대학에서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1년 동안은 어학 공부를 했다. 그간의 노력으로 지금은 독일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좀 외롭기는 하지만 생활하는데는 불편한게 없어요.”
독일에서도 우리나라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재료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김영섭씨는 우리 나라에 있을 때 오랫동안 해 온 자취경력을 살려 독일에서도 한국음식을 직접 해먹는다고 했다.
한 가지 좋은 점은, 독일에서는 지역에 거주하는 35세 이하의 학생들은 학생증만 있으면 대중교통수단이 모두 공짜고 각종 공연도 모두 공짜로 볼 수 있어 국적을 떠나 문화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영섭씨는 우리나라 미술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견을 내놓았다.
“먼저 이야기할 것은 관객들과의 소통의 문제입니다.”
김영섭씨는 전시 공간이 대부분 화랑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과, 난해한 작품들이 일반 사람들에게 외면당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술이 대중들과 거리감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작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작가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관객들 또한 작품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독일에서는 전시회에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작가들에게 수시로 요구한다고 한다.
또 하나 김영섭씨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회참여의 문제다. 주민들과 함께 생각하고, 함께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나가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다수가 고민하는 사회문제를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나타내기도 하면서 작가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문화공간이나 예술활동이 중앙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진정한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서는 지방의 문화예술이 활성화되고 저변확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섭씨는 10학기를 마친 후 박사과정을 밟을 생각이다. ‘소리’ 작업을 좀 더 완성도 있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우리의 삶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그래서 지나치기 쉬운 것들을 작품으로 형상화해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작업은 어느 공간에서나 작업과 전시가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애착이 가는 것이다.
얼마 전 통영대교 개통식때 소리작업을 했는데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 아니어서 안타까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방학을 이용해 잠시 우리나라에 온 김영섭씨는 공부를 마치고 나면 당진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작업했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처럼, 열정적인 활동을 통해 당진의 미술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를 기대해 본다.

이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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