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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식량자급률 5%, 개방반대해야 국익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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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시장 개방론자들은 식량안보,
환경보전 등 농업의 비교역적 역할 혹은
다원적 기능을 무시하고 있다”



박 진 도
충남대학교 농업경제학교수



지난 9월10일부터 14일까지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제5차 각료회의는 선언문 채택에 실패하고 결렬된 채로 끝났다.
각료회의의 결렬에 대해 우리나라 농민단체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각료회의 결렬 이후 우리 사회에는 ‘농업개방 대세론’이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이제 농산물시장 개방문제는 국제협상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 내의 최대의 갈등요소로 바뀌어가고 있다.
농산물시장 개방에 관한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며 그야말로 국론이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농산물시장 개방 불가피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농산물시장 개방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WTO 농업협상의 구도를 볼 때 어쩔 수 없지 않으냐 하는 소극적 입장과, 농산물시장을 개방하는 것이야말로 국가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적극적 입장으로 나눌 수 있다.
9월16일자 <주간조선>의 기사 제목 ‘WTO의 두 얼굴:협상타결 국익엔 유리, 농가엔 치명적’에서 보듯이 농민의 이익과 국익을 대립적으로 파악하는 시각이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고 그것을 보수 언론들이 부추기고 있다.

농산물시장 개방이 과연 국익인가
농산물시장 개방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측은 마치 우리나라 농산물시장이 개방되어 있지 않고 폐쇄되어 있는 듯 사실을 왜곡한다. 우리나라의 농산물 시장은 쌀을 제외하면 이미 완전 개방된 상태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도시국가들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낮은 25%대 수준으로 하락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96억 달러의 농림축산물을 수입하고 16억 달러를 수출하여 농림축산물 무역에서 8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농업구조가 취약하여 농산물관세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농산물시장은 세계에서도 가장 개방된 시장의 하나이다. 따라서 당면한 문제는 농산물시장 개방이 불가피하냐 아니냐가 아니고, 마지막 남은 쌀 시장마저 개방할 것인가, 그리고 이미 개방된 농산물에 대해서는 얼마나 수입을 확대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적극적 개방론자들은 쌀 시장마저 개방하고 농산물의 수입을 확대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과연 그런 것인가.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의 70% 이상을 무역에 의존하고 있고,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농림어업부문의 비중은 GDP의 4%(2002년), 총취업자의 9.3%, 농가인구는 전체 인구의 7.5%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공산품 수출을 희생한다면 소탐대실하는 결과라는 것이 개방론자들의 주장이다.

쌀 제외하면 식량자급율 5% -
더 내줄 것이 없다
여기에 관변 경제학자들이 계량모델을 이용하여 농업부문을 개방하면 할수록 경제성장과 국민후생이 극대화된다는 사실을 숫자로 증명한다.
즉 자유무역에 따른 값싼 농산물의 수입이 증가하면, 농민들은 피해를 입지만 농산물가격의 하락으로 소비자들이 더 큰 이익을 얻기 때문에 나라 전체로는 후생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계량모형에서는 오늘날 국제협상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농업의 비교역적 역할, 혹은 다원적 기능(식량안보·농촌지역사회의 유지·환경 및 국토의 보전·문화 및 전통의 계승·도시인의 안식처 제공 등)은 농산물 시장가격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우리의 식량자급률이 25%대로 떨어졌고 그나마 쌀을 제외하면 5% 수준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마지막 보루인 쌀 시장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국가의 임무가 아닌가.
개방론자들은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농림업의 비중이 낮다는 사실만 강조할 뿐 농림업이 농촌지역의 기간산업이고 거의 대부분 시·군 취업자의 절반이 농업취업자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감추고 있다.
농산물의 개방 확대에 따른 농업쇠퇴가 농촌지역의 붕괴를 가속화시킬 것은 명약관화하다. 같은 농산물 수입국이지만 농촌지역에서조차 농업취업자가 소수에 지나지 않는 이웃 일본과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

정부의 구조조정정책,
농민들 빚더미로 몰아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DDA(도하개발의제) 농업협상이 제5차 WTO 각료회의에서 논의된 의장 초안을 토대로 타결될 경우,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농업부문의 총소득은 15조원에서 9조원으로 감소하고, 자연감소분을 제외하고도 농업취업자 25~5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정했다. 더욱이 그들의 대부분은 새로이 취업하기 어려운 50대 이상의 농민이다. 누가 이들의 생계를 책임질 것인가.
검증되지 않은 국익론을 앞세워 국론을 분열시키고 농업희생을 강요하는 농산물시장개방 대세론 혹은 불가피론은 하루 빨리 불식되어야 한다. 나날이 강화되는 농산물 개방 확대 압력에 합심하여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모든 노력을 집중하여야 한다.
아무리 개방 압력이 거세더라도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우리 농업과 농촌을 살릴 지혜를 모아간다면 농민들은 희망과 용기를 가질 것이다. 경제관료와 보수언론의 잘못된 ‘농업시장개방=국익론’이 가뜩이나 어려운 농민들을 절망의 늪으로 몰아가고 극단적인 저항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농업개방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잘못됐다. 정부 관료와 언론, 관변연구기관은 각료회의 결렬 이후 농업개방 대세에 대응해 농업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80년대 말 이후 10여년 간 농산물시장개방 불가피론을 내세워 농업의 국제경쟁력을 키우는 것만이 우리 농업과 농촌의 살 길이라고 주장하면서 엄청난 돈을 농업구조조정에 사용해오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막대한 재정투융자에도 불구하고 농업의 국제경쟁력이 달성된 것도 아니고 농촌의 형편이 나아진 것도 없지 않은가. 오히려 무리한 농업구조조정책이 농민들을 상환 불가능한 막대한 농가부채의 수렁에 빠뜨린 것이 아닌가.
농업구조조정이 단기간에 달성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설사 구조조정에 성공해서 국제경쟁력을 어느 정도 높인다고 해서 우리 농업과 농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수 농가의 배제를 전제로 한 지금과 같은 방식의 농업구조조정은 농촌지역의 빈부 양극화와 공동화를 가져와 농촌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국민 70% 우리 농산물 이용하겠다”
향후 10년 정도가 우리 농업과 농촌, 그리고 우리 사회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농업과 농촌의 비중이 매우 낮아진 현실에서 소수자로서의 농업과 농촌이 존립하기 위해서는 비농업부문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의 농정실패로 농업과 농촌을 보는 국민의 눈이 전보다 차가워지기는 하였지만 “가능하면 수입농산물보다는 국산농산물을 이용하겠다”는 의견이 70% 이상을 차지하는 최근의 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듯이 아직은 희망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농정이념을 경쟁력 지상주의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 지역과 환경을 포괄하여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극대화하고, 농촌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농정의 대상과 범위도 농업과 농업자로부터 국민과 국민경제로 확대해야 한다.
즉 전통적인 농정이 농업생산성의 향상이나 농가소득의 증대 등 농업 혹은 농업자를 대상으로 했다면, 앞으로의 농정은 식품의 안전성과 영양공급, 환경보전과 농촌지역의 진흥 등 일반 국민을 포함해야 한다.
농업과 농촌이 쇠퇴하면 도시와 국가 전체가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은 정책 당국자 뿐 아니라 일반 도시 주민에게도 필요하다. 이러한 시각이 확립될 때 참다운 의미에서 도시와 농촌의 교류, 도시에 의한 농촌의 지원이 가능해진다.
최근 다행스러운 것은 일반 국민의 농업·농촌에 대한 시각이 종래의 식량공급처라는 좁은 시각으로부터 국민의 휴양공간, 생산공간, 생활공간으로서 농업·농촌이라는 인식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다.
농민과 농촌주민은 일반 국민에게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제공하고, 일반 국민들은 농민과 농촌주민의 공평한 삶을 보장하는 일종의 사회계약이 명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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