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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 입력 2003.12.01 00:00
  • 호수 492

20년 표구인생, 소박한 마음 표구에 담아 - 문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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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읍 읍내리 문화표구사 문충원씨

좋은 작품은 물론 작품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가치를 지니겠지만,
그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것이 표구다.
잘 만들어진 표구는 미술이나 서예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오래된 친구인 셈이다.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친구
사람들은 평생을 살면서 많은 친구들을 만들고 또 그들과 어울려 살아간다. 그 친구들 중에는 꼭 자신과 성격이 잘 맞는 친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정 반대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고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도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다. 친구 중에는 서로의 단점과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장점을 돋보이게 해주는 친구가 있다. 이런 친구가 곁에 있다면 한평생 든든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 뿐만이 아니라 미술이나 서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작품은 물론 작품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가치를 지니겠지만 그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것이 표구다. 잘 만들어진 표구는 미술이나 서예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오래된 친구인 셈이다.

20년 표구인생의 시작
도로공사가 한창인 당진정보고 앞 도로에 말끔하게 새로 단장한 건물, 문화표구사를 찾았다.
실내에는 갖가지 크기의 표구작품들이 사방에 걸려 있었고 작업을 하기 위해 마련된 탁자 두 개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반갑게 맞아주는 문충원 사장(42)은 한눈에 보아도 선해보이는 인상이었다. 20년 가까이 표구 일을 해 온 문 사장은 당진읍내가 고향이다. 군대를 제대한 후 한 1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서산에서 2년 정도 표구사에서 기사로 일하면서 표구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문 사장이 표구 일을 배우게 된 데에는 작은 아버지의 역할이 컸다. 화가로 활동 중인 작은아버지가 문 사장에게 표구 일을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했던 것.
표구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전문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서산과 서울 등지에서 표구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문 사장은 그때만 해도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쉽게 자신의 기술을 가르쳐 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을 배운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문 사장은 당진경찰서 앞에서 4년 정도 표구사를 운영하다 당진정보고등학교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작업
“표구도 그림처럼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한다는 문 사장은 작업을 하는데 있어 어느 공정 하나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 곳이 없다. 표구사가 단지 표구를 만들어주는 곳이 아니라 작품의 가치를 높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표구를 하나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3일 정도다. 보통 5번 정도의 공정을 거치는 표구 작업은 중간중간 햇빛에 건조시키는 과정이 있기 때문인데 10개를 만들어도 마찬가지로 3일 정도가 걸리게 된다.
공정 중에 있는 표구를 다루는 데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자칫하면 작품이 손상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표구 기술이 서툰 사람의 경우에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크기가 큰 경우에는 햇볕에 말리는 건조과정에서 한 부분만 햇빛을 받을 경우 작품에 손상이 가게 된다. 작업 중인 표구를 건조시키기 위해 볕이 잘 드는 곳에 놓아두었다 하더라도 자주 눈여겨 보아야 한다. 도로변의 경우, 모르는 사이에 자동차를 주차해 놓아 햇볕이 차단되게 되는 경우도 흔히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위험요소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남의 작품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일이기 때문에 아주 작은 부분에까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규격에 맞춰야 하는 어려움
표구는 규격에 맞게 만들어져 나오는 액자를 구입해서 작업하게 되는데 요즘에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액자도 들어온다고 한다. 그러나 품질 면에서 우리나라에서 만든 액자보다 떨어진다고 하는데, 중국은 액자보다 족자가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산은 가격면에서 우리나라 액자보다 싼 편이지만 문 사장은 조금 비싸더라도 거의 모든 액자를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표구에도 규격이 정해져 있듯이 종이도 마찬가지인데 작품을 그 규격에 맞춰 가져오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난감하기 짝이 없다. 작품이 액자 크기와 달라 부득이하게 작품의 끝부분을 잘라내야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물론 작품의 주인과 상의가 된 후의 일이다.

닥쳐온 재앙을 딛고 일어서…
표구는 생필품이 아니기 때문에 경기를 많이 탄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생활하는데 별 지장이 없기 때문에 경기가 안좋을 경우에는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문 사장은 올 초에 초등학교 서예전시회, 김윤숙 개인전과 남송서도회전의 일부작업을 맡아서 바빴지만 경기가 악화된 요즘에는 예전같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오랫동안 해온 표구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지난 1998년 8월8일과 9일 이틀 사이에 쏟아진 엄청난 폭우로 침수를 당했을 때도 흔들리지 않았던 문 사장이다.
349mm라는 기록적인 강우량으로 당진천 제방이 넘쳐 당진읍 시가지가 물에 잠겼을 때 문화표구사도 침수됐다. 병풍 10여개와 100개가 넘는 액자가 물에 잠겨 못쓰게 되는 등 2천 5백만원 상당의 피해를 입은 문 사장이 그 아비규환 속에서 건진 것은 겨우 액자 6개였다. 각 상가마다 수재의연금이 지급되었는데 몇 몇 업종은 그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 중 표구업도 포함되어 있어 문 사장은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동네 이장이 안타까워 하며 가져다 준 라면 한 박스가 그가 받은 전부였다. 그러나 문 사장은 법이 그렇게 되어 있는 걸 어떡하냐며 자신에게 닥쳐 온 갑작스런 불행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평생을 표구 일에 바쳐온 그는 “처음부터 가진 것 없이 시작했는데 그만한 일로 표구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 때의 수해로 생활터전을 잃은 사람이 어디 문 사장 한 사람 뿐이겠는가. 주위사람들의 격려와 도움에 힘입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지금의 문화표구사를 가꿔왔다.

소박한 마음 담은 예쁜 표구
현재 문 사장은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아내(안혜자)와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는 아들(민우), 그리고 3학년인 딸(세은)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다. “병 중에서 가장 큰 병이 스트레스”라고 말하는 문 사장은 표구 일을 천직인줄 알고 살아왔기 때문에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 아니냐며, 이 일을 하면서 조금 벌면 조금 버는 대로 살고 많이 벌면 저축하면서 큰 욕심없이 평범하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별 탈 없이 살면 그게 행복”이라는 소박하고 예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문 사장, 오늘도 그는 자신의 삶을 돋보이게 해 주는 예쁜 표구 하나 만들고 있다.

이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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