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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우리과학] 짚
2003년 04월 21일 () 11:02:00 webmaster@mjmedi.com
우리문화의 가장 큰 저력.
억압과 착취 속에서 창조한 눈물겨운 문화.

짚은 곡물의 이삭을 떨어낸 줄기를 말한다. 그 종류에는 볏짚 보리짚 밀짚 조짚 등이 있지만, 우리가 흔히 '짚'이라고 일컫는 것은 볏짚을 말한다. 왜냐하면 보리짚이나 밀짚은 재질이 딱딱해서 그것을 재료로 하여 도구를 만들거나 지붕을 잇지는 못하고 그저 땔감으로나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볏짚의 속성은 허름하고 거칠면서도 따뜻하고 부드럽다. 투박한 성질은 남성적이요, 따뜻하고 부드러운 질감은 여성적인 성품에 비유된다.

서민들의 생활에서 짚의 쓰임새는 아주 다양하다. 물건을 담을 때, 물건을 받칠 때, 가축을 키울 때, 지붕 및 울타리 등의 재료로서 집을 만들 때, 신발 우의 모자 가방 등 사람의 몸에 착용하는 것 등등….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초가집으로, 자연환경과 가장 잘 어울리는 집이다. 농사를 짓고 난 짚을 이용해 지붕을 얹고, 지천에 널려 있는 진흙으로 벽을 쳐서 만들었다. 집이 낡아 허물어도 쓰레기가 하나도 없이 모두다 썩어 옥토를 만든다. 과연 이보다 더 환경친화적인 집이 어디 있겠는가.

짚으로 이엉을 해 얹은 초가지붕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무척 따뜻했다. 또 장마에도 습하지 않아 이상적인 서민주택이었다. 짚은 우선 가볍기 때문에 집을 받치는 기둥이 쓸데없이 굵지 않아도 되고, 단열이 잘되기 때문에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을 나기에는 가장 좋은 재료였다.

이처럼 가장 서민적이고 대중적이었던 짚 문화는 가난하고 억압받던 민중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한 기층문화이다. 좁은 경지면적에 일부 특권층이 독점한 농토에서 피땀 흘려 걷은 대다수 알곡은 다 빼앗기고 남은 줄기만으로 이룩한 눈물겨운 문화인 것이다.

어쩌면 짚 문화를 기층민중이 그들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친 생생한 증거라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이 또한 다른 문화와는 다른 짚 문화만의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짚과 관련한 재미있는 속담도 많이 전해 내려온다. "굶어 죽어도 씨오쟁이는 배고 죽어라." "7년 대한에도 씨오쟁이만은 남아 있었다." "하던 지랄도 멍석 깔아 놓으면 못한다." 등등…

씨오쟁이는 곡식의 씨앗을 담았던 농기구이며, 농민들에게 씨앗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멍석은 특이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일종의 개폐식 주거를 상징하는 것으로, 의례히 마당에 깔렸기 때문에 그 위에서 이루어지는 행사는 자연히 개방적이고 공동체적인 성격을 띠었다. 이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멍석문화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지금은 멍석이 사라지면서 그 멍석 위의 문화도 차츰 자취를 감추고 있다. 공동체적이고 협동적이고 개방적이었던 우리의 삶도 개인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양상으로 바뀌어 가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제 짚 문화는 사라져가고 있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짚 문화가 우리의 세대에 와서 소리도 없이 망각의 늪으로 빠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문화는 흐르고 변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하루가 다르게 격변하는 시대에 어쩌면 현실성이 없는 이런 이야기들이 잠꼬대로 들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뿌리를 끊고 허공에 날아오를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짚 문화는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저력이 되어왔던 기층문화이다. 억압적인 봉건구조, 만년 착취 속에서도 지칠 줄 모르고, 싸우고 창조한 이 문화의 저변에 깔린 정신이야말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항상 현재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편 '금강'의 저항시인 신동엽 선생의 부인 인병선 선생이 몇 해 전에 연 '짚·풀 생활사 박물관'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각종 공예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학교나 단체가 요청할 경우 실제 제작도 할 수 있다.

전화 : 02-516-5585.

<이예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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